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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최선희의 문화예술톡

정치가의 언어, 예술가의 언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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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최선희 초이앤라거 갤러리 대표

최선희 초이앤라거 갤러리 대표

한국이나 프랑스나 대선 경쟁이 한창이다. 후보들은 저마다 큰소리로 힘차게 공략을 외치며 세상을 바꾸겠다 한다. 우렁차다 못해 공격적으로까지 느껴지는 언어의 직접성에 살짝 마음이 놀라기도 한다. 20년 넘게 예술가들이 표현하는 간접적이고 시적이고 은유적인 언어에 익숙하게 살아온 나에게 정치인들의 언어는 참으로 직설적이고 단순하게 다가온다.

얼마 전에 중동 지역 알자지라 방송국에서는 두 명의 인물을 초대해서 대화하는 프로그램을 제작했는데 세계적으로 존경받는 현대미술 작가인 아이웨이웨이(艾未未)와 아니쉬 카푸어가 나왔다. 마침 이 둘은 ‘예술은 정치적일 수 있는가’라는 주제로 매우 흥미로운 대화를 나눴다.

현대미술 작가 아이웨이웨이(왼쪽)와 아니쉬 카푸어. [유튜브 캡처]

현대미술 작가 아이웨이웨이(왼쪽)와 아니쉬 카푸어. [유튜브 캡처]

중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부조리를 파헤치고, 이를 예술 작품으로 고발해온 중국 출신 작가 아이웨이웨이는 고국인 중국에 돌아가지 못하고 유럽으로 망명하여 창작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인도 태생으로 영국에서 살면서 자유롭게 창작 활동을 하는 아니쉬 카푸어는 공간을 압도하는 대형 설치와 조각 작품으로 널리 알려져 왔다. 그의 작품에서는 아이웨이웨이 작품과 달리 사회를 바꾸고자 하는 강한 정치적인 메시지를 읽을 수는 없지만 궁극적으로 인간이 살아가는 환경과 사회에 대한 시적이며 철학적인 사고를 공유하게 된다.

정치적으로 보다 적극적인 행동파 예술가인 아이웨이웨이에게 아니쉬 카푸어는 말한다. “나는 내 작품이 어떠한 정치적인 아이디어나 메시지를 담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러자 아이웨이웨이는 “그렇게 말하는 것 자체가 예술가가 소유할 수 있는 표현의 자유를 이야기하는 정치적인 코멘트이다” 라고 답한다. 결국 예술가의 언어는 그것이 어떤 형태이건 세상을 향한 예술가들이 지닌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면 결국 인간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정치적인 언어가 될 수 있다. 피카소가 “여러분 나의 그림은 단순히 거실의 벽에 걸린 장식품이 아닙니다. 이것은 ‘전쟁’입니다”라고 했던 것처럼 말이다.

피카소가 말한 전쟁이란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와 개인의 삶의 음지와 양지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메신저로서의 예술가의 투쟁과 책임감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그 언어는 소프트하고 느리고 굽이굽이 좁은 길을 돌아서 도달해야 하는 언어다. 아니쉬 카푸어는 자기가 태어난 인도에서는 자신의 코를 만지기 위해 머리 뒤편으로 손을 돌려서 어렵게 잡는다는 표현이 있는데 바로 이것이 예술이 지니는 정치적 언어를 설명해준다고 한다. 예술은 항상 세상을 향해 이야기를 해왔다. 조용하게 혹은 저항하는 목소리로. 직설적인 목소리보다 오랫동안 조용히 세상을 바꾸는 간접적이지만 파워풀한 예술가의 언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