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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아나바다의 민족"…류승룡도 홀려 투자한 '빈집연가'

중앙일보

입력

빈집 재생 숙박 스타트업 ‘다자요’의 남성준 대표가 10월 14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의 한 카페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빈집 재생 숙박 스타트업 ‘다자요’의 남성준 대표가 10월 14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의 한 카페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전국 빈집만 151만 채(2020년 인구주택총조사, 통계청). 지금은 방치된 빈집을 고쳐서 다시 쓰는 일에 관심이 많아졌지만,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빈집 재생’은 생소한 개념이었다. 지난 2015년 빈집 숙박 스타트업 ‘다자요’를 창업한 남성준(47) 대표는 창업 초기 각종 상을 받으며 주목받다가 규제에 갑자기 발이 묶여 폐업 직전 살아남았다. 지난해 9월 정부가 기존 업계와 신규 사업자를 중재하는 시범사업 ‘한걸음모델’ 1호로 다자요를 선정하면서다. 조건(1년 300일 영업, 수익금 일부 기부 등)이 붙긴 했지만 국내 유일한 합법적 독채 숙박업체가 됐다.

빈집 재생 프로젝트 ‘빈집연가' #②남성준 다자요 대표

규제 문제로 1년 넘게 영업을 못하던 다자요를 버티게 한 건 소액 주주들이었다. 폐업할지도 모르는 스타트업에 이들은 “돈 모아줄 테니 폐업하지 말라”라며 크라우드펀딩을 요청했고, 배우 류승룡을 비롯한 개인들의 소액 투자가 잇따랐다. 사실상 ‘기부’였다. 그 인연이 빈집에 사람의 이야기를 담고 또 다른 인연을 이어보자는, ‘빈집연가’(緣家·인연이 있는 집) 프로젝트로 이어졌다. 빈집 재생 아이디어를 제공하면 참여자의 이름으로 수익금의 1.5%를 마을에 기부한다. “다자요는 소액 주주들이 지킨 회사”라고 말하는 남 대표를 지난 10월 14일 서울 마포구의 카페에서 만났다.

‘한국의 에어비앤비’에서 ‘제2의 타다’로

 남성준 대표가 이끄는 ‘다자요’가 규제 문제로 1년 3개월간 영업이 막혔을 때 일반 소액 주주들은 "돈 모아줄테니 버텨라"라면서 자발적 펀딩에 나섰다. 배우 류승룡도 그중 한 명이다. 우상조 기자

남성준 대표가 이끄는 ‘다자요’가 규제 문제로 1년 3개월간 영업이 막혔을 때 일반 소액 주주들은 "돈 모아줄테니 버텨라"라면서 자발적 펀딩에 나섰다. 배우 류승룡도 그중 한 명이다. 우상조 기자

“빈집을 빌려주시기만 하면 멋지게 리모델링해서 10년 뒤에 돌려드리겠습니다.” 남 대표가 창업 당시 친한 후배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하자 “미친 거 아니냐”는 답이 돌아왔다. 서울에서 10년간 식당을 운영하다가 사업하겠다며 고향 제주로 돌아온 젊은이의 말이 터무니없었다고 한다. ‘무상임대’는 빈집 매입자금도 아끼고 고향 집 팔기를 꺼리는 집주인을 설득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이 형 한 번 믿어보시라”는 후배의 설득으로 어렵게 승낙받았지만, 시공사에 사기당하면서 시작부터 우여곡절을 겪었다.

위기가 기회였을까. 2017년 우연히 소개받은 크라우드펀딩 와디즈에 입성한 다자요는 한 시간 만에 목표액을 달성했고, 그렇게 모은 투자금으로 이듬해 완성한 첫 재생집 ‘도순돌담집’ 숙박권은 5분 만에 마감됐다. 각 지방자치단체의 골머리를 썩이던 빈집을 활용할 수 있는 혁신적인 사례라며 공공기관 등에서 각종 상을 받는 등 ‘한국의 에어비앤비’로 주목받기 시작했고, 와디즈에서도 사전 알람 건수 기록 경신과 함께 앙코르 요청이 잇따랐다.

위기는 또다시 찾아왔다. 사업을 개시한 지 1년여, 2019년 6월 갑자기 규제 문제가 불거지면서다. 법 규정상 독채 민박은 집주인이 반드시 거주해야 하는데 빈집 재생 숙박업은 “합법도 불법도 아닌 ‘비법’의 영역”이었다. ‘제2의 타다’ 사건으로 언론에 알려지자 사람들은 “말도 안 되는 규제”라며 자발적으로 펀딩에 나섰다. 남 대표는 “보통 사업이 위기에 처하면 투자자들은 소송부터 거는데 우리 주주들은 오히려 버티라고 응원해줬다”고 했다.

금방 해결될 줄 알았던 규제 문제는 1년이 넘어도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받을 수 있는 대출은 다 끌어모아 버텼다. “멀쩡한 회사가 1년 3개월간 매출이 없었던 거죠. 일반인 주주들이 3억원을 모아주셨는데 또 모아주시겠다고 하더라고요. 염치가 없어서 못 받겠다고 했고 폐업을 준비하고 있었어요.” 지난해 9월 말 상황이다. 그때 ‘한걸음모델 1호로 선정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동안 주주들에게만 오픈했던 숙소의 방명록엔 ”버텨주셔서 감사하다“는 글이 잇따랐다.

“아나바다 민족, 빈집도 자원인데 재활용”

"미쳤다"는 소리를 들으며 빈집 재생 사업을 시작한 남성준 대표의 '다자요'는 지난해 9월 한걸음모델 1호로 선정되면서 유일한 빈집 재생 숙박업체가 됐다. 우상조 기자

"미쳤다"는 소리를 들으며 빈집 재생 사업을 시작한 남성준 대표의 '다자요'는 지난해 9월 한걸음모델 1호로 선정되면서 유일한 빈집 재생 숙박업체가 됐다. 우상조 기자

규제 해소(한걸음모델 선정)는 투자유치로 이어졌다. 벤처투자사들이 미팅을 하자고 제안해왔고, 국내 굴지의 대형 여행사와 여행플랫폼이 독점 판매를 조건으로 개조비용을 전부 부담하겠다고 나섰다. 대기업에서도 제품 협찬 및 협업 의사를 밝혀오기 시작했다. 일부 지자체들은 다자요 사업을 유치하려고 경쟁이 붙었고, 빈집 소유주들이 의뢰해온 빈집도 수백채에 이른다. 마을 분위기 흐릴까 걱정하던 주민들은 이제 마을에 활기가 돈다고 환영한다. 다자요 숙소에서 나오는 수익금의 1.5%는 마을에 기부한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반주주는 지금은 남 대표의 이웃이 된 40대 직장인이다. 서울서 살던 이 주주는 다자요 숙박을 계기로 주말부부가 되기로 하고 아예 제주로 이사했다. 심한 아토피 때문에 샤워할 때마다 아프다고 울던 딸이 다자요 숙소에 묵은 둘째 날부터 욕실에서 노래를 부르면서 나오는 걸 보고서다. 다자요 숙소는 제품을 체험하고 구매하는 ‘쇼룸’으로도 진화하고 있다. 이 역시 숙소에 비치된 제품을 어떻게 살 수 있냐고 물어보던 주주들의 아이디어였다. ‘애월아빠들’ 계란, 커피 원두 ‘제레미애월’ 등 로컬 스타트업과 제품이 그 덕을 톡톡히 봤다.

“빈집 재생의 의미는 크라우드펀딩으로 실증 받았고, 코로나19로 독채 숙박도 대세가 됐죠. 한 공간에서 ‘원 마일 반경’을 잘 벗어나지 않아요. 다자요 방명록엔 마을식당, 카페, 배달집 추천뿐 아니라 ‘어디 노을이 예뻐요’, ‘여기 산책하기 좋아요’ 이런 글이 많아요. 여행객은 마을을 경험하고, 마을 경제에도 도움이 되는 ‘공정여행’이죠. 우리가 아나바다 민족이잖아요. 빈집도 자원인데 재활용해야죠.” 스타트업의 설움을 온몸으로 경험한 그는 “공간이 없어 제품을 알리지 못하는 많은 스타트업에게도 좋은 공간이 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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