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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등장은 안내견…장애인 예술가와 피아니스트 총장의 협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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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17일 콘서트에서 피아니스트 김대진(왼쪽)총장과 김예지 국회의원. [사진 한국예술종합학교]

17일 콘서트에서 피아니스트 김대진(왼쪽)총장과 김예지 국회의원. [사진 한국예술종합학교]

안내견 한 마리가 가장 먼저 무대에 등장했다. 시각 장애인 피아니스트이자 21대 국회의원인 김예지가 그다음에 나왔다. 이어 피아니스트이면서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총장인 김대진이 무대 위로 나왔다. 두 피아니스트는 피아노 한 대에 나란히 앉았다. 드뷔시의 ‘네 손을 위한 작은 모음곡’ 중 ‘조각배’와 ‘발레’를 연주했다.

17일 오후 7시 서울 서초동의 한예종 캠퍼스 이강숙홀에서 열린 ‘포르테 콘서트’ 중 한 장면이었다. 8월 취임한 김대진 총장은 첫 공식 행사로 이날 장애인과 비장애인 연주자들이 함께하는 송년 콘서트를 마련했다. 마지막 순서로는 김예지 의원과 함께 피아노를 연주했다. 김 의원은 두 살부터 시각을 잃기 시작했고 숙명여대 피아노과를 일반 전형으로 졸업, 미국 피바디 음악원, 위스콘신 대학에서도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 피아노의 공간을 두 명이 나눠야 하는 합주는 쉽지 않다. 두 연주자는 악보를 보지 않고 외워서 연주하면서 본능적으로 영역을 조절하며 음악을 만들었다. 윗 성부를 맡은 김 의원은 선명한 소리로, 김 총장은 여유로운 음악으로 호흡을 맞췄다. 김 의원의 곁에는 안내견이 내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김 총장은 “한예종에는 5개원에서 23명의 장애 학생이 예술을 전공하고 있다”고 했다. “비장애인은 장애인에 적응하고, 장애인은 비장애인과 협업하는 경험을 하게 해주는 일이 교육이라 생각했다. 강의실에서는 못 배우고, 경험으로만 할 수 있는 일이라 꼭 무대를 마련하고 싶었다.” 그는 또 “장애를 넘어 예술이 가진 힘을 보여드리기 위한 음악회”라고 덧붙였다. 공연은 김 총장이 국회를 찾아가 김예지 의원에게 제안하면서 이뤄졌다. 김 의원은 “원래는 축사만 할 생각이었는데, 합주를 제안해주셔서 기쁘게 무대에 오른다”고 말했다.

이날 무대에는 지적 장애, 시각 장애를 가진 한예종 음악원 학생들이 비장애인 학생들과 함께 연주했다. 첼로를 전공하는 시각 장애 학생 김민주는 비장애인 학생인 이성호(클라리넷), 윤모영(피아노)과 함께 베토벤 3중주 한 악장을 연주했다. 셈여림과 뉘앙스에서 셋이 일치된 음악을 들려주며 함께 연주하는 의미를 높였다. 비장애인 학생들은 앞이 보이지 않는 동료를 위해 손을 잡아 무대로 이끌어주고, 박수 소리에 맞춰 함께 인사하기 위해 노력했다.

발달 장애를 가지고 바이올린을 전공하는 학생 박준형은 하루 만에 대타 출연하고도 침착하게 연주했다. 원래 출연자였던 한 학생이 코로나19 밀접 접촉자로 분류되면서 격리에 들어가 무대에 서지 못하게 됐기 때문이다. 박준형 학생은 비예냐프스키의 협주곡 중 느린 악장을 여유롭게 또박또박 연주했다. 김예지 의원은 “한예종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 학생들이 한 무대에 서는 일은 처음이라고 들었다”며 “이상적인 무대였다”고 했다.

이날 출연진 전원은 다시 나와 앙코르로 크리스마스 캐롤 메들리를 연주했다. 사회를 맡은 이강호 한예종 음악원장(첼리스트)은 “위대한 성과는 느리지만 연속된 여러 번의 작은 일들로 이루어진다”는 반 고흐의 말을 인용하며 공연을 마무리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음악가들이 함께 만드는 무대의 첫걸음에 대한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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