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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후 유산 1억 기부하겠다" 33세 소방관이 결심한 사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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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초록우산어린이재단 그린레거시클럽 36호 회원인 권유진 인천서부소방서 소방관. 9월 14일 서울 중구 재단 본부에서 진행된 행사에 참여한 모습이다. [재단 제공]

초록우산어린이재단 그린레거시클럽 36호 회원인 권유진 인천서부소방서 소방관. 9월 14일 서울 중구 재단 본부에서 진행된 행사에 참여한 모습이다. [재단 제공]

"사실 생사의 고비를 넘나드는 직장인은 거의 없잖아요. 저는 소방관이다 보니 이번 현장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 고민을 하던 중 우연히 그린레거시클럽에 대해 알게 됐죠."

올해 8년 차 소방관인 권유진(33)씨는 지난 8월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의 그린레거시클럽(Green Legacy Club)에 가입했다. 그린레거시클럽은 유산 기부를 공증하거나 서약한 후원자들의 모임이다. 2019년 10월 발족한 이후 지난 17일까지 총 43명의 후원자가 유산기부에 동참했다. 권씨는 36호 가입자다. 당장의 기부도 망설이는 이들이 많은데 권씨는 왜 사후 유산까지 기부하겠다고 나선 것일까. 권씨를 비롯해 2021년 그린레거시클럽에 가입한 세 후원자의 사연을 담아봤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 '그린레거시클럽' 가입한 따뜻한 후원자들

권씨와 재단과의 인연은 2017년부터 시작됐다. 소방공무원이 되면서 안정적인 생활이 가능해지자 곧장 재단에 월 20만원의 정기후원을 시작했다. 권씨는 “어머니가 저를 혼자 키우셨다. 어렸을 적 동사무소에서 식권을 받아 끼니를 해결하거나 복지회관의 도움을 받았다”며 “나중에 크면 어린이들을 돕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하게 가지고 있었다”고 말했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 그린레거시클럽 36호 회원인 권유진 인천서부소방서 소방관. 사진은 2019년 서부소방서 정서진수난구조대 근무 당시 모습이다. [권씨 제공]

초록우산어린이재단 그린레거시클럽 36호 회원인 권유진 인천서부소방서 소방관. 사진은 2019년 서부소방서 정서진수난구조대 근무 당시 모습이다. [권씨 제공]

이후 재단 홈페이지를 보던 권씨는 우연히 그린레거시클럽에 대해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권씨는 “부모님이 다 돌아가셔서 가족도 없는 상태이고 소방관이다 보니 현장에서 잘못되는 경우도 있어서 유산 기부를 해보자는 마음이 들었다”고 말했다. 특히 기부 방법이 다양했던 게 눈길을 끌었다고 했다. 어떤 이는 사망 보험금을, 또 어떤 이는 전세 보증금을 내놓기도 했다. 이에 권씨는 주식 계좌를 통해 총 1억원의 후원금을 약정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보통 ‘내가 상황이 좋아진 다음에 기부하겠다’고 마음먹는 사람이 많은데 꼭 상황이 좋아서 돕는 건 아니다”라며 “조금씩이라도 약정할 수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동참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고인 뜻 기려 유족이 사후 유산 기부하기도

초록우산어린이재단 그린레거시클럽 34호 가입자인 고(故) 차훈영씨의 모습이다. [재단 제공]

초록우산어린이재단 그린레거시클럽 34호 가입자인 고(故) 차훈영씨의 모습이다. [재단 제공]

권씨보다 일주일 먼저 그린레거시클럽에 가입한 고(故) 차훈영(70)씨는 유족이 고인의 뜻을 기려 사후에 유산을 기부하게 된 사례다. 고인은 글로벌 봉사 단체인 국제라이온스협회 지역부총재직에 재임했을 정도로 생전 사회 봉사에 적극적이었다.

부인 김명희(63)씨와 함께 위탁 아동 보호 활동도 17년째 이어왔다. 올해 17살이 된 아이는 출생 3주차에 차씨 부부를 만나 지금까지 보호받고 있다. 유족에 따르면 아이는 3살 때 지적 장애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고인은 아이를 포기하지 않았다. 아이가 고등학생이 되기 전까지 매일 치료센터에 데려다주는 등 헌신적으로 노력한 덕분에 현재는 일상생활을 하는 데 크게 지장이 없는 수준이라고 했다.

그러던 중 그는 지난 2월 건강검진을 받으러 병원에 입원했다가 돌연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아직 그의 죽음이 믿기지 않는다고 한 부인 김씨는 "평소 남편이 고아원에 물품 기부를 해오기도 했고 유산을 좋은 데 쓰고 싶다고 한 뜻을 기려 유산 기부를 결심했다”고 밝혔다. 부인과 세 아들이 유류분 중 일부 상속을 포기하고 고인 이름으로 총 1억원을 기부했다. 이 기금은 재단의 가정위탁보호사업과 고인이 위탁 보호한 아이의 자립기금으로 사용될 예정이다.

“떳떳하게 나눔 권하고 싶었다” 8년 차 사회복지사의 결심

초록우산어린이재단 그린레거시클럽 27호 가입자인 김철웅씨가 9월 14일 서울 중구 재단 본부에서 진행된 헌액식에 참여한 모습이다. [재단 제공]

초록우산어린이재단 그린레거시클럽 27호 가입자인 김철웅씨가 9월 14일 서울 중구 재단 본부에서 진행된 헌액식에 참여한 모습이다. [재단 제공]

그리고 여기, 올해 가장 먼저 그린레거시클럽에 가입한 이가 있다. 1월 27일 27호 회원이 된 김철웅(33)씨다. 사회복지사 경력 8년 차인 김씨는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전북지역본부에서 일하고 있다. 주로 후원자를 발굴하는 업무를 담당하며 일선에서 기부 사례를 지켜봐 온 김씨는 특히 작년에 만난 후원자들을 보면서 유산 기부에 동참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후원자 중 한 분은 식당을 운영하는 자영업자였는데 그동안 매출의 절반인 월 250만원씩을 기부해오다가 코로나19로 경제적 어려움이 커져 100만원으로 후원금을 줄이게 됐다”며 “일반인들에 비해서는 여전히 많은 금액이었음에도 그분이 미안하다고 우시더라. 거기서 크게 마음이 울렸다”고 말했다. 이 외에도 무연고 아이들을 위해 119명의 후원자를 직접 발굴하는 데 성공한 김복수 소방관의 사연을 설명하면서 “내가 단지 직장인의 입장에서 사회복지사 일을 해온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됐다”며 “특별한 기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에 김씨는 지난 1월 사망보험금 3000만원을 유산 기부로 내놨다. 김씨는 “다른 본업을 하면서 주변에 나눔을 전파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본래 이 일을 하는 사람이라 조명받는 게 부끄럽다”며 “다만 누구든 쉽게 다양한 방식으로 기부할 수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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