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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통 600개 쓰며 잠수, 물고기 직접 보고 528종 그렸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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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7호 24면

『한반도 바닷물고기 세밀화 대도감』 펴낸 주역들 

15년 걸려 『한반도 바닷물고기 세밀화 대도감』을 펴낸 화가 조광현(왼쪽)씨와 보리출판사의 김용란 이사. 모두 528개 어종을 다뤘다.

15년 걸려 『한반도 바닷물고기 세밀화 대도감』을 펴낸 화가 조광현(왼쪽)씨와 보리출판사의 김용란 이사. 모두 528개 어종을 다뤘다.

10년에 강산이 변한다면 15년에는 기념비적인 책이 만들어진다. ‘기념비’라는 표현은 기자가 지어낸 게 아니다. 올해 롯데출판문화대상 대상(大賞)을 수상한 『한반도 바닷물고기 세밀화 대도감』(보리)에 상 운영 주최 측이 붙였다.

책은 우선 외형적으로 기념비라는 표현에 값한다. 가로·세로 24.2X35㎝(A4 용지보다 큰 판형이다), 6.2㎏, 820쪽. 흔히 벽돌책이라고 표현하는 두꺼운 책을 너끈히 뛰어넘는 크기다. 가격도 28만원이나 한다. 이런 책을 15년에 걸쳐 만들었다는 얘기다. 사실이라면, 갈수록 다급해지고 임기응변식이 되는 것 같은 우리 출판 현실에 보기 드문 긴 호흡이다.

책 만든 사람들 얘기를 들어보니 ‘기념비’는 주관적 표현이 아니라 사실에 가까운 표현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리출판사의 김용란 이사와 『대도감』의 세밀화를 그린 조광현 화가를 직접 만나고, 『대도감』의 글을 쓴 명정구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자문위원, 『대도감』 편집자 김종현씨를 전화 인터뷰했다.

조광현씨가 그린 가숭어 세밀화. [사진 임안나, 보리출판사]

조광현씨가 그린 가숭어 세밀화. [사진 임안나, 보리출판사]

어떤 책인가.
명정구="한반도의 바닷물고기 1000종 가운데 528종을 다뤘다. 15년간 『대도감』에만 매달린 건 아니다. 전작이 있었다. 2013년에 우리가 보통 ‘큰도감’이라고 부르는 『바닷물고기 도감』 작업을 조광현 화가와 함께 했다. 그 연장선상에 있는 책이다. 그런데 『바닷물고기 도감』에서 다룬 어종은 158개에 불과했다. 학생이나 일반인용이었다고 할 수 있다. 『대도감』은 종수를 확 늘렸고 전문가들도 볼 수 있게 최신 정보를 업데이트했다. 도감이라고 이름 붙였지만 바닷물고기의 형태·분류형질·생태 같은 학술적 내용뿐 아니라 시시콜콜 읽을거리를 추가해 박물지(博物志) 성격이다.”

글도 중요하지만 『대도감』이다 보니 이미지가 중요할 수밖에 없다. 조광현 화가는 바닷물고기를 직접 눈으로 보기 위해 스킨스쿠버 다이빙을 했다고 알려져 있다. 인터넷 교보문고에 그가 바닷속에서 유화를 그리는 신기한 동영상이 올라와 있다(『대도감』의 세밀화가 수채화이기는 하다). 홍익대 서양화과 78학번인 조 화가는 뒤늦게 군산대에서 해양생물학 석사도 땄다고 한다. 바닷물고기를 제대로 알아야 세밀화를 잘 그릴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다.

조광현씨가 그린 참돔 세밀화. [사진 임안나, 보리출판사]

조광현씨가 그린 참돔 세밀화. [사진 임안나, 보리출판사]

세밀화를 위해 다이빙이 필수적인가.
조광현="실제로 봐야 그림이 달라진다. 어시장의 죽은 생선이나 사진자료, 동영상 같은 거로는 감이 안 온다. 직접 봐야 얘들이 얼마나 반투명 상태인지, 얼마나 색깔이 영롱하고 반고체나 겔 같은 상태인지, 빛의 각도에 따라 색깔이 어떻게 수시로 변하는지 알 수 있다. 살아 움직이는 걸 관찰한 다음 자료를 모아 구성하면 그림이 달라진다.”
어려움도 많았을 것 같다.
조광현="2006년 보리출판사 윤구병 설립자로부터 바닷물고기 세밀화 작업을 제안받았다. 다이빙은 그전부터 하고 있었다. 세밀화에 손대면서 본격적으로 국내외 다이빙을 다녔다. 물속에서 공기통 한 통을 사용하며 30~40분간 하는 잠수를 로그, 우리들 말로 ‘깡’이라고 한다. 지금까지 600로그 정도 했다. 1000로그 정도면 아주 베테랑급인데, 나도 강사 레벨이다. 필리핀으로 다이빙 나갔다가 갑자기 큰 파도가 치는 바람에 죽을 뻔한 적도 있다.”

김종현씨는 "세밀화 작업이 워낙 방대하다 보니 조광현 선생님이 지치면 안 된다는 생각에 단기간에 성과를 내기보다 긴 호흡으로 가는 게 중요한 일이었다”고 했다. 528종은 한 점 한 점 완성한 게 아니다. 전체적으로 완성도를 조금씩 높여 나갔고 중간중간 전문가인 명정구 위원의 감수를 받아야 했다. 물고기의 강한 가시, 부드러운 가시 숫자 하나 때문에 다시 그리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많이 걸릴 수밖에 없다.

조광현씨가 그린 참조기 세밀화. [사진 임안나, 보리출판사]

조광현씨가 그린 참조기 세밀화. [사진 임안나, 보리출판사]

제작 기간이 길어지면 그만큼 비용도 늘어났을 텐데.
김용란="1년 단위 회계연도 안에 끝나지 않고 몇 년에 걸쳐 진행되는 작업이다 보니 전체 비용이 얼마인지 따지기 어렵다. 초판을 700부 찍었는데 다 팔려도 비용 회수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무모한 작업인데 굳이 밀어붙인 이유는.
김용란="보리출판사는 아이들이 자기 앞가림을 하고 더불어 살 힘을 기르는 데 보탬이 되자는 취지로 출발한 교육출판사다. 자연과 친해져야 가치관이나 감성이 올바로 형성될 수 있다는 생각에 바닷물고기를 포함한 동식물 도감 출판을 시작했다. 『대도감』을 마치고 보니 지금까지처럼 미친 척하고 계속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든다.”
조광현씨가 『한반도 바닷물고기 세밀화 대도감』 표지. [사진 임안나, 보리출판사]

조광현씨가 『한반도 바닷물고기 세밀화 대도감』 표지. [사진 임안나, 보리출판사]

김용란 이사는 "우리 생명자원을 기록하는 일이고 교육자료인데 문화체육관광부나 해양수산부에 도움을 요청해 봤지만 여의치 않은 상황”이라고 했다.

어쨌거나 바닷물고기 대도감 작업은 일단락됐다.
조광현="LG의 고 구본무 회장 지원을 받아 『한국의 민물고기』(LG상록재단) 세밀화 작업을 했다. 233종을 그렸다. 가능하다면 이번 바닷물고기 세밀화와 합쳐 ‘한국의 물고기(Fish of Korea)’라는 제목의 책을 내고 싶다.”

명정구="이번 『대도감』이 중간단계라고 생각한다. 전체 바닷물고기 1000종 가운데 못 다룬 나머지 500종 도감 작업을 누군가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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