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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와 교감하는 살인마 앞세워, 사랑의 탄생 그렸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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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영화 ‘티탄’ 주인공 알렉시아는 자동차 전시장의 관능적인 댄서로 등장하지만 곧 비정한 살인마로 돌변한다. ‘바디 호러’의 대가로 주목받는 쥘리아 뒤쿠르노 감독이 연출했다. [사진 왓챠]

영화 ‘티탄’ 주인공 알렉시아는 자동차 전시장의 관능적인 댄서로 등장하지만 곧 비정한 살인마로 돌변한다. ‘바디 호러’의 대가로 주목받는 쥘리아 뒤쿠르노 감독이 연출했다. [사진 왓챠]

어릴 적 교통사고로 뇌에 티타늄을 심은 뒤 자동차와만 교감할 수 있게 된 알렉시아(아가트 루셀)는 살인을 저지른 뒤부터 몸속에 쇳덩이가 자라는 걸 느낀다. 경찰을 피해 도망치던 알렉시아는 실종 전단 속 소년과 닮은 모습으로 위장하고 10년째 아들을 찾던 소년의 아버지 뱅상(뱅상 랭동)과 기묘한 동거를 시작한다.

올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티탄’(9일 개봉)은 올해 가장 충격적인 영화로 꼽힌다. 괴팍한 성미의 소녀 알렉시아가 운전석의 아버지를 괴롭히다 사고를 겪는 첫 장면부터 성인이 되어 살인을 저지르고는 자동차와 성교를 하는 듯한 판타지 장면까지. 응급구조대장인 뱅상은 강한 남성성에 집착하는 마초지만, 아들로 인한 슬픔 탓에 속은 곯을 대로 곯았다.

개봉 전 사전 시사에서 영화를 본 배우 강동원은 “내가 지금 뭘 본 건가” 혀를 내둘렀고, 박찬욱 감독은 “신인류의 탄생을 목격하다”란 관람평을 남겼다. 프랑스 감독 쥘리아 뒤쿠르노(38)는 각본·연출을 겸한 이 두 번째 장편으로 황금종려상을 받은 역대 두 번째 여성 감독이 됐다. ‘피아노’의 제인 캠피온 이후 28년 만이다. 뒤쿠르노 감독은 “괴물성은 규범이라는 벽을 밀어내는 무기이자 힘이다. 괴물을 받아들여 준 칸영화제에 감사한다”는 수상 소감을 남겼다.

쥘리아 뒤쿠르노

쥘리아 뒤쿠르노

‘티탄’에 대해 “‘사랑의 탄생’을 그린 이야기다. 결국 모든 건 선택의 문제”라 설명한 그를 지난 7일 화상으로 만났다.

주인공으로 ‘사이코패스’ 살인마를 택한 이유는.
“그전에 우리가 알지 못한 인간성, 사랑을 처음으로 발견해나가는 여정이기에 ‘사랑의 탄생’에 관한 영화라고 생각했다. 그 여정을 잘 보여주려면 관객이 철저히 다가갈 수 없는 인물이어야 했다.”
영화 초반 알렉시아가 겪는 극도의 신체적 고통을 관객이 느끼게 만드는 방식으로 연출했는데.
“관객이 알렉시아의 행위나 사고방식이 아니라 그의 ‘몸’을 통해 첫 공감의 순간을 갖길 바랐다. 아주 깊은 차원에서 이뤄지는 본능적인 공감이다. 어떤 사람이 우리 눈앞에서 손에 못을 박는다면 그 고통을 즉각적으로 느끼게 될 텐데, 첫 장면부터 그런 순수한 신체적 공감, 반응으로 알렉시아와 만나게 하려 했다.”
뱅상은 정의를 중시하고 남성성에 집착하는 인물이다. 알렉시아를 제일 이해할 수 없을 듯한 인물을 유일한 소통 상대로 설정한 까닭은.
“처음에 뱅상은 텅 빈 껍데기, 피로에 지친 좀비 같은 상태였다. 머릿속엔 무슨 수를 써서든 아들을 되찾아야 한다는 강박이 가득하다. 뱅상은 폭력적이고 어둡고 이기적이다. 알렉시아나 뱅상이나 서로에게 위협이 될 만한 존재인데 오히려 그로부터 관계가 발전한다. 모든 문제를 폭력과 살인으로 돌파해온 알렉시아가 수사망을 피하려다, 자기보다 더 미친, 강한 사람을 만나 일종의 덫에 빠진 셈이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극도의 외로움이다.”

알렉시아의 극단적 변화를 연기해낸 주연 아가트 루셀은 사진작가 겸 배우로, 이 영화가 장편 데뷔작이다. 뒤쿠르노 감독은 “낯선 얼굴을 찾으려 했다”면서 “각도에 따라 달라지고, 무엇이든 믿게 하는 얼굴”로 루셀을 발탁했다고 했다.

6년 전 ‘아버지의 초상’으로 칸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은 프랑스 중견 배우 뱅상 랭동은 자신의 이름을 딴 이번 역할로 “연기 인생에서 찾고자 한 걸 얻었다”고 한 바 있다. 뒤쿠르노 감독은 “그가 얻고 싶었던 게 뭔지 나도 들었다”며 “모든 것을 놓아버리는 것이다. 그는 간절히 붙잡지 않고 놓아버리는 힘을 얻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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