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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마 1cm만 짧아도" 이런 성희롱, 13년 묵인한 국립암센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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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암센터 간부급 의사 등이 계약직 직원 등을 상대로 수년간 성희롱과 성추행을 일삼았다는 의혹이 제기된 가운데 센터가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을 보직 해임한 데 이어 경찰에 수사 의뢰했다. 암센터 노조 측은 센터가 뒷북 대응에 나섰다고 비판했다. 또 구체적인 재발방지책 마련을 요구했다.

13일 경기도 고양시 국립암센터 부속병원 신관앞에서 마스크를 한 국립암센터지부 조합원이 직위를 이용한 성희롱·성추행 사건에 대해 항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13일 경기도 고양시 국립암센터 부속병원 신관앞에서 마스크를 한 국립암센터지부 조합원이 직위를 이용한 성희롱·성추행 사건에 대해 항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립암센터는 14일 “성폭력 방지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직장 내 성희롱 사건을 수사기관에 의뢰하고, 여성가족부와 보건복지부에 사건 현황과 경과를 보고했다”고 밝혔다. 앞서 암센터 내 과장급 의사 등이 직원들에게 술자리를 강요하고 부적절한 발언 등을 지속해왔다는 의혹이 일었다. 지난 10일 전국보건의료노조 경기지역본부 국립암센터 지부는 성명문에서 “부서장의 직위를 이용한 성희롱, 성폭력에 대한 다수의 진술을 확보했다”며 “피해자들은 퇴사원을 통해 상세한 진술을 했음에도 국립암센터는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는 등 사건을 은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노조에 따르면 지난 7월 특정 부서에서 성희롱 사건이 발생했다. 고충처리위원회의 권고로 암센터는 해당 부서 직원 68명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벌였고 문제가 된 26건가량의 사건을 인지했다. 노조 측이 자체 조사했더니 2007년부터 2020년 7월까지 부서장 등이 술자리에서 직원들에 술을 따르라고 강요하거나 부적절한 신체 접촉을 해왔다는 피해자 제보가 쏟아졌다. 노조가 공개한 구체적 진술을 보면 “치마가 1㎝만 더 짧았어도 일등이었다” “이쁜 짓 좀 해봐라” 등의 내용이 담겨있다. 노조는 과장급 의사 A씨와 방사선사 B, C씨 등 특정된 가해자는 3명으로 파악됐고 피해자는 계약직·정규직 직원 등 최소 9명 이상이라고 밝혔다.

한성일 지부장은 “중간 관리자들이 과장 옆자리에 비정규직 직원의 이름을 써놓고 앉혔고 이들에 어깨동무하면서 ‘정규직을 시켜주겠다’고 발언했다는 내용도 있다”며 “힘없고 어린 친구들을 대상으로 직위를 이용해 의도를 가진 조직적 성희롱·성추행 사건”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체 조사 이후 서홍관 원장에 여러 차례 진상 조사를 요구했지만, 징계 시효를 이유로 구두 경고로 마무리하려 했다”라고 주장했다. 노조는 서 원장이 센터 징계위원장을 맡은 것도 사건을 은폐, 축소하려는 의도라고 문제 삼았다.

13일 경기도 고양시 국립암센터 부속병원 신관앞에서 국립암센터지부, 보건의료노조 조합원들이 국립암센터내 직위를 이용한 성희롱·성추행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과 가해자 처벌을 주장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13일 경기도 고양시 국립암센터 부속병원 신관앞에서 국립암센터지부, 보건의료노조 조합원들이 국립암센터내 직위를 이용한 성희롱·성추행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과 가해자 처벌을 주장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암센터는 이와 관련, 지난 8일 기명 피해 사실이 접수된 이후 9일 원장 지시에 따라 긴급 대책회의를 열었다. 10일엔 진상조사특별위원회를 구성한 뒤 12일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의 보직해임을 단행했다고 밝혔다. 13일에는 해당 사건을 경찰에 수사 의뢰했다. 암센터 관계자는 “은폐, 축소하려 했다는 건 사실이 아니다. 오래된 사안이 많아 내부적으로 징계 시효 문제를 어떻게 연장할지 검토하고 있었고 사안이 중대한 것 같아 해당 부서에 교육도 했다”며 “그러던 중 기명으로 피해 사실이 접수돼 관련 절차를 진행했다”고 밝혔다. 또 원장이 징계위원장을 맡게 된 데 대해서도 “규정이 바뀌면서 위원장을 변경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성일 지부장은 “보직 해임과 수사 의뢰만으로는 적절한 조치라 보지 않는다”며 ▶원장의 징계위원장직 사임과 레드휘슬(익명 제보시스템) 운영 중단 철회 ▶성희롱·성폭력 사건의 징계 시효(3년) 제한 전면 폐지 ▶철저한 진상조사와 무관용 원칙에 따른 징계 ▶사건조사에 노조 참여 보장 ▶재발방지책 마련 등을 요구했다.

암센터 관계자는 “오늘(14일) 노조와의 만남에서 노조의 5가지 요구사항에 대해 적극적으로 검토해나갈 것이라 했고 좋은 분위기로 마무리됐다”며 “피해자를 보호하고 지원하는 데 노력하고 직장 내 성폭력·성희롱 지침을 노사 간의 소통을 통해 강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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