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⑨이 문자에 콜백하면 게임 끝···1532건 '은행문자' 4가지 비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저금리 대출을 빙자한 보이스피싱은 피해자가 ‘미끼’를 물면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미끼문자 수신→대표번호 발신→상담원 연결로 이어지며 점점 피해자로 낚이게 된다.

60대 남성 A씨가 보이스피싱 사기범에게 속아 4000만원을 잃게 된 것도 주거래 은행을 사칭한 문자를 받고 나서였다. A씨는 “문자에 안내된 대표전화로 전화했더니 상담원이 ‘조금 전에 접수됐네요. 양식을 보내줄 테니 개인 인적사항을 적어서 보내달라’고 하더라”고 했다. 그는 이어 “나는 더 기가 막힌 게, 내가 피해 본 그 전화번호로 나중에 다른 은행 마크를 달고 문자가 또 오더라”고 했다. 미끼문자 차단과 발송업체 단속이 시급한 이유다.

미끼문자 1532건 분석해보니

중앙일보는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가 검거한 한 미끼문자 발송업체의 문자 발신내역 1532건(올해 8~10월)을 입수해 유형을 분석했다. 범행에 이용되는 문자 유형만 알아도 피해를 줄이는 데 보탬이 될 수 있다는 취지에서다. 보이스피싱예방협회와 함께 피해자 63명을 한 달간(10월 28일~11월 28일) 조사한 결과에서도 저금리 또는 대환대출 유도(19명, 30.2%)로 피해를 본 경우 최초 접근 수단은 ‘문자 또는 SNS’(13명)가 대부분이었다.

기자가 받은 보이스피싱 미끼문자 뜯어보니.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기자가 받은 보이스피싱 미끼문자 뜯어보니.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시중 은행, 정부지원자금…번듯한 시스템 사칭

대출을 유도하는 미끼문자는 모두 번듯한 제도권 은행과 그럴싸한 정부지원자금을 사칭하고 있었다. 막연한 ‘신뢰’를 미끼로 사용하는 것이다. 미끼 문자에 등장하는 금융기관은 우리은행(244건), NH농협(215건), 국민은행(215건), 신한은행(207건), IBK기업은행(192건) 등 1금융권이 많았고 카카오뱅크(79건) 등 인터넷 은행도 있었다. 공통으로 ‘정부 지원’이란 문구를 쓰면서 ‘긴급생활안정자금’ ‘서민긴급대출’ ‘고용안정자금’이라고 홍보하며 피해자를 안심시켰다.

실제 정부가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지원하는 ‘희망회복자금(245건)’, ‘버팀목자금플러스(189건)’, 저소득ㆍ저신용자를 대상으로 한 ‘새희망홀씨(110건)’ 등을 그대로 가져다 쓰는 경우가 많았다.

이현덕 금융감독원 불법사금융대응팀장은 “은행연합회는 자율규제에 비대면 은행영업지침이라는 게 있다. 원칙적으로 은행은 문자로 대출마케팅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은행 대출 광고는 일단 의심하라는 설명이다.

“예산 초과 시 조기 마감” 조급증 유도

시중은행을 사칭한 뒤에는 문자 내용에 ‘조기마감’ ‘한도 소진’ 등의 문구를 넣어 조급한 심리를 조성하는 치밀함도 보였다. 미끼문자 발송업체가 지난 10월 14일 오전 9시 50분 발송한 문자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고객님께서는 『버팀목플러스』 대상자임을 알려드립니다. 신청인원이 예산을 초과할 경우 조기 마감될 수 있습니다.”

신청 기간을 ‘10월 15일 16시’까지로 하루 내외로 명시해 한정자금인 양 속였다. 문제는 대출 상담을 받았거나 대출이 고민인 경우 이런 미끼문자에 쉽게 넘어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지난해 1월 2000만원의 피해를 본 50대 남성 B씨는 “대출이 있으면 신용조회를 하는 전화가 자주 오지 않나. 하루는 신한은행인가 신한금융인가에서 문자가 왔길래 전화를 했다. 제가 거기서 대출받은 게 5000만원이 있는데 추가로 1억 2000만원이 나온다는 말에 속아 넘어갔다”고 말했다. 서준배 경찰대 행정학과 교수는 “돈이 궁한 사람에게 대출해준다고 하면 그 말을 듣는 순간 상식이나 이성이 사라진다. 보이스피싱 범죄 조직이 사람이 혹할 수밖에 없는 시나리오를 연구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은행연합회의 비대면 은행영업 지침. ″은행은 은행영업을 목적으로 문자를 전송할 수 없다″고 나와있다.

은행연합회의 비대면 은행영업 지침. ″은행은 은행영업을 목적으로 문자를 전송할 수 없다″고 나와있다.

대표번호로 전화 거는 순간 타깃 된다

미끼문자에 나와 있는 02 또는 1588로 시작하는 대표 번호로 피해자가 전화를 걸게만 해도 보이스피싱의 절반은 완성된다. 예를 들어 ‘(상담신청) ☏: 02-3431-8978 ①안내 음성에 따라서 상담신청(1번)’이란 안내를 보고 전화를 걸어도 통화 연결은 안 된다. 해당 금융기관의 실제 대표번호도 아니다. 그런데도 번호를 적어놓는 이유는 나중에 은행 상담원인 양 전화를 걸기 위한 데이터베이스 수집 차원이다. 문자에 적힌 대표번호를 누르는 순간 내 번호가 전달돼 보이스피싱 범행의 타깃이 되는 셈이다. 곽원섭 금감원 금융사기대응팀장은 “(피해자가) 콜백을 하면서 새로운 작업이 시작된다. 전화를 다시 걸어서도 안 되고 전화를 한다면 문자에 나온 번호가 아니라 인터넷을 검색해서 나온 번호로 하라”며 “돈이 필요하면 금융회사를 방문하라”고 당부했다.

미끼문자는 신고가 많이 들어와야 사고 번호로 특정돼 추가 피해를 예방할 수 있다. 한국인터넷진흥원(118) 홈페이지의 ‘발신번호 거짓표시 신고’ 제도를 이용하면 된다. 정부는 최근 금융기관 사칭 등에 따른 보이스피싱 피해를 막기 위해 사이버사기 통합 신고체계를 마련해 중장기적으로 통합 신고번호를 신설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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