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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제왕적 대통령제’ 손보는 논의, 지금 시작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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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국민의힘, ‘대통령 권력축소위원회’ 출범 검토  

여야 ‘작은 청와대’ 통한 협치 모델 논의할 시점

국민의힘이  윤석열 대선후보의 직속 기구로 ‘국민이 주인 된 권력개혁위원회’(가칭) 출범을 계획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대통령 권력 내려놓기와 ‘작은 청와대’를 만드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위원회의 설립 취지라고 한다. 우리 정치의 가장 큰 폐해로 지적돼 온 게 제왕적 대통령제와 협치 실종이다. 위원회의 출범이 국가적 난제의 해법을 찾는 계기가 돼주길 바란다.

우리 헌법은 입법·사법·행정 3권의 분립을 분명히 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행정을 총괄하는 청와대 권력이 국정의 모든 분야를 좌지우지해 왔다. 특히 청와대는 여당이 민심 대신 대통령 뜻을 섬기도록 강제하며 야당과 극한 충돌을 불사하는 구도를 만들어 왔다. 여기에 이념·지역·세대·남녀 갈등까지 끌어들인 ‘갈라치기’ 국정으로 나라의 분열이 증폭되면서 5년마다 치러지는 대선은 여야가 생사를 걸고 싸우는 ‘전쟁’판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5월 10일 취임사에서 “권위적 대통령 문화를 청산하고 제왕적 권력을 최대한 나누며 대화하고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4년 반이 지난 지금 문재인 정부는 역대 어느 정부보다 대통령에게 힘이 쏠린 ‘청와대 정부’였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대통령제의 폐해는 다음 정부에서 더욱 커질 것으로 우려된다. 내년 5월 취임할 새 대통령은 임기의 첫 2년을 현 21대 국회와 보낸다. 내년 3월 대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재집권하면 새 대통령과 180석 여당의 독주가 가능해진다. 반면에 국민의힘이 정권 교체에 성공하면 180석 야당에 맞서 새 대통령이 ‘국민의 뜻’이라며 자신의 공약을 밀어붙이면서 국정이 마비될 게 불 보듯 하다.

이런 극단적 상황을 피하려면 대선이 석 달도 남지 않은 지금 이재명 민주당 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를 비롯한 대선후보들이 대통령 권력을 축소하고 여야 간 ‘협치’ 모델을 만드는 논의를 즉각 개시해야 한다. 이 과제를 외면하면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진 쪽은 큰 고통을 겪고, 5년 뒤 대선은 정권을 지키려는 쪽과 빼앗으려는 쪽의 전쟁판이 되는 흑역사가 재연될 것이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일곱 번 치러진 대선이 그 비극의 악순환을 증언하고 있지 않은가.

윤 후보는 청와대 민정수석실 폐지 등 대통령 권력 제한에 대해 나름 공약을 내놓았지만 권력 구조를 바꾸는 개헌 논의와는 거리를 두고 있다. 이 후보는 의원 면책특권 제한 등을 정치개혁 공약으로 내놨지만 청와대 권력 축소에 대해선 청사진을 제시한 바 없다. 그런 만큼 ‘국민이 주인 된 권력개혁위원회’ 출범을 계기로 두 후보가 가슴을 열고 바람직한 대통령 권력 축소 방안을 협의할 필요가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