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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보니 토르마차 탄 터키사제…내가 산타 믿기로 한 까닭 [뉴스원샷]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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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호 레저팀장의 픽 - 산타클로스 사가

터키 남부의 작은 마을 뎀레에 성 니콜라스 교회가 있다. 성 니콜라스는 산타클로스의 모델이 된 초기 기독교 성인이다. 사진은 교회 앞에 있는 성 니콜라스 동상.

터키 남부의 작은 마을 뎀레에 성 니콜라스 교회가 있다. 성 니콜라스는 산타클로스의 모델이 된 초기 기독교 성인이다. 사진은 교회 앞에 있는 성 니콜라스 동상.

산타클로스의 계절이 돌아왔습니다. 올 크리스마스이브에는 산타 할아버지가 어떤 선물을 주실까 상상만 해도 설렙니다. 산타가 어딨냐고요? 저런, 산타를 믿지 않으시다니. 그럼, 전 세계 인구의 3%가 넘는 2억7000만 명이 괴질에 걸려 530만 명이 죽는 세상은 믿어지세요? 오늘 이 세상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암울하다면, 차라리 산타를 믿으며 연말을 보내는 게 더 현명하지 않을까요? 저는 다시 산타를 믿기로 했답니다. 산타 할아버지를 뵙고 왔거든요. 11월 터키 남쪽 지중해 연안의 작은 갯마을에서요. 산타클로스 사가(Saga·영웅의 전설)의 기원이 된 성 니콜라스 이야기를 들으시면 여러분도 당장 큼직한 양말 사러 나가실 겁니다.

리키아의 성인

성 니콜라스 교회 내부 모습. 2000년 역사를 자랑하는 건물로 성 니콜라스를 수호성인으로 모시는 정교회의 성지다.

성 니콜라스 교회 내부 모습. 2000년 역사를 자랑하는 건물로 성 니콜라스를 수호성인으로 모시는 정교회의 성지다.

BC 13세기∼서기 4세기 지금의 터키 남부 안탈리아 지방에 리키아(Lycia)라는 도시 국가가 있었습니다. 고유 언어를 사용했을 만큼 문화가 번창했으나, 페르시아·그리스·로마 등 주변 강대국의 속국으로 산 시절이 더 많았습니다.

서기 3∼4세기 리키아는 동로마 제국에 속했습니다. 하여 리키아의 종교도 기독교였습니다. 지역마다 주교를 뒀는데, 지금의 터키 남부 뮈라(Myra) 지역의 주교 중에 성 니콜라스(St. Nicolas·270∼343)라는 인물이 있었습니다. 초기 기독교 시대 지금의 터키 남부에서 활동했던 이 성직자가 산타클로스의 실제 주인공입니다.

성 니콜라스는 평생 선행을 베푼 성인이었습니다.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세 딸을 사창가에 팔려는 아버지가 있었답니다. 집안이 너무 가난해 딸들을 결혼시키지 못하고 팔아넘기려 했었다지요. 딱한 소식을 들은 성 니콜라스가 밤에 몰래 황금이 든 자루 세 개를 던져놓고 갔답니다. 뜻밖의 황금 덕분에 세 딸은 무사히 결혼할 수 있었고요. 이 전설에서 중요한 단서가 등장합니다. ‘밤에 몰래’라는 대목입니다. 성 니콜라스는 늘 아무도 모르게 선행을 했답니다. 우리의 산타클로스가 모두가 잠든 밤에 활동하는 건 다 이유가 있었던 겁니다.

성 니콜라스 교회 천장에 그려진 성 니콜라스. 한손에 성경을 들고 오모포리온을 둘렀다.

성 니콜라스 교회 천장에 그려진 성 니콜라스. 한손에 성경을 들고 오모포리온을 둘렀다.

이미 여러분은 성 니콜라스를 알현했을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유럽 교회에 들어가면 가톨릭 성인의 벽화가 있지요. 교회 천장과 벽에 그려진 성인 중에서 한손에 책을 들고 있는 성인이 성 니콜라스입니다. 성 니콜라스가 감옥에 갇혔을 때, 예수가 성경을 주고 성모 마리아가 오모포리온(가톨릭 전례복 겉에 두르는 장식 띠)을 줬다고 하네요. 성경과 오모포리온은 성 니콜라스의 상징물입니다.

성지 순례

터키 남부 해안에 뎀레(Demre)라는 갯마을이 있습니다. 성 니콜라스 교회가 있는 곳입니다. 성 니콜라스가 태어났다는 파타라(Patara)와도 가깝고, 지금은 작은 마을이 된 뮈라하고도 가깝습니다. 성 니콜라스 교회는 이름처럼 성 니콜라스가 활동했던 교회입니다.

성 니콜라스 교회 정원에 있는 성 니콜라스 동상. 어깨에 자루를 메고 있고, 동상 주위로 아이들이 있다.

성 니콜라스 교회 정원에 있는 성 니콜라스 동상. 어깨에 자루를 메고 있고, 동상 주위로 아이들이 있다.

교회 앞에 성 니콜라스 동상이 서 있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한손에 성경을 들고 오모포리온을 갖춘 모습입니다. 동상 왼쪽 발이 반지르르합니다. 여길 만지면서 기도하면 소원이 이뤄진다네요. 저도 악착같이 문질렀습니다. 교회 정원에 있는 동상은 모습이 다릅니다. 자루를 멘 성인 주위로 아이들이 모여 있습니다. 어깨에 멘 자루는 위에서 소개했던 황금 자루를, 아이들은 성 니콜라스가 어린이의 수호성인임을 상징합니다. 성 니콜라스가 특히 아이들을 예뻐했다지요. 산타클로스가 어른은 빼고 아이들에게만 선물을 주는 이유입니다.

성 니콜라스가 영면에 든 것으로 추정되는 석관. 지폐와 쪽지 수백장이 유리 벽 안에 있다.

성 니콜라스가 영면에 든 것으로 추정되는 석관. 지폐와 쪽지 수백장이 유리 벽 안에 있다.

성 니콜라스가 영면에 든 것으로 추정되는 대리석 관이 교회에 남아 있습니다. 선종 이후 한동안 관에서 향기로운 액체가 나왔었다고 합니다. 그 액체에 손을 대면 병이 나았다지요. 그 전설 때문인지 교회 앞 기념품 가게에서 성수도 팝니다(고민하다 끝내 안 샀습니다). 석관 주위로 유리 벽을 쳤는데, 유리 벽 안에 쪽지와 지폐 수백장이 있습니다. 석관에 기대 수많은 사람이 소원을 빌었던 게지요(저도 입장권에 소원을 적어 넣었습니다). 2000년 역사를 헤아리는 교회 건물은 폐허에 가깝지만, 빛바랜 성화가 그려진 천장과 벽은 사뭇 경이롭습니다.

뎀레 상가 벽에 붙은 성 니콜라스 교회 그림. 모두 러시아어다.

뎀레 상가 벽에 붙은 성 니콜라스 교회 그림. 모두 러시아어다.

뎀레에 도착했을 때 뜻밖의 장면에 놀랐습니다. 주차장, 상점, 교회 안팎의 안내문까지 러시아어투성이였습니다. 터키어만큼 러시아어가 많았고, 영어는 거의 보이지 않았습니다. 몰랐습니다. 러시아 정교회의 수호성인이 성 니콜라스였습니다. 교회 복원 공사를 할 때 러시아 황제가 지원도 했다고 합니다(정교회는 황제가 주교를 겸합니다). 한국에선 정교회 신자가 많지 않지만, 러시아를 비롯해 슬로바키아, 마케도니아, 세르비아, 불가리아 등 슬라브 지역에는 정교회가 국교인 나라가 많습니다. 그들의 성지가, 터키 남부의 한적한 갯마을에 있습니다.

사가의 진화  

뎀레 상가 앞에 서 있는 산타클로스 동상.

뎀레 상가 앞에 서 있는 산타클로스 동상.

유럽 북부 지역에서도 성 니콜라스를 각별히 기렸습니다. 교회의 수호성인으로 떠받드는 동유럽보다는 훨씬 친숙하고 일상적인 방법으로 성인을 따랐습니다. 성 니콜라스가 선종한 12월 6일을 축일로 정해 매해 의례를 치렀는데, 가장 대표적인 의례가 축일 전날 밤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네덜란드를 비롯한 독일·핀란드 등 유럽 북부 지역에 그 전통이 내려옵니다. 12월 5일 밤이면 지금도 집마다 신발을 밖에 내놓고 잠을 잔다지요.

네덜란드의 성 니콜라스 축일 풍속은 대서양을 건너 미국 뉴욕에도 상륙합니다. 뉴욕은 원래 네덜란드 땅이었지요. 17세기 영국과 네덜란드의 전쟁에서 영국이 이겨 지금의 뉴욕 일대가 영국 영토가 됐습니다. 네덜란드 청교도가 미국 동부로 이주할 때 성 니콜라스 축일 풍속도 함께 건너갔습니다. 성 니콜라스의 네덜란드 표기 ‘Sint Klaes’의 영어 표기가 산타클로스(Santa Claus)입니다.

뎀레 상가 벽에 그려진 산타클로스 이미지.

뎀레 상가 벽에 그려진 산타클로스 이미지.

뉴욕에 정착한 네덜란드인을 ‘니커보커(Knickerbocker)’라 하지요. 1809년 워싱턴 어빙이란 미국 작가가 니커보커의 성 니콜라스 축일 풍속을 취재하고 『니커보커의 뉴욕사』라는 책을 펴냅니다. 이 책에서 우리가 아는 산타클로스가 처음 등장합니다. 마차 타고 하늘을 나는 산타가 굴뚝을 통해 집에 들어와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고 가는 일련의 과정이 이 책에서 얼개를 갖춥니다. 그런데 마차라고요? 네, 산타는 원래 순록이 끄는 썰매가 아니라 말이 끄는 마차를 탔습니다. 북유럽 신화에서 오딘이나 토르 같은 신이 말이나 염소를 타고 하늘을 날아다니거든요. 그러니까 산타는 할리우드 영화 ‘어벤저스’의 토르와도 친척이 되는 셈입니다.

19세기 산타는 미국 동화작가의 동시를 통해 순록이 끄는 썰매를 타게 됐고, 미국 만화가에 의해 흰 수염 기른 넉넉한 몸집의 할아버지로 변신했습니다. 그 사이 산타 근무일도 12월 5일 밤에서 12월 24일 밤으로 바뀌었고요. 산타 할아버지를 상징하는 붉은 유니폼은 코카콜라의 마케팅 상술 때문이었다지요. 코카콜라 광고에서 빨간 유니폼을 입은 산타가 등장한 게 1931년이라니까 산타의 레드 코스튬도 벌써 90년 묵은 사가입니다.

핀란드 로바니에미 산타 우체국의 홍보용 그림. 산타마을로 불리는 이 곳에서 전 세계 어린이에게 산타가 쓴 엽서를 보내준다. 사진 핀란드관광청

핀란드 로바니에미 산타 우체국의 홍보용 그림. 산타마을로 불리는 이 곳에서 전 세계 어린이에게 산타가 쓴 엽서를 보내준다. 사진 핀란드관광청

어떠세요? 아직도 산타를 믿지 않으시나요? 산타클로스 사가가 위대한 건, 연말만 되면 전 세계가 100년 넘게 홍역을 치르고 있어서입니다. 어쩌면 치기 어린 한밤의 소동을 위해 2000년 전 역사가 동원되고, 기독교 신화와 북유럽 신화가 인용되고, 지구를 반 바퀴 도는 여정이 동반되고, 자본의 전략이 투입되기 때문입니다. 산타클로스 사가의 완성을 위해 무엇보다 필요한 건, 아이처럼 맑고 순수한 마음입니다. 아무리 악다구니가 판을 쳐도 선한 마음은 잃지 않으시기 바랍니다. 산타 할아버지는 모든 걸 알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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