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기고] 이젠 간호사들의 헌신에 국회가 응답할 때

중앙일보

입력

 지난해 5월 12일 대구동산병원에서 간호사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환자들이 있는 병동으로 가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5월 12일 대구동산병원에서 간호사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환자들이 있는 병동으로 가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영남대병원 코로나 치료병동. 신혜민 간호사는 임종을 앞둔 할머니 환자 곁을 지키고 있었다. 마지막을 직감한 그녀는 할머니의 딸과 연결된 자신의 휴대폰 스피커의 볼륨을 높였다.

곽월희 대한간호협회 제1부회장

딸은 “엄마, 바쁘다며 자주 찾아가지 못해 미안해. 너무 외롭게 해서 미안해. 엄마, 내가 많이 사랑해”라며 흐느꼈다. 딸의 목소리에 잠시 의식이 돌아온 듯 할머니의 두 눈은 초승달처럼 웃고 있었다.

신 간호사가 할머니의 귓가에 “할머니도 사랑한다고 대답해줘요”고 하자, 할머니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딸아, 나도...많이 사랑해”라는 말을 남기고 하늘로 떠났다.『간호사들의 코로나 수기집 〈코로나 영웅 대한민국을 간호하다〉에서 발췌』

감염병 전담병원 간호사들이 지난 2월 서울 중구 대한간호협회 간호인력취업교육센터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 간호사 교육'을 받고 있다. 간오협회는 서울·강원센터 등 전국 10개 권역별 간호인력취업교육센터에서 나흘간 200여명을 교육했다. 뉴스1

감염병 전담병원 간호사들이 지난 2월 서울 중구 대한간호협회 간호인력취업교육센터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 간호사 교육'을 받고 있다. 간오협회는 서울·강원센터 등 전국 10개 권역별 간호인력취업교육센터에서 나흘간 200여명을 교육했다. 뉴스1

코로나 19로 인한 슬프고도 안타까운 이별장면이다. 29일 현재 코로나로 인한 사망자는 3,580명. 고인의 떠나는 길이 외롭지 않도록 사랑하는 가족을 대신해 마지막을 함께 한 사람은 간호사였다.

간호사는 입원부터 임종까지 24시간 환자곁을 지킨 유일한 의료인이다.그들의 헌신은 코로나 사태에서 국민들의 지친 마음을 어루만지는  한줄기 희망의 빛이었다. 코로나 발생 초기 대구에서 바이러스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자 아름다운 자원봉사의 물결로 거센 불길을 잡았다. 감염 위험의 두려움도 이겨내고 오직 환자의 안전만을 생각하며 쉼 없이 달려왔다.

지난 10월까지 코로나에 감염된 간호사는 무려 1,222명으로 의료인 가운데 가장 많다. 국가적 위기를 겪으면서 간호사는 ‘보건안보’의 성패를 좌우하는 핵심요소임을 국민들의 가슴에 심어줬다.

하지만 ‘코로나 영웅’으로 칭송했던 간호사들의 현실은 어떠한가?

국민들은 ‘위드 코로나’에 접어들며 일상 회복에 대한 기대감으로 부풀어 있지만, 간호사들의 한숨은 더 깊어지고 있다. 확진자가 늘어나고, 생사기로에 서있는 위증증 환자가 증가하면서 끝이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와 싸움에 자신을 또 던져야 하기 때문이다.

일반 병동에서 일하는 간호사들의 사정도 별반 다를 게 없다. 간호사 1인당 20여명의 환자를 돌봐야 하는 현실에서 밥도 제때 먹지 못하고, 물 한모금 제대로 마시지 못한 채 뛰어다니고 있다. 평범한 직장인들처럼 동료들과 점심을 함께 먹은 뒤 누리는 커피 한 잔의 여유는 간호사들에겐 사치에 불과하다.

 대한간호협회 관계자들이 지난달 23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간호법 촉구 결의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날 참가자들은 오는 24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심의할 예정인 '간호법 제정안'의 조속한 통과를 촉구했다. 간호사의 업무범위, 근무여건 개선, 간호사 수급 불균형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법안은 국회에서 여러차례 발의됐지만, 국회에서 심의를 받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뉴스1

대한간호협회 관계자들이 지난달 23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간호법 촉구 결의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날 참가자들은 오는 24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심의할 예정인 '간호법 제정안'의 조속한 통과를 촉구했다. 간호사의 업무범위, 근무여건 개선, 간호사 수급 불균형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법안은 국회에서 여러차례 발의됐지만, 국회에서 심의를 받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뉴스1

가장 큰 이유는 간호사들을 보호할 독립된 법안이 없기 때문이다. 간호 관련 사항은 70년이나 된 낡은 의료법의 틀에 묶여 있다.

간호사는 있지만, 간호법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간호사의 영역은 의료기관을 시작으로 방문간호센터, 산업현장, 특수학교, 요양병원, 노인복지시설, 아동보호기관 등에 이르기까지 사회 모든 분야에 걸쳐 있다.

기존 의료법은 시대의 변화에 맞춰 업무영역이 확대된 간호사의 현실을 담아내지 못한다. 특히 2025년이면 우리나라는 노인 인구가 1000만명을 돌파하는 초고령사회(고령인구 비중 20% 이상)로 진입한다. 치매를 앓는 노인도 100만명에 이르고, 암환자도 300만명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돌봄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의 수요는 갈수록 증가하는 상황에서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할 적임자는 누구일까? 건강에 대한 전문성과 숙련도를 갖춘 간호사들이다.

지난 3월 여야 3당이 사이좋게 발의한 간호법안은 공청회를 거쳐 지난 11월 23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1법안소위에 상정됐다. 이날 의원들은 간호법 제정에 공감하고, 단체별 엇갈리는 쟁점에 대해 보건복지부의 최종 의견을 바탕으로 12월 9일 정기국회 폐회 이전까지 재논의하기로 결론냈다.

지난달16일 인천시 남동구 가천대 길병원 음압병동에서 한 간호사가 레벨D 방호복을 착용하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환자 처치 물품을 정리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16일 인천시 남동구 가천대 길병원 음압병동에서 한 간호사가 레벨D 방호복을 착용하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환자 처치 물품을 정리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를 놓고 대한의사협회는 간호법 의결이 불발됐다고 사실을 호도하고 있다. 또한 간호법이 제정되면 간호사의 단독개원도 가능해 보건의료체계를 붕괴시킨다는 터무니없는 거짓 주장까지 하고 있다.

이는 바이러스와 싸우며 국민 건강의 마지막 보루를 힘겹게 지켜내고 있는 간호사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거듭 밝히지만, 간호법은 간호사만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간호인력의 '워라밸'을 위해서다. 오미크론 등 변이 바이러스의 속출로 국민 건강이 심각하게 위협받는 상황에서 간호사를 체계적으로 육성하고 관리하고 보호하는 것은 시대의 필연적 요청이다.

오늘도 간호사들은 ‘대한민국을 간호하겠습니다’라는 열정과 사명감으로 자신들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고 있다. 국민의 안전과 국가의 자존심을 지키는 간호사들의 헌신과 사명감에 국회가 현명하게 응답할 때다.

곽월희 대한간호협회 제1부회장

곽월희 대한간호협회 제1부회장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