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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발레단 ‘호두까기인형’ 금지…“동양 인종차별 요소 있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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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호두까기인형’ 공연. [EPA=연합뉴스]

2016년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호두까기인형’ 공연. [EPA=연합뉴스]

독일 베를린 슈타츠발레단이 고전발레 명작 ‘호두까기인형’을 크리스마스 공연에서 배제하기로 했다. 일부 연출 중 인종차별적 요소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26일(현지시간) 영국 더타임스에 따르면 발레단의 예술감독 대행인 크리스티나 테오발트는 해당 공연에 포함된 중국·동양 무용 파트에 인종적 고정관념을 지닌 요소가 있다고 밝혔다.

호두까기인형은 러시아 작곡가 표트르 일리치 차이콥스키와 안무가 마리우스 프티파가 탄생시킨 고전발레의 대표작이다. ‘백조의 호수’, ‘잠자는 숲속의 미녀’와 함께 차이콥스키의 3대 고전 발레로 꼽힌다. 아름다운 음악과 화려한 춤, 마법 같은 사랑 이야기로 1892년 세계 초연 이후 129년이 지난 현재까지 전 세계 최다 누적 관객 수를 동원한 스테디셀러다.

크리스마스이브에 호두까기인형을 선물 받은 소녀 ‘클라라’가 꿈속에서 왕자로 변신한 호두까기인형과 함께 나쁜 생쥐들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행복한 결혼식을 올린다는 내용이다. 국내에서도 매년 연말에 전회 전석 매진을 기록하는 인기 공연이다.

문제의 연출은 극중 과자를 의인화해 각국의 민속춤으로 표현하는 막에서 나왔다. 특히 중국 무용 파트에서 우스꽝스러운 분장과 과장된 무용을 선보이거나 노란색 피부색으로 분장하는 등 인종차별적 요소가 있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이러한 표현이 불편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에 전 세계 발레단에서는 달라진 의식 흐름에 발맞춰 공연을 검토하거나 수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이러한 슈타츠발레단의 결정 이후 현지 언론에서는 상반된 반응을 보였다.

보수성향 신문인 프랑크푸르터알게마이네차이퉁은 “그런 이유로 공연하지 않는 것은 오만하다”며 “모든 중국인이 프티파의 발레 버전에 나타난 것처럼 곡예가이거나 기교가는 아니다”고 지적했다.

반면 독일 일간지 타게스슈피겔은 작품이 만들어진 문화·역사적 맥락과 더불어 오늘날 어떤 요소가 문제 소지가 있는지 점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슈타츠발레단 측의 주장이 옳다며 힘을 실어줬다.

이번 결정은 앞서 슈타츠발레단이 인종차별 논란에 한 차례 휩싸인 이후 나왔다. 2018년 첫 흑인 무용가로 입단한 클로에 로페스-고메스는 지난 1월 발레단에서 피부색을 지적받거나 하얀색 화장을 해달라는 요청을 받는 등 인종차별 사례들을 폭로했다. 또 발레단과 계약이 끝나는 7월 이후로 연장 계약안을 제시받지 못했다. 이에 고메스는 법적 조치에 들어갔고, 지난 4월 발레단은 계약 1년 연장 협의와 함께 고메스에 1만6000유로(약 2160만원) 합의금을 지급했다.

이러한 흐름에 파리 발레단은 극중 피부색 분장을 폐지했으며 미국과 캐나다, 영국 등지에서도 고전 작품을 반인종주의와 다양성을 기준을 두고 오래 개선해왔다고 타게스슈피겔은 전했다. 이달 스코틀랜드 발레단도 반인종주의 흐름에 맞춰 극중 중국인과 아랍인의 무용과 분장을 수정하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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