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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들 논리적 글쓰기 능력 향상시키고 싶어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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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4호 22면

2021 쉬우니까 한국어다 〈11〉 장소원 국립국어원장

“모든 국민의 글쓰기 능력 향상에 도움이 되고 싶다”는 장소원 신임 국립국어원장. 정형모 기자

“모든 국민의 글쓰기 능력 향상에 도움이 되고 싶다”는 장소원 신임 국립국어원장. 정형모 기자

올해 30주년을 맞은 국립국어원을 지난 제575돌 한글날부터 이끌고 있는 장소원(60·서울대 국문과 교수) 원장은 글쓰기 평가 전문가다. 서울대 국문과를 나와 프랑스 파리 제 5대학에서 텍스트 언어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2002년부터 모교 교단에 서서 각종 논술시험 출제 및 평가 위원으로도 일하며 많은 경험을 쌓았다. 그가 지난여름 국립국어원장 공모에 손을 번쩍 치켜든 이유도 “국민들의 논리적 글쓰기 능력 향상에 도움이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창의력은 타고나는 것이지만, 논리력은 배운 만큼 늘어난다는 확신을 그간의 경험으로 얻을 수 있었기에.

“논술 시험을 평가하면서 보다 더 객관적인 채점 기준과 지표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계속 고민해왔습니다. 미국의 SAT 라이팅이나 프랑스의 바칼로레아를 참고하고, 그들의 평가 기준을 어렵사리 구해 분석해 보니까 참 체계적이더라고요. 예를 들어 앞쪽 다섯 문장 안에 핵심 주제가 안 나오면 감점하고, 문법은 몇 개 틀려도 감점 대상이 아니고 등등 가점 및 감점 기준이 서른 몇 개가 있었어요. 이걸 참고해 한국어판 지표를 만들고 3~4년 가량 보완해나가면 논리적 글쓰기 평가 기준으로 뿌리내릴 것 같아 지원을 요청했어요. 그런데 ‘서울대가 자칫 사교육을 조장한다고 비판받을 수 있다’는 지적에 생각을 고쳤죠. ‘그럼 국가기관에서 하면 되겠구나’ 마음먹었어요.”

장 원장은 미국의 글쓰기 교육이 단계적으로 잘 구성돼 있다고 분석했다. 초등학교에서는 주술 일치 등 문장 제대로 쓰기, 중학교에서는 긴 글 읽고 짧게 요약하기, 고등학교에서는 긴 글 읽고 자신의 논리를 예시와 함께 주장하기 같은 식으로 차근차근 업그레이드된다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최근 AI(인공지능)가 논술 채점을 하는데, 글을 보고 ‘백인, 여자, 30대가 썼다’고 인식하는 수준까지 올라있어요. 우리도 AI용 말뭉치를 국립국어원을 비롯한 다양한 기관에서 계속 만들어내고 있죠. 기본적인 글은 AI가 채점하고 사람이 마무리하는 쪽으로 갈 것이라 예상하고 있습니다. 평가 지표가 만들어지면 입시용뿐만 아닌 공무원용이나 대기업용, 외국인용 등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 같고요.”

원장으로서 또 다른 역점 사업은 사전이다. 1999년 출간된 표준국어대사전의 대대적인 개편이 시급하다고 본다. 예산과 조직이 새로 짜여지는대로, 새로 등장한 단어도 많이 집어넣고, 특히 근대 소설의 문장 중심이었던 용례도 현대적 문장으로 확 바꿀 생각이다. ‘국민이 만드는 사전’인 인터넷 사이트 ‘우리말 샘’은 표준국어대사전에 실리지 않은 단어를 위키피디아처럼 올려가며 보완하고 있는데, 이 역시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다. “사전 개편을 위한 중장기 계획을 세워야죠. 100억원 정도 들여 5년간 집중 보완하고 싶습니다. 프랑스에서는 ‘사전에 있으면 표준어’라고들 생각하잖아요. 그만큼 사전의 권위가 인정받고 있으니까. 여유가 된다면 영역별 전문어 사전도 만들고 싶어요.”

BTS와 드라마 ‘오징어 게임’, 영화 ‘기생충’이 촉발시킨 한류의 확산이 한글 세계화에 놀랍게 기여하고 있다는 장 원장은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 교육에도 이미 관심이 많았다. 2016년 YTN과 함께 7~8분짜리 동영상 ‘씽씽 한국어 Ssing Ssing Korean’ 35개를 만든 것이 대표적이다. “KBS 월드와 국립국어원이 외국인을 위해 만든 한글 동영상 강좌가 이미 있었어요. 그런데 관련 동영상 거의가 옛날 사극인 거예요. 알고 보니 저작권과 초상권 때문에 현대물을 사용하기가 어려웠던 거죠. 마침 친분이 있던 싸이더스iHQ 대표에게 SOS를 쳐서 뮤직비디오와 드라마 등 다양한 동영상 콘텐트를 활용할 수 있었습니다.”

뉴스로 배우는 한글도 마찬가지다. BBC나 NHK처럼 뉴스로 배우는 고급 한국어 과정을 만들고 싶어 KBS에 알아보니 “뉴스 한 꼭지에 500만원”이라는 말에 포기했다. 그러다가 YTN과 연이 닿아 ‘YTN 뉴스로 배우는 시사 한국어’도 만들 수 있었다. “뉴스를 고르는 것도 사실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틀린 문장이 없고, 틀린 발음도 없고, 시의성도 없는 것을 찾아야 했으니까요. 그래도 이런 프로그램을 통해 한글과 한국에 대한 관심을 갖는 사람이 늘어난다면 보람도 크겠죠.”

지난해 세계한국어대회를 처음 개최하고 공동조직위원장으로 활동한 일도 빼놓을 수 없다. “2019년 국어학회 60주년에 국어학회장을 맡았는데, ‘세계철학자대회 같은 것처럼 세계한국어학자대회를 한 번 해보자’라는 아이디어가 나왔어요. 문화체육관광부의 적극적인 후원으로 예산도 늘어나 착착 진행하고 있었는데 코로나19 사태가 터졌죠. 결국 유튜브 등 온라인으로 개최했는데, 결과적으로 잘된 점도 있어요. 전 세계에서 한글을 가르치고 한국에 관심 많은 학자들을 비대면으로 더 많이 만날 수 있었거든요. 올해도 ‘한마당’이라는 이름으로 한글날을 전후해 이틀간 한글 글꼴대회 등을 진행했습니다. 앞으로 대면 행사를 하게 되더라도 온라인 행사는 병행하려고요.”

장 원장은 글로벌 시대를 맞아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용어가 어려운 외국어로 국내에 소개되는 현상에 대해 크게 우려했다. 뉴스는 원래 중2 수준으로 소통되어야 하는데, 자신도 이해 못 하는 어려운 용어들이 난무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떤 용어가 외국어로 들어오면 최대한 빨리 쉬운 우리말로 바꿔 줘야 합니다. 일단 유통이 되기 시작하면 다시 고치기가 정말 어렵거든요.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공공언어를 제대로 쓰고 있는지 평가하는 제도가 12월부터 시행될 예정인데, 국민 모두가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죠.”

어려운 용어로 점철된 각종 계약서나 금융상품 약관도 쉽게 쓰여져야 한다는게 장 원장의 지론이다. “독일에서는 기업들의 연간실적 보고서 평가 순위가 신문 1면에 실려요. 소비자를 위한 약관이나 계약이 제대로 쉽게 쓰여졌나까지 평가하거든요. 정보 전달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결국 쉬운 용어를 쓰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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