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문화의 창

100년 뒤 지정될 국보·보물이 있는가

중앙일보

입력 2021.11.25 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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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유홍준 본사 칼럼니스트·명지대 미술사학과 석좌교수

유홍준 본사 칼럼니스트·명지대 미술사학과 석좌교수

10여 년 전, 문화재청장으로 있을 때 이야기이다. 재임한 지 4년 째 되던 해 기자들과 가진 간담회 때 느닷없이 “문화재청장을 오래 지내면서 말 못할 고민이 무엇이냐”는 질문이 있었다. 이때 나도 모르게 나온 것은 “100년 뒤 지정될 국보·보물이 이 시대에 창조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라는 대답이었다.

사실 이 문제는 내가 마음속에 깊이 품고 있던 사회적 과제이다. 현재 국가문화재로 지정하는 유물·유적은 100년 이상의 수령이 필요조건이다. 근대 문화재가 아직 국보·보물로 지정되지 않은 것은 이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 문화재 100년 넘어야 대상
100년 된 건물이 희귀한 세상
주택은 한 시대 건축의 기본
시류에 맞게 국토 운영해야

그러나 몇 십 년이 더 지나면 1950년대에 제작된 박수근, 이중섭, 김환기의 작품 중 몇 점이 보물로 지정될 것이다. 그래서 연전에는 현역 미술 평론가들에게 어느 작품이 대상으로 될 만한가 설문조사를 한 바도 있다.

문제는 건축이다. 현대건축의 기술과 재료의 발달로 멀쩡한 집을 부수고 재건축하는 것이 다반사로 된 오늘날의 추세로는 수령 100년을 넘길 건축이 과연 얼마나 남아 있을까 싶다. 그중에서도 건축의 기본이라 할 주택 문제는 더욱 회의적이다.

안동 의성김씨 종택, 1588년, 보물 제450호. [사진 한국관광공사]

안동 의성김씨 종택, 1588년, 보물 제450호. [사진 한국관광공사]

조선시대엔 목조에 기와를 얹은 ‘한옥’이라는 주택 형식이 완성되어 하회마을의 ‘양진당’(보물 306호)과 ‘충효당’(보물 414호), 안동 내앞의 ‘의성김씨 종가집’(보물 450호), 경주 양동마을의 ‘무첨당’(보물 411호)과 ‘관가정’(보물 442호) 등이 나라의 보물을 넘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그러면 우리시대 시대정신을 담아낸  ‘현대주택’이 몇 채나 지어졌을까. 그동안 우리나라는 일정 규모가 넘는 집은 ‘호화주택’으로 치부하여 중과세가 부여되어 왔고 이에 대한 국민정서의 거부감도 없지 않았다. 나라가 가난했던 50년 전에는 시대 분위기 상 그럴 수밖에 없기도 했다.

그러나 100평 넘는 복층 아파트가 즐비한 오늘날, 100평 넘는 저택을 짓는다고 호화주택이라는 비난의 대상으로 될 것 같지 않다. 문화재란 최고 수준의 예술, 최고의 기술, 최고의 재력이 만나야 된다. 평범한 주택은 민속이지 한 시대를 대표하는 문화재는 아니다. 사실 보물로 지정된 조선시대 한옥들도 그 당시에는 ‘고래등 같은 기와집’이라 불린 호화주택이었다.

다시 옛날로 돌아가서 조선시대에는 삼천리강산 곳곳에 아름다운 정원(庭園), 원림(園林), 별서(別墅), 정사(精舍)를 지어 오늘날 우리들은 이곳을 행복한 답사처로 찾아가고 있다. 정원은 집 울타리 안에서 자연을 아름답게 가꾼 것이고, 원림은 풍광 좋은 곳에 건물을 지은 것이다. 정원과 원림의 차이는 자연과 인공의 관계가 바뀐 것이다. 별서는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별장이고, 정사는 집 가까이에 있는 독서처다. 이것을 문화재로 지정한 것이 명승이다.

봉화 닭실마을에 있는 ‘청암정’(명승 60호)은 대표적인 정원이고, 담양의 ‘소쇄원’(명승 40호)과 ‘윤선도 원림’(명승 34호)으로 지정된 ‘보길도 세연정’이 대표적인 원림이며, ‘독락당’으로 유명한 경주 안강의 ‘옥산정사’(보물 제413호)가 대표적인 정사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시대에 훗날 명승으로 지정될 정원, 원림, 별서, 정사가 지어진 것이 있는가. 이 또한 ‘별장’이라는 것에 대한 국민정서의 거부감과 세제상 중과세를 부여하는 규제 때문이다. 국토를 아름답게 가꾸며 삶을 건강하게 하고 후손에게 물려주어 나중에는 문화재로 지정될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리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상속세는 막강한 것이어서 저택과 별장은 상속세 두 번 맞으면 자산 가치가 제로에 가깝게 된다. 그렇게 되면 자연히 사회로 환원된다. 프랑스 르와르 강변의 대저택들이 다 그런 것이다.

요즘 시골에 폐가가 즐비하여 사회적 문제로 된 지 벌써 오래다. 만약에 도시인들이 그 폐가를 사서 작은 원림으로, 정사로, 별서로 가꿀 수 있도록 합법적인 길을 열어주고 1가구 2주택 양도소득세에서 제외해 준다면 폐가 문제는 저절로 해결될 것이다. 고령화시대 현대 도시인의 삶은 시골에 별서를 장만하여 ‘5도2촌’, 또는 ‘2도5촌’으로 지내는 것이 이상적이라고 한다. 러시아의 ‘다차’가 그 대표적인 사례다.

반세기 전, 1인당 국민소득 몇 백 달러밖에 안 되던 시절에 제정된 호화주택·별장·농가주택에 대한 규제를, 3만 달러가 넘는 지금 이 시대에 그대로 적용하고 있는 것은 마치 인구는 줄어드는데 산아제한 정책을 펼쳤던 것과 똑같은 우를 범하는 것이다.

부동산 파동의 근본 요인 중 하나는 아파트가 현찰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주택에는 그런 환금성이 없다. 그렇다면 규제를 풀어 주택 건설경기를 활성화시키는 것이 주기적으로 나타나는 아파트 값 파동을 막는 첩경일지도 모른다. 이제 우리는 무엇이 진정 국토를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것인지 원점에서 생각하고 과감하게 바꿀 때가 되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집의 본원적 기능을 회복하는 길이며, 무엇보다도 우리네 삶을 풍요롭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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