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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을’ ASML 인수 제안 왔었다…韓 반도체 역사 되돌아보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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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현 전 삼성전자 종합기술원 회장. [중앙포토]

권오현 전 삼성전자 종합기술원 회장. [중앙포토]

권오현 삼성전자 상임고문(전 삼성전자 종합기술원 회장)이 “(반도체에서) 기술을 잃어버리면 ‘찬밥 신세’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미국·중국 등 주요국들의 반도체 자립 움직임에 대해, 당장 한국이 큰 피해를 보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하면서도 ‘기술 초격차’를 유지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반도체산업협회 창립 30주년 맞아 특별인터뷰 #“초격차 못 하면 ‘찬밥’…美 러브콜 이유이기도”

23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권 고문은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창립 30주년 특별 인터뷰에서 “반도체는 국제 분업이 잘 이뤄져 왔다”며 이 같이 밝혔다. 요컨대 미국은 기초 기술부터 시스템 반도체와 핵심 수요처를 보유한 나라다. 일본은 소재‧장비에 강점이 있다. 이에 비해 한국은 제조 기술에 경쟁력이 있다는 설명이다. 권 고문은 “이런 분업화가 쉽게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고 예측했다.

이어 권 고문은 “미국이 삼성전자나 대만 TSMC를 백악관 반도체 회의에 초대하거나 미국 내 팹(생산시설) 투자를 권유하는 건 삼성이나 TSMC의 기술 때문이다. 이들의 앞선 반도체 제조 능력을 구하는 것”이라며 “유럽도, 미국도 반도체를 직접 다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협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전략적으로 대응하면 언제든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권 고문은 “다만 중요한 건 기술”이라며 “기술을 잃어버리면 찬밥 신세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권 고문은 삼성전자 시스템LSI사업부 제품기술실장과 시스템LSI사업부장, 반도체사업부 총괄사장,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반도체 부문장) 등을 지냈다. 삼성전자가 세계 1위를 유지하고 있는 D램 반도체뿐 아니라 시스템 반도체 경쟁력 강화에도 기여했다. 권 고문은 시스템 반도체 육성 방안에 대해서도 견해도 밝혔다.

“시스템 반도체는 ‘다품종 대량 생산’ 사업”

대만 TSMC가 세계 시장 1위인 시스템 반도체 시장은 ’다품종 소량 생산’ 체체로 한다. 상대적으로 중소기업에 적합하다는 얘기다. 이에 비해 메모리 반도체는 소품종 대량 생산 제품이라고 정의한다. 이에 대해 권 고문은 “메모리는 ‘초대량 생산’ 체계가 필요한 사업이고, 시스템 반도체는 ‘다품종 대량 생산’ 비즈니스”라고 ‘수정’했다.

권 고문은 “시스템 반도체는 중소기업이 단독으로 해내기 어려운 사업이라는 의미”라며 “지금 전 세계 팹리스(반도체 설계·개발회사) 업계는 인수합병(M&A)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자금과 기술 경쟁력을 갖춘) 큰 기업이 돼야 한다는 것인데 국내 시스템 반도체 기업은 일부를 제외하면 매출 1000억~2000억원 규모에 머물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와 기업이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시스템 반도체를 육성하면 앞으로도 성공할 기회는 없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문승욱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참석자들이 22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제14회 반도체의 날 및 한국반도체산업협회 30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축하 떡케이크를 자르고 있다. 왼쪽부터 김성호 한국반도체산업협회 본부장, 이석희 SK하이닉스 대표이사, 문 장관, 협회장을 맡고 있는 이정배 삼성전자 사장, 전선규 미코그룹 회장, 양태경 한국반도체산업협회 PM. [연합뉴스]

문승욱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참석자들이 22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제14회 반도체의 날 및 한국반도체산업협회 30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축하 떡케이크를 자르고 있다. 왼쪽부터 김성호 한국반도체산업협회 본부장, 이석희 SK하이닉스 대표이사, 문 장관, 협회장을 맡고 있는 이정배 삼성전자 사장, 전선규 미코그룹 회장, 양태경 한국반도체산업협회 PM. [연합뉴스]

필립스, ASML 인수 제안…안타까움 남아 

한편 권 고문의 인터뷰가 실린 『한국반도체산업협회 30년사』 책자에는 삼성전자가 약 40년 전인 1980년대에 네덜란드의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업체인 ASML 인수를 추진했다는 일화도 담겼다.

반도체 업계에서 ASML은 ‘슈퍼을’로 불린다. 이재용 부회장은 지난해 10월 코로나19 확산에도 네덜란드 벨트호벤에 있는 ASML 본사를 찾아 장비 공급계획을 논의하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장비 공급망에서 유일하게 공급자가 하나뿐인 분야”라며 “반도체 메이커들이 ASML의 눈치를 보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ASML은 한해 30~40대의 노광장비를 공급하고 있다.

반도체산업협회 초대 협회장을 지낸 김광호 전 삼성전자 부회장은 “1982년 필립스가 삼성전자에 ASML(당시 ASM) 인수를 제안해 현지 실사를 위해 미국 본사를 찾았지만 당시 ASML의 업력이 짧았고, 삼성의 사정이 넉넉지 않아 인수를 포기했다. 안타까움이 남는다”고 회고했다.

박성욱 SK하이닉스 부회장은 “미국과 중국·유럽 등 글로벌 동향을 보면 반도체를 단순히 돈 버는 산업이 아니라 안보·인프라로 여긴다. 우리는 아직 그런 인식이 부족하지 않나 생각한다”며 “반도체는 대기업이 잘하고 있기 때문에 지원이 필요 없다거나 산업계가 알아서 하면 된다는 고정관념”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도체 시장의 도전 과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머리를 맞댔으면 좋겠다. 컨트롤타워 같은 기능이 필요하다”고 정부의 역할을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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