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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승리로 ‘킹메이커’ 별명, 그뒤엔 갈등도…김종인 선거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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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철만 되면 주인공인 후보 못지않게 주목받는 사람이 있다. 올해 81세인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다. 진보와 보수 정당을 오가며 굵직한 선거를 지휘한 그는 ‘킹메이커’라는 별명으로도 불린다. 경제 민주화 등 어젠다를 선점하는 방식으로 여러 선거에서 승전고를 울렸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전권을 요구하거나 당을 뒤엎는 수준의 개혁을 추진해 기존 정치권 인사들과 번번이 충돌을 빚었다. 그래서 선거 뒤엔 권력 중심부에서 제외되는 일이 잦았다. 그런 그를 놓고 한 국민의힘 중진의원은 “정치 감각이나 선거 판세를 읽는 능력이 탁월하지만, 그 끝은 항상 좋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김 전 위원장 스스로도 저서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을 도운 2012년 대선과 민주당 비대위원장을 맡아 치른 2016년 총선 이후의 상황에 대해 “두 번의 배신”이라는 표현을 썼다.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왼쪽)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 [연합뉴스·뉴스1]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왼쪽)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 [연합뉴스·뉴스1]

김 전 위원장은 2022년 대선에서도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킹메이커로 거론되는데, 시작부터 선대위 구성 등을 놓고 마찰음이 있었다. 이를 놓고 정치권에선 “과거 김 전 위원장의 선거사(史)에서 빠지지 않았던 갈등 공식이 이번에 재현될 지가 관전 포인트”라는 반응도 나온다.

① 2012년- ‘경제민주화’와 박근혜 당선…배제된 김종인

2012년 10월 29일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중소기업 타운홀미팅 및 정책간담회에서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와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이 대화하는 모습. 중앙포토

2012년 10월 29일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중소기업 타운홀미팅 및 정책간담회에서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와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이 대화하는 모습. 중앙포토

김 전 위원장이 킹메이커로 처음 이름을 알린 건 2012년 대선이었다. 그는 박근혜 선대위의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을 맡아 경제 민주화 공약 설계를 주도했다. 복지 이슈가 진보 정당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던 시기에 경제 민주화와 ‘생애주기별 복지’ 등을 앞세워 정치 의제를 선점, 박 전 대통령 당선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김 전 위원장은 당의 주류인 친박계 인사들과 융화되지 못하고 사사건건 충돌했다. 특히 선거를 한달 앞두고 대기업의 기존 순환출자 금지를 놓고 박 후보와 의견 충돌을 빚다가 “박 후보 주변에 사람이 많고, 로비도 있고 하니까…”라고 발언해 박 후보가 “내가 로비를 받을 사람이냐”고 격분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해 박 후보와 문재인 민주당 후보가 맞붙은 대선은 박 후보의 승리로 끝났지만, “박근혜와 김종인이 갈라섰다”는 반응이 정치권에 파다했다. 김 전 위원장이 마련한 경제민주화 공약도 실제 추진 과정에서 상당 부분 실현되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김 전 위원장은 16일 통화에서 이를 “박 전 대통령의 변심”이라고 표현했다.

②2016년- 민주당 123석 1당 됐지만…친문 갈등 끝 탈당

2017년 2월 4일 서울 여의도 국회 민주당 대표 회의실에서 김종인 전 의원의 입당식 당시 모습. 오른쪽은 당시 민주당 대표였던 문재인 대통령. 중앙포토

2017년 2월 4일 서울 여의도 국회 민주당 대표 회의실에서 김종인 전 의원의 입당식 당시 모습. 오른쪽은 당시 민주당 대표였던 문재인 대통령. 중앙포토

현실 정치를 떠나있던 김 전 위원장은 2016년 총선을 앞두고 돌연 민주당의 구원 투수로 등판했다.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에서 “목표는 180석”(원유철 당시 원내대표)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민주당의 부진이 예상되던 시기였다.

민주당 비대위원장을 맡은 김 전 위원장은 ‘문제는 경제다. 정답은 투표다’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이념 탈피 정당’을 콘셉트로 내세웠다. 이 과정에서 이해찬·정청래 의원 등 친문 의원을 대거 공천 배제하면서 당이 내분 양상으로 치닫기도 했다. 하지만 투표함을 열자 민주당이 123석을 확보해 122석에 그친 새누리당을 1석 차이로 누르고 여소야대 정국을 열었다.

그러나 이 때도 해피 엔딩은 없었다. 김 전 위원장은 선거 이후에도 친문 진영과의 불화를 씻지 못했고, 특히 그가 발의한 상법 개정안의 처리가 지지부진하자 “경제 민주화 법안에 있어 나는 ‘속은 사람’이다. 민주당에 열의를 가진 사람이 없다”고 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결국 2017년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을 탈당했고, 당시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는 “내가 옳으니 무조건 따르라는 것은 정당 정치와 맞지 않다”며 김 전 위원장을 비판했다.

③오세훈 당선 이끈 뒤 “국민의힘 아사리판”

4월 7일 오세훈 당시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가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 마련된 상황실에서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 대화하고 있다. 중앙포토

4월 7일 오세훈 당시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가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 마련된 상황실에서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 대화하고 있다. 중앙포토

이후 야인 생활을 이어가던 김 전 위원장은 2020년 4·15 총선을 20일 앞두고 미래통합당의 총괄선대위원장으로 합류했지만, 선거는 180석을 얻은 민주당의 승리로 끝났다. 그는 이후 미래통합당 비대위원장으로 추대돼 당의 재건에 나섰다. 당명을 국민의힘으로 바꾸고, 당 정강·정책에 ‘노동자의 권리’ ‘5.18 민주화 운동 정신 계승’ 등을 명기한 김 전 위원장의 혁신 노선에 당 안팎에서 “파격적”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야권 원로와 당 중진들로부터 “당의 의사 결정 구조를 무시한 독선”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김병준 전 비대위원장이 김 전 위원장을 향해 “지나가는 사람”이라고 공격한 게 대표적이다.

당내 공세에 봉착한 김 전 위원장은 지난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다시금 킹메이커의 면모를 선보였다. 특히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의 단일화 국면에서, 초기 지지율 면에서 열세였던 오 후보를 적극적으로 지원해 경선 승리의 주역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결국 오 후보는 서울시장에 당선됐고, 김 전 위원장은 같은 달 의원총회에서 당 의원들의 박수를 받으며 비대위원장직에서 물러났다.

하지만 당을 떠난 김 전 위원장은 4월 언론 인터뷰에서 함께 호흡을 맞췄던 주호영 전 원내대표에 대해 “뒤에서 안철수 대표와 서울시장 후보직을 작당했다”고 비판하거나, 국민의힘을 ‘아사리판’에 비유하는 등 불편한 심기를 숨기지 않았다. 이를 두고 당 중진인 권영세 의원은 “마시던 우물에 침은 뱉고 나가면 안 된다”고 김 전 위원장을 공개 비판했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왼쪽)가 15일 서울 용산구 그랜드 하얏트 서울 호텔에서 열린 만화로 읽는 오늘의 인물이야기 '비상대책위원장-김종인' 출판기념회에 참석, 김 전 비대위원장과 악수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왼쪽)가 15일 서울 용산구 그랜드 하얏트 서울 호텔에서 열린 만화로 읽는 오늘의 인물이야기 '비상대책위원장-김종인' 출판기념회에 참석, 김 전 비대위원장과 악수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김 전 위원장은 이번 대선에선 윤석열 후보를 도울 총괄선대위원장으로 합류할 전망이다. 하지만 당내에는 여전히 김 전 위원장을 곱지 않게 바라보는 이들이 적지 않다. 김 전 위원장도 이를 의식한 듯 “당에 내가 안 왔으면 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 같다”(16일 인터뷰)고 했다.

특히 당 선대위 구성 초반 김 전 위원장과 윤 후보 측이 쉽게 결론을 내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자, 당 일각에선 김 전 위원장을 향한 불만이 조금씩 꿈틀대는 기류도 있었다. 한 국민의힘 의원은 “윤 후보의 지지율 상승세가 뚜렷한데, 김 전 위원장의 영입을 위해 이렇게까지 해야 하느냐고 부글부글해 하는 이들이 꽤 있다”고 말했다. 반면 윤 후보 측 핵심 관계자는 “김 전 위원장과 윤 후보의 관계는 전혀 문제가 없다. 이를 확대 해석해 당내 갈등을 부각하는 일부 인사들이 문제”라고 했다.

윤 후보와 김 전 위원장은 20일 오후 서울 광화문의 김 전 위원장 사무실에서 비공개로 만나 선대위 구성을 논의했다. 윤 후보는 회동 뒤 “언론에 자꾸 이야기들이 나가는데 선대위 구성은 문제 없이 잘 진행되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양수 선대위 수석대변인은 같은날 공지문에서 “김 전 위원장은 김병준 전 비대위원장이 상임선대위원장직에 선임되는 것에 동의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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