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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동호의 세계경제전망

기업 경쟁력 말고는 기댈 것 없어진 한·중·일 3국 경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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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김동호 기자 중앙일보

변곡점 접어든 동북아 경제삼국지

김동호의 세계경제전망

김동호의 세계경제전망

1. 갈 길 못 찾는 일본

일본에도 분배 바람이 불고 있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가 들고나온 ‘새로운 자본주의’ 정책의 핵심 특징이다. ‘새로운’이란 1980년부터 지난 40년간 일본 경제를 관통한 신자유주의와 선을 긋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이 “자민당이 경제정책의 간판을 바꿔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야말로 ‘탈(脫) 아베노믹스’라는 해석이다. 아베노믹스는 금융완화·재정확대·성장전략 등 세 개의 화살로 일본 기업의 경쟁력 회복과 함께 고용 증가·주가 상승 등 거시지표가 회복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하지만 일본 국민은 그 변화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코로나 팬데믹으로 양극화의 민낯이 드러나면서 대책 마련이 시급해졌다. 지난 10일 임기가 시작된 기시다 정권은 당장 40조엔을 조달해 18세 이하 국민에게 10만엔을 지원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그러나 여론은 싸늘하다. 국민 67%가 “적절하지 않다”고 반응했다. 해외의 시각도 부정적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기시다 정권은 장밋빛 구상을 실용적인 계획으로 구체화해야 한다”면서 “차라리 아베노믹스에서 성과로 나타난 부분에 더 집중하라”고 지적했다. 지난 8년간 실시된 아베노믹스가 국민이 체감할 정도로 성과를 내지 못했지만, 일본 경제에 어느 정도 활력을 불어넣었다는 것이다.

소득정체 빠진 일본, 분배 바람 불어
중국은 계획경제 한계 곳곳서 노출
한국, 스태그플레이션 충격 줄여야
결국 첨단 산업이 경제 주도권 결정

더구나 일본은 분배에 힘쓸 여력이 없다. 분배를 확대하려면 정부 곳간이 두둑해야 한다. 일본의 국가채무는 올해 연말 1212조엔(1경 2525조원)으로 국내총생산(GDP)의 217%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1990년 거품경제 붕괴 이후 줄곧 재정 지출을 극대화해 온 만큼 규모를 더 늘릴 형편이 못 된다. 2021년도 세입 예산에서 신규 국채발행은 43조5970억엔에 달해 한 해 예산의 40.1%에 이르고, 세출 예산에서도 국채 상환 비용이 23조7588억엔에 달했다.

사정이 이런데도 분배 카드를 들고나온 것은 옛 향수 탓이 크다. 그 향수는 기시다 총리가 이끄는 일본 자민당 파벌 고치카이(宏池會·굉지회)의 정책 기조에 뿌리를 둔다. 고치카이는 1957년 이케다 하야토(池田勇人)가 독자적 정치 세력을 키우면서 창설한 것으로, 지금은 자민당 내 주요 파벌로 자리를 잡았다. 이케다는 대장성 관료 출신답게 1960년 총리가 된 뒤 소득배증계획에 착수해 대중적 지지를 얻으며 1960년부터 10년간 국민소득을 두 배로 늘렸다.

미국발 인플레이션 충격에 직면한 세계경제

미국발 인플레이션 충격에 직면한 세계경제

일본의 GDP는 이케다가 취임한 1960년 16조엔에서, 소득배증계획이 꽃을 피우기 시작한 1970년에는 73조3449억엔으로 5배 가까이 급증했다. 이 기간 미국 대비 1인당 GDP는 16%에서 39%로 뛰어올랐다. 이케다 재임 중 일본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국제통화기금(IMF) 총회 개최, 도쿄올림픽 개최 등 경제 대국의 기틀을 마련했다. 일본의 전성기로 꼽히면서 일본 국민이 지금도 그리워하는 이른바 쇼와(昭和)시대의 발판을 마련한 것도 소득배증 시기였다.

하지만 그런 성공 신화는 옛 향수에 불과하다. FT 사설이 꼬집은 것처럼 일본은 아베노믹스를 통해 미흡하나마 활력을 찾은 기업 경쟁력을 다시 강화하는 게 바람직해 보인다. 이케다 시대에 소득이 급증했던 것도 일본 기업의 경쟁력 향상 덕분이었다. 일본 기업이 미국 기업들을 제치고 세계 시장을 휩쓸면서 고도성장이 가능했고 일본 국민의 소득도 빠르게 늘어날 수 있었다.

2. 과거로 회귀하는 중국

중국 경제는 거대한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다. 지난 11일 중국 공산당 100년 역사상 세 번째 역사결의를 통해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집권 체제가 강화하면서 국가 자본주의의 역동성에 변화 조짐이 보이면서다. 1978년 시작된 덩샤오핑(鄧小平)의 개혁개방 정책이 열매를 맺으며 고도성장에 들어선 중국은 시 주석 체제에 들어와 중국몽(中國夢)에 시동을 걸었다. 이는 곧 미국의 헤게모니에 도전하는 정책으로 드러났다. 미국의 본격적인 견제에 직면하게 된 중국은 최근 3년간 미국에 맞대응해왔다.

미국의 공격에도 잘 버티는가 했던 중국은 의외의 지점에서 허점을 드러내고 있다. 그 허점은 미국 유수의 전략 보고서인 포린폴리시(FP)가 제시했다. “중국이 곧 정점을 찍고 쇠퇴기에 접어들 것”이라는 지난 9월 보고서였다. 공교롭게도 이 시점을 전후해 중국 경제 곳곳에서 문제점이 터져 나왔다. 극심한 전력난과 함께 헝다 그룹의 부도 위기가 노출되면서다. FT·뉴욕타임스(NYT)·블룸버그 등 세계 언론은 이때부터 사실상 중국 경제의 취약성을 연일 생중계하고 있다.

중국 경제에 대해 대체로 낙관적인 견해를 피력해왔던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조차 NYT 칼럼에서 “비관론자들이 늘 중국 경제를 걱정하는데, 이번에는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중국 경제 위기론이 새로운 일은 아니지만, 성장률의 급격한 둔화와 헝다 사태로 볼 때 부동산 시장의 거품이 우려된다는 분석이다. 크루그만은 “소득 증가보다 과도한 주택가격이 더는 지속하기 어려워 보인다”고 지적했다. 그렇다고 너무 침소봉대할 건 아니라고 했다. 중국 경제의 거품이 꺼지더라도 그로 인해 세계 경제가 큰 충격을 받을 것 같지는 않다고 봤다.

미국의 투자 업계도 포린폴리시의 분석과는 결이 다른 진단을 내놓고 있다. 월가의 큰 손들인 블랙록·골드만삭스 등은 “지금은 여전히 중국에 투자할 시점”이라는 입장이다. 투자의 촉이 예민한 조지 소로스는 “미국의 이익을 해치고 투자 역시 쪽박을 찰 수 있다”고 경고했지만, 월가 큰 손들은 중국에 대한 입장을 바꾸지 않고 있다. 특히 세계 최대 헤지펀드를 운영하는 블랙록은 FT와의 인터뷰에서 “글로벌 포트폴리오 기준으로는 중국 경제가 여전히 과소 대표되고 있다”며 “불안 요소가 있긴 해도 중국 투자 비중을 2~3배 늘려야 할 시점”이라고 했다.

어느 쪽 관점이 맞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러나 전력난과 헝다 위기보다 더 눈여겨봐야 할 것은 사회주의 현대화를 내세운 중국 공산당의 시장 통제 강화라고 볼 수 있다. 중국 공산당은 알리바바·텐센트 등 빅 테크를 비롯해 기업에 대한 통제력을 급격히 강화해왔다. FT는 “공산당의 통제는 결국 기업의 자율과 창의를 위축시켜 중국기업의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니혼게이자이는 “중국의 과거 회귀로 세계는 다시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대치 국면에 들어가게 됐다”고 해석했다.

3. 성장 동력 급격히 떨어진 한국

한국은 상황이 더 암울하다. 지난 4년간 재정 능력을 크게 초과해 정부 지출을 늘려왔지만 한국 경제의 활력은 회복될 조짐이 안 보인다. 경제 성장률이 1분기 1.7%였으나 2분기 0.8%로 떨어졌고, 3분기에는 또다시 0.3%로 쪼그라들었다. 성장 동력이 약화한 탓으로 이렇게 흘러가면 1인당 GDP 잠재성장률은 2030년 이후 0.8%에 그칠 것이란 전망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나왔다. 국가채무 증가 속도는 주요국 1위로 꼽혀 지금처럼 재정을 계속 동원하기 어렵다는 점도 문제다. GDP 대비 가계부채는 주요국 중 처음으로 100%를 넘겼다.

결국 한국 경제가 솟아날 구멍은 기업 경쟁력 강화밖에 없다. 중국에서는 공산당이 기업의 자율과 창의를 옥죌 가능성이 있는 만큼 한국은 그만큼 시간을 벌게 된다. 여건은 만만치 않다. 유일한 버팀목이던 반도체 독점이 흔들리면서다. 미국은 자국 영토에 반도체 공장을 유치하는 것도 모자라 반도체 생산 자료를 내놓으라고 압박하고 있다. 전기차와 자율차의 게임체인저로 떠오른 배터리의 경우도 글로벌 기업들이 새로운 표준을 만들거나 직접 제조를 모색하고 있어 안심할 수 없게 됐다. 그야말로 기업을 앞세운 대리전쟁(proxy war)의 포연이 자욱하다.

들불처럼 번지는 인플레이션도 우리에겐 퍼펙트 스톰이 될 수 있다. 미국조차 세계 공급망 대란에 직면해 경제 활동에 타격을 받으면서 성장률이 기대치를 밑돌고 물가가 6%대로 치솟아 비상이 걸렸다. 미국에선 코로나 피로감 때문인지 근로자의 직장 복귀가 지연되면서 기업 간 임금인상 경쟁도 촉발되고 있다. NYT는 “유가와 원자잿값이 너무 올라 일부 브랜드는 서비스의 질이나 양을 줄이고 있다”며 “인플레이션이 지표상으로 드러나는 것보다 심각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자칫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 중 물가상승)이 전 세계로 전파될 수 있는 양상이다. 아슬아슬한 국면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