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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소득세 면제, 가상자산 과세 연기…표쫓는 '세금정치' 남발

중앙일보

입력

대선을 앞둔 여야(與野)가 표심을 염두에 둔 세금 관련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공약의 실효성과 실현 가능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16일 기획재정부와 정치권 등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 청년본부는 연간 종합소득이 5000만원 이하인 20대 근로소득자ㆍ사업소득자에 대한 소득세 비과세를 공약으로 검토 중이다. 상대적으로 소득이 적고 자산 증가 속도도 더딘 20대의 소득을 특별히 보호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에서다. 민주당 선대위 청년본부가 2017∼2019년 가구주 연령대별 평균 가구 소득을 분석한 결과, 30대~60대 가구는 연령대별로 3~9%대 소득 증가율을 보였지만, 20대 가구는 0%였다.

하지만 한국의 저소득 근로자 상당수는 근로소득세 등에서 면세 혜택을 받고 있다. 국회예산정책처의 국세통계연보 분석에 따르면 2019년 기준 한국 전체 근로소득자 1917만명 중 면세자는 706만명으로, 면세자 비율은 36.8%다. 20대 저소득자라면 이미 상당수가 면세 대상일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대기업 근로자 등 초임 수준이 높은 20대에게 혜택이 돌아갈 수 있다. 또 연령 차가 얼마 나지 않는 30대나 저소득 근로자 비중이 큰 고령층에서 반발이 일면서 세대 갈등이 일어날 소지도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는 16일 오전 서대문구 청년문화공간 신촌 파랑고래에서 청소년 청년 기후활동가들과 기후위기를 주제로 간담회를 가졌다. 이후보가 참석자들과 악수를 하고 있다. 2021.11.16 국회사진기자단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는 16일 오전 서대문구 청년문화공간 신촌 파랑고래에서 청소년 청년 기후활동가들과 기후위기를 주제로 간담회를 가졌다. 이후보가 참석자들과 악수를 하고 있다. 2021.11.16 국회사진기자단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연일 ‘기본소득 토지세’(국토보유세)를 신설해 부동산 투기를 근절하겠다고 강조하고 있다. 모든 토지에 세금을 매긴 후 세수 전액을 자신의 대표 정책인 기본소득 예산으로만 활용하겠다는 게 이 후보의 구상이다. 하지만 국토보유세는 재산세와 동일한 세원에 대한 이중과세를 야기하고, 사실상 특정 지역 소수에게 부과하는 ‘징벌적 과세’ 성격을 지녔다는 점에서 논란이다. 이 후보는 특히 “상위 10%에 들지 못하면서 이를 반대하는 것은 바보짓”이라고도 했다. 세금을 통한 ‘국민 갈라치기’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대통령이 되면 종합부동산세(종부세)를 전면 재검토하겠다”며 “중장기적으로 종부세를 재산세에 통합하거나 1주택자에 대해서는 면제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종부세와 재산세 통합은 입법적으로 종부세법을 아예 폐지하는 ‘대수술’이 필요하다. 애초에 종부세 부과 대상자가 많지 않고, 조세 형평성을 높인다는 취지를 고려할 때 1주택자란 이유로 아예 세금을 안 내는 건 원칙에 안 맞는다는 지적도 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오른쪽)가 15일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이철희 청와대 정무수석으로부터 문재인 대통령의 축하 난을 전달받고 있다. 임현동 기자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오른쪽)가 15일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이철희 청와대 정무수석으로부터 문재인 대통령의 축하 난을 전달받고 있다. 임현동 기자

또 현재 종부세수는 중앙정부가 사용하는 게 아니라 지방자치단체에 전액 배분하는 구조로, 재정이 열악한 지역에 조금 더 많은 재원이 가도록 설계돼 있다. 종부세를 폐지하면 지자체가 반발할 가능성이 크다.

내년부터 가상자산(암호화폐)에 세금을 매기도록 한 방안에 대해서는 여야 모두 시기를 유예하자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 가상자산 투자에 적극적인 20·30세대의 표를 구애하기 위해서란 분석이다. 하지만 이미 시행하기로 합의한 과세를 유예하는 것은 과세원칙에 어긋나고, 투자자의 혼란만 가중시킬 수 있다.

학계에서는 표심을 겨냥한 ‘세금의 정치화’가 도를 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장과 통계청장을 지낸 박형수 K-정책플랫폼 원장은 “양쪽 주자 모두 국가 재정에 대한 계획이나, 제도 실행 뒤 발생할 부작용에 대한 고민 없이 지지층의 입맛에 맞는 발언만 쏟아내고 있다”며 “두 대선 후보 모두 돈을 더 쓰려고 하는데, 한 후보는 재원 조달 방안의 실현 가능성이 떨어지고, 다른 후보는 구체적인 해법이 없다”라고 꼬집었다.

조세 정책은 국가 재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만큼 공약 발표 이전에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세금 제도는 여러 요인을 충분히 검토한 다음 타당성과 합리성을 바탕으로 만들어야 한다”며 “조세 제도의 안정성과 타당성이 떨어지면 국민의 조세 저항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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