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이혼=인생망 아니니까요" 폭풍공감 부른 MZ 이혼 브이로그

중앙일보

입력

“엄마가 아니었으면 나 이혼 못 했을 거야.”

개그맨 배동성씨의 딸 수진씨가 최근 한 예능프로그램에 엄마와 함께 출연해 나눈 대화가 화제다. 엄마 안현주씨도 배씨와 이혼한 상태였기에, ‘돌싱모녀’가 이혼에 대해 솔직한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은 많은 이들의 공감을 끌어냈다. 지난해 8월 유튜브를 통해 이혼 소식을 알린 수진씨는 “이혼하고 성격이 많이 바뀌었다”며 “원래는 부정적인 사람이었는데 긍정적으로 변했다. 많이 행복해졌다”고 했다.

[연합뉴스]

[연합뉴스]

자신의 이혼 이야기를 대중 앞에서 거리낌 없이 털어놓는 건 비단 유명인에게 한정되지 않는다. 최근 유튜브에 자주 보이는 ‘이혼 브이로그(vlog·일상을 기록한 영상 콘텐트)’는 이혼을 숨기기 급급했던 과거 세대와 달리, 이혼을 ‘인생의 선택지’ 중 하나로 여기게 된 MZ 세대의 인식 변화를 보여준다. 이들 역시 “처음에는 이혼이 정말 창피했다” “실패한 것 같고, 인생에 오점이 남았구나 싶었다” 등 이혼의 어려움을 토로했지만, 오히려 이혼 브이로그가 큰 힘이 됐다고 했다.

중앙일보가 유튜버 레나 전(37), 송정민(30), 김예진(21)씨를 줌(zoom)과 전화 인터뷰로 만나 이혼하게 된 계기와 과정, 이혼 후 일상 등을 영상에 담는 이유를 들어봤다.

이혼했다는 죄의식…“실패라고 생각했어요”

인터뷰 당시 런던에 거주하던 레나 전(왼쪽)과 줌으로 인터뷰를 하는 모습 [zoom 캡쳐]

인터뷰 당시 런던에 거주하던 레나 전(왼쪽)과 줌으로 인터뷰를 하는 모습 [zoom 캡쳐]

외국에서만 10년 넘게 살았다는 전씨는 자신을 강인하다 여겼다. 그 생각이 깨진 건 지난 2019년 10월, 남편과 이혼 결정을 내린 때다. 전씨는 “이혼했다고 친구들한테도 말도 못 했어요. 울지 않고는 이혼 이야기를 할 수가 없었거든요”라며 “부모님께도 미안하고, 인생의 실패라고 생각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그렇게 생각한 지 반년, 전씨는 유튜브 첫 영상으로 이혼 브이로그를 올리기로 결심했다. 이혼 사실을 공개적으로 알리고, 비슷한 상황에 있는 이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전씨는 “심리적으로 바닥을 쳤을 때 주위의 격려를 통해 회복할 수 있었어요. 그래서 영상을 찍어야겠다 싶었죠. 나랑 같은 사람이 있을 테니까”라고 말했다.

이혼이 힘들었던 건 혼자 아이를 키우는 유튜버 송정민씨도 마찬가지였다. 송씨에게 유튜브는 힘든 결혼·이혼 과정을 버티게 한 ‘숨구멍’이었다. 송씨는 “육아를 제가 다 맡아서 했어요. 그때는 ‘사적인 얘기를 유튜브에 올려도 되나?’ 걱정도 못 할 정도로 힘들었다”고 했다. 그가 우울함을 떨치기 위해 올린 이혼 브이로그는 5개월여 만에 조회 수 33만회를 돌파했다.

“왜 숨겨요?”…아이 공개도 당당하게

이혼 브이로그를 올린 유튜버 김예진씨와 아들 리안군의 모습이다. 김씨는 아들의 얼굴을 유튜브 채널에 공개했다. [예꽁tv 유튜브 캡쳐]

이혼 브이로그를 올린 유튜버 김예진씨와 아들 리안군의 모습이다. 김씨는 아들의 얼굴을 유튜브 채널에 공개했다. [예꽁tv 유튜브 캡쳐]

 아이의 얼굴을 공개한 유튜버도 있다. 21살에 출산과 결혼, 이혼을 거친 김예진씨의 유튜브 채널은 MZ세대 특유의 솔직함과 당당함이 묻어난다. 이혼을 결심하며 단식원에 다녀온 영상, 아르바이트할 때 친구가 아이를 봐주는 영상, 그리고 아들 리안군이 출연한 영상 모두 채널에 있다.

김씨는 민감할 수 있는 아이 얼굴 공개에 대해 이렇게 얘기했다. 그는 본인이 숨길수록 아이도 숨게 될 것 같아 공개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김씨는 “리안이가 커서 ‘내가 계획된 아이가 아니라 아빠가 없다’고 생각하지 않기를 바랐다”며 “절 불쌍하게 보는 사람들한테도 ‘나는 잘못되지 않았다’는 말하고 싶기도 했다”고 말했다.

아이를 혼자 키우는 송씨는 싱글맘 라이프에서 얻은 팁을 유튜브에 공유한다. 본인과 같은 싱글맘·대디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 싶어서다. 송씨는 “한부모 가정을 신청하러 주민센터에 가도 제대로 설명 듣기 어렵다”며 “정보를 모르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아 영상으로 만들었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송씨의 이혼 브이로그 댓글창엔 용기와 위로를 주는 말들이 가득하다. 송씨는 “이혼 가정에서 자랐다는 사람도, 이혼했지만 잘 산다는 사람들도 댓글을 남겼다”며 “제 영상이 누군가에게 용기가 됐고, 저도 용기를 얻었다”고 말했다.

“이혼=인생망 아냐”…용기·연대 가져왔다

송정민씨가 올린 이혼 브이로그에 달린 댓글들. [싱글맘 유튜브 캡쳐]

송정민씨가 올린 이혼 브이로그에 달린 댓글들. [싱글맘 유튜브 캡쳐]

이들 세 명은 모두 이혼해서 ‘전보다 행복해졌다’고 입을 모은다. 그러나 고민이 없는 건 아니다. 양육비 등 경제적인 문제 때문이다. 김씨는 “아이를 키우면 다 돈”이라며 “내년엔 아이와 함께 사는 온전한 내 공간을 갖고 싶은데 가능할지 모르겠다”고 걱정했다. 싱글맘인 송씨도 “아이를 혼자 키우다 보니 경제적인 부분이 제일 어렵다”고 말했다.

전씨는 이혼한 사람들이 본인의 상처를 더 쉽게 공유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아픔을 발화하고 위로받아야 상처를 극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씨는 “영국은 힘들면 힘들다고 터놓고 이야기해요. 물론 처음은 어렵죠. 그래도 한두명이 이야기를 꺼내면 모두가 말하더라고요”라고 말했다.

전문가는 이혼 브이로그는 변화한 사회상이 반영된 결과라고 말한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혼한 것이 이제는 감출 일도 아니고 MZ세대는 또 솔직하지 않으냐”며 “비난과 조롱이 대부분인 온라인에서도 조금씩 사회적 연대가 싹트는 것 같다”고 의미를 짚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