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신 가발쓰고 싶지 않다" 대머리 여성 6인의 찬란한 순간

중앙일보

입력 2021.11.11 21:19

한 번도 가발을 벗고 세상에 나온 적이 없었던 셀람 베다다(35)는 2018년 촬영을 한 뒤 당당하게 가발을 벗고 스튜디오를 나왔다. 인스타그램 캡처

한 번도 가발을 벗고 세상에 나온 적이 없었던 셀람 베다다(35)는 2018년 촬영을 한 뒤 당당하게 가발을 벗고 스튜디오를 나왔다. 인스타그램 캡처

여성에게 머리카락이 없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탈모증 환자의 40%가 여성이라는 통계도 있다지만, 대머리 여성을 향한 사회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미국 사진작가 애비그리나왈트가 이에 반기를 들고 나섰다. “여성의 대머리는 더욱 아름답다”는 게 메시지다. 10년 넘게 대머리인 사람을 찍은 그가 크리스털 시티 언더그라운드 갤러리에서 ‘웰 라운디드’(Well Rounded) 전시회를 열었다. 작품 49점 중 17점의 주인공이 여성이다.

미용사의 딸인 그는 “어릴 때부터 믿었던 ‘좋은 머리카락’의 가치는 ‘만들어진 미(美)의 기준에 관한 이야기였을 뿐”이라고 고백한다. “촬영을 통해 대머리는 이전의 정체성이나 관계를 초월해 새로운 미의 기준을 만들어낸다는 것을 깨달았다”면서다. 그는 이번에 공개한 작품을 “나의 예술을 넘어선 그들(모델)의 이야기”라고 정의한다. 워싱턴포스트(WP)가 만드는 여성신문 ‘더릴리’가 8일(현지시간) 이들의 이야기를 소개했다.

“여전히 나였다…사진에서 빠진 건 머리카락뿐”  

셀람 베다다(35)는 지난 2018년 그리나왈트와의 촬영을 앞두고 한 달 동안 16번이나 유방암 화학 치료를 받았다. “(머리카락을 모두 잃은) 그때가 내 인생에서 최악의 순간이었다”던 그는 “애비가 내 마음을 열어줬다”고 말한다. 한 번도 가발을 벗고 세상에 나온 적이 없었던 그는 그날 촬영을 한 뒤 그후론 다시 가발을 쓰지 않았다.

베다다는 그리나왈트가 찍은 자신의 모습을 보고 그 앞에서 20분 동안 울었다. 그는 “내가 너무 자랑스러웠다”며 “마치 내가 광고판의 슈퍼모델이 된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이제 건강한 머리카락을 되찾은 그는 “우리는 ‘아름다움’에 맞출 필요가 없다”며 “(사진 속)친절하고 사랑스러운 나는 여전히 나였다. 그 사진에서 빠진 유일한 건 내 머리카락이었다”고 강조했다.

수단 출신 미국인 스테파니 밀스(41)는 스스로 대머리가 되기로 선택했다. 글로벌 주류업체의 럭셔리 브랜드 홍보대사인 그는 픽시컷(짧은 헤어스타일)을 선호했지만, 잦은 해외출장 탓에 관리에 어려움을 겪다가 2008년 어느 날 미용실에서 “머리를 밀어달라”고 요청했다. 사실 회사에서 어떻게 볼지 걱정도 했지만, 기우였다. 매주 스스로 머리를 면도하는 그는 “(머리를 밀 때마다) 새 출발 하는 느낌”이라며 “아프리카 부족 여성의 헤어스타일(민머리)을 하면서 내 뿌리를 찾는 것 같다”고 말했다.

승무원 와이케이타 키키 패트릭(48)은 편의점에서 애버 그리나왈트의 촬영 부탁을 받고 ″뭐든지 할 수 있다″고 흔쾌히 응했다. 인스타그램 캡처

승무원 와이케이타 키키 패트릭(48)은 편의점에서 애버 그리나왈트의 촬영 부탁을 받고 ″뭐든지 할 수 있다″고 흔쾌히 응했다. 인스타그램 캡처

승무원 와이케이타 키키 패트릭(48)은 22살 때부터 탈모가 진행됐지만 2020년 7월 부분 탈모가 너무 많아져서 가발을 쓰지 못하게 돼서야 머리를 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머리를 밀 때마다 ‘넌 충분히 아름답다’는 생각과 ‘네 모습을 보고 싶은 사람은 없다’는 생각이 교차한다. 그는 가발을 쓰고 싶을 때면 이렇게 되뇐다. “가리기 시작하면 다시 나를 숨기고 싶어질 것”이라고.

“‘다름’은 나의 힘…함께여서 외롭지 않아”

전신성 탈모증을 앓는 한나 프레이(17)의 11살 때 모습. 인스타그램 캡처

전신성 탈모증을 앓는 한나 프레이(17)의 11살 때 모습. 인스타그램 캡처

스타일리스트인 타라 파파니콜라스(44)는 36살 때 자궁암 2기 진단과 함께 머리카락을 잃었다가 그 덕분에 사진작가인 여자친구를 만났다. 동네 가게에서 자신과 비슷하게 생긴 한 여성이 ‘그 헤어스타일 좋네요’라고 말을 걸었고 파파니콜라스도 똑같은 답을 돌려주면서다. 이 커플은 스타일링과 촬영을 각각 맡아 탈모 여성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로 했다. “사람들이 자신을 더 좋게 느꼈으면 좋겠어서”다.

그리나왈트의 작품엔 10대 소녀들도 등장한다. 한나 프레이(17)는 11살 때 그리나왈트의 카메라 앞에 섰다. 두 살 때 전신성 탈모증 진단을 받은 프레이는온몸에 털이 전혀 없다. 그는 이번 전시회에서 “나 같은 사람이 많다는 단순한 사실과 함께 중요한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며 “‘기준’을 요구하지 않는 ‘여자다움’과 ‘아름다움’을 새롭게 정의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희귀성 간암 진단을 앓는 올리 와일드맨 할페른(12)은 또래 모임까지 결성할 정도로 소아암 연구 지원에 적극적이다. 인스타그램 캡처

희귀성 간암 진단을 앓는 올리 와일드맨 할페른(12)은 또래 모임까지 결성할 정도로 소아암 연구 지원에 적극적이다. 인스타그램 캡처

가장 늦게 그리나왈트와 작업한 모델은 팬데믹 직전 희귀성 간암 진단을 받은 올리 와일드맨 할페른(12)이다. 할페른의 촬영은 감염 위험으로 올여름 스튜디오가 아닌 집 뒷마당에서 진행됐다. 소아암 연구를 지원하기 위해 10대 또래 모임까지 결성했다는 올리는 “당신이 가진 ‘다름’은 당신에게 힘이 되어야지, 외톨이라고 느끼게 해선 안 된다”며 “나와 비슷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전시되는 건 가끔 혼자라는 생각이 들더라도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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