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여성착취 공모자" 팔로워 2800만명 섹시스타의 반성문

중앙일보

입력 2021.11.10 16:24

업데이트 2021.11.10 16:30

지난 9월 13일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멧갈라에 참석한 에밀리 라타이코프스키. AFP=연합뉴스

지난 9월 13일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멧갈라에 참석한 에밀리 라타이코프스키. AFP=연합뉴스

 미국의 모델이자 섹시 스타인 에밀리 라타이코프스키(30)가 최근 내놓은 에세이 컬렉션 『마이 바디』(My Body) 표지엔 사진이 없다. 그의 소개글은 이렇다. “인스타그램에서 비키니 같은 것을 팔면서 아이디어와 정치, 그리고 몸을 제외한 나의 모든 것이 존중받기를 바랐다.”

라타이코프스키는 2800만명의 인스타그램 팔로워를 거느렸다. 2013년 로빈 시크의 뮤직비디오 ‘블러드 라인(Blurred Lines)’에 누드로 출연해 유튜브 조회 수 7억6800만회를 달성하며 스타덤에 올랐다. 현대판 섹시미의 상징이 된 그는 그러나 “강렬한 욕망의 대상이 된다는 것”에 대한 양가적 감정을 토로한다. 최고의 자리가 주는 만족감과 내면 깊은 곳에서 느끼는 불편함 그 사이에서다.

“뮤즈의 생애주기는 비참한 말로”

지난 9월 13일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멧갈라에 참석한 에밀리 라타이코프스키. AFP=연합뉴스

지난 9월 13일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멧갈라에 참석한 에밀리 라타이코프스키. AFP=연합뉴스

CNN은 9일(현지시간) “(여성의) 객관화와 착취에 대한 그의 자가진단은 매력적”이라고 했고, 워싱턴포스트(WP)는 “‘여자다움’의 오류에 대한 도전”이라고 평가했다. “(여자는) ‘몸과 두뇌를 동시에 가질 수 없다’라거나 ‘예쁘면서 예리할 수는 없다’는 오류”에 대해서다. 라타이코프스키는 CNN에 “글을 쓰는 것은 내가 가장 솔직할 수 있는 방법”이라며 “누군가 읽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쓴 건 아니었다”고 말했다.

세상의 스포트라이트를 한몸에 받는 ‘뮤즈’에 대해 그는 비관적이다. 라타이코프스키가 “이것이 뮤즈의 생애주기”라면서 언급한 오드리 먼슨은 1910년대 미국 최초 슈퍼모델로 화려한 전성기를 누렸지만, 28세 때 자살 시도 끝에 60년 넘게 갇혀있던 정신병원에서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한 인물이다. 라타이코프스키는 “이것이 뮤즈의 생애주기”라며 “돈을 절대 받지 못하는 예술품으로 영원히 박제되고, 결국 비참한 말로를 맞이한다”고 했다.

에밀리 라타이코프스키가 최근 출간한 에세이집 '마이 바디'. 사진 아마존 캡처

에밀리 라타이코프스키가 최근 출간한 에세이집 '마이 바디'. 사진 아마존 캡처

책에 담긴 일화는 욕망의 양면을 보여준다. 그는 “우리는 ‘가부장제’나 ‘자본주의’ 같은 단어를 가끔 듣지만, 사실 너무 크고 추상적인 개념”이라며 “(내 경험을 통해) 일상생활에서 그런 개념이 작동하는 모습을 살펴보고 싶었다”고 밝혔다. “저에게 이 책은 여성이 매우 취약해지는 순간과 그걸 은폐하려는 권력의 역학에 관한 것입니다. 제가 정말로 보고 싶은 건 권력의 역학에 관해 더 많은 대화가 이뤄지는 겁니다.”

8년 전 ‘블러드 라인’ 뮤직비디오 현장에서 시크가 촬영 중간 라타이코프스키의 가슴을 움켜잡았을 때다. 여성 감독은 긴 침묵 끝에 “음, 이제 접촉은 없어요”고만 했다고 한다. 라타이코프스키는 “나는 소품에 지나지 않았고 굴욕감을 느꼈다”면서도 “나는 일하기 위해 그곳에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모델 일을 하면서 돈을 벌수록 더 즐거워졌다”고 했다.

“여성 착취한 권력의 공모자”

모델 에밀리 라타이코프스키. 인스타그램 캡처

모델 에밀리 라타이코프스키. 인스타그램 캡처

어릴 때부터 딸의 외모에 집착하면서 모델을 시킨 부모님에 대한 복잡한 감정도 토로했다. 그는 부모님이 자기에게 “세상은 모든 것에 순위를 매긴다”고 믿게 했다면서 비판적인 감정과 함께 동정심도 느낀다고 했다. 리조트에서 찍은 비키니 사진을 몇 장 올려주는 대가로 다녀온 특급 호텔에서 받았던 느낌도 마찬가지다. 자신과는 달리 비용을 직접 지불하고 온 초호화 투숙객들을 보면서 그는 “눈앞에 멋진 바다를 두고도 갇혀 있는 느낌이었다”고 썼다.

일주일 만에 4.5㎏ 감량을 강요했던 패션 업계는 그에게 ‘약탈’과 ‘혼란’의 집단이다. 그는 그러나 “(자신을)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고, 큰 도움이 됐다”며 “이 업계에선 내가 얼마든지 대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했고, 그걸 인정하지 않으면 무대에 설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릴 땐 돈을 벌기 위해 이 일을 하는 건 너무 무서웠지만, 지금은 내가 더이상 무명 모델이 아니라는 사실이 그때와는 다르다”고 했다.

이런 이중적 감정 속에 라타이코프스키는 자신이 여성을 볼모로 한 권력의 ‘공모자’라고 실토한다. “하지만 ‘이게 내가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이라며 어떤 권력가에게 잘 보이려고 꽉 끼는 드레스를 입는 젊은 여성을 비난해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게 바로 내가 숱하게 겪었던 여성 혐오의 연장이죠. 우리 모두가 공모자입니다.”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Innovation Lab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