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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지윤 특별기고

“중견 작가군, 안목있는 콜렉터, 기업 인프라가 매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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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세계는 왜 한국 미술시장에 주목할까

지난 10월 영국 런던에서 개최된 프리즈 페어의 안데르센스 부스 전경. 코로나19 팬데믹 속 힘든 상황에서도 활기를 띠었다. [사진 프리즈]

지난 10월 영국 런던에서 개최된 프리즈 페어의 안데르센스 부스 전경. 코로나19 팬데믹 속 힘든 상황에서도 활기를 띠었다. [사진 프리즈]

2020년 3월 이후 굳게 닫혔던 유럽의 미술시장이 18개월 만에 다시 문을 열었다. 지난 9월, 조용히 시작된 스위스 바젤 아트페어에 이어, 10월엔 런던의 프리즈(Frieze) 페어와 파리의 피악(Fiac) 페어가 성황리에 개최됐다. 한국의 제한적 코로나 거리두기와 달리 유럽은 거의 록다운 상황이었다. 하루에 두 차례, 식료품 구매와 간단한 산책 정도로만 집 밖에 나갈 수 있었고, 거의 모든 상점이 문을 닫았다. 그렇게 정지된 시간이 1년 넘게 이어졌다. 그래서인지 이번 런던과 파리의 아트페어는 유례없는 놀라운 아트 파티이자 큰 축제가 되다시피했다.

바젤이 유럽 콜렉터들의 파티였다면, 런던은 글로벌 아트 트로터들이 다시 모인 무대였다. 중요한 아시아 콜렉터들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고 유럽과 미국의 주요 미술관의 관장들, 큐레이터들, 작가들도 많이 눈에 띄었다. 런던 프리즈 위크엔 크고 작은 1000개의 미술 전시가 열렸는데, 이어지는 저녁 파티들 때문에 식당 예약은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려워 식당가도 모처럼 큰 호황을 누렸다.

코로나속 개최된 프리즈-피악 페어
“수십억대 작품 가장 많이 거래된 해”
내년 프리즈 서울 개최에 세계 주목
한국 작가 알려 미술시장 넓힐 기회

리만 머핀 갤러리에 전시된 서도호 작가의 Hub-2, Breakfast Corner, 260-7, Sungbook-Dong, Sungboo- Ku, Seoul, Korea, 2018.

리만 머핀 갤러리에 전시된 서도호 작가의 Hub-2, Breakfast Corner, 260-7, Sungbook-Dong, Sungboo- Ku, Seoul, Korea, 2018.

모처럼 활기를 띤 축제의 내면은 어떠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코로나 시국에 최대의 호황을 누리는 아시아의 명품시장과 같이, 서구의 블루칩 미술시장은 조용하면서도 아주 뜨거웠다. 콜렉터들은 코로나 휴지기를 이용해 자신의 작품들을 정리할 시간을 가지면서 작품 거래 건수가 늘어났다. 예상과 달리 “수십억원대의 작품이 가장 많이 거래된 해였다”(아트 뉴스 페이퍼)는 평이 나올 정도였다.

작가들 역시 시간을 갖고 독창성과 내공을 담은 신작들을 준비할 수 있었다. 작품을 중개하는 갤러리들도 바빴다. 특히 세계 최고의 화랑으로 꼽히는 하우저 앤드 워스, 가고시안, 로팍, 페이스, 화이트큐브 등의 갤러리들은 수십억원대에 팔리는 작품 리스트를 앞다투어 발표했다.

케리 제임스 마샬, Black and Part Black Bird in America, 2021.

케리 제임스 마샬, Black and Part Black Bird in America, 2021.

방문자의 수가 제한된 상태였음에도, 하우저앤드워스 갤러리는 오픈 한 시간만에 17개의 작품을 판매했는데, 첫 작품으로 군터포그의 작품을 판매가 150만 달러로 아트넷에 공개했다. 데이빗저너 갤러리는 미술계의 가장 뜨거운 작가라 할 수 있는 미국 작가 케리 제임스 마샬의 ‘Black and Part Black Bird in America’를 220만 달러에 판매했다. 이렇게 수십억원대를 호가하는 블루칩들도 각광받았지만, 흥미로웠던 건 새로 조망되는 다양한 여성 작가들의 움직이었다. 미국 코단스키 갤러리에서 나온 루시벨은 3000만~8000만원 정도되는 대형 회화가 큰 주목을 받으며 새로운 스타로 등장했고, 70대의 미리암 칸 같은 스위스 태생의 탁월한 여성화가의 회화 작품도 큰 주목을 받았다. 미리암은 로스코와도 같은 놀라운 색의 세계를 구사하는 필치이나 매우 어둡고 파편적 인간의 모습을 그리는, 매우 빨리 다가오는 테크놀로지 시대를 바라보는 인간상을 나타내는 것 같은 포스트 휴먼을 주제로 잡았다. 과거 역사적·정치적 상황에서 부조리를 겪은 인간들의 폭로 등이 큰 주제였다면, 코로나의 터널을 지나면서 작가들의 관심은 더욱 인간의 내면과 본질에 대한 질문에 쏠리면서 이를 중요한 작품 주제로 다루는 경향을 볼 수 있었다.

이번 전시 대열에는 한국의 최고 갤러리들도 당당하게 한몫을 했다. 국제·현대·PKM·아라리오 갤러리 등이 김창열·박서보·윤형근·이승택·하종현·최욱경·김순기·권영우·이기봉·서도호·이불·양혜규·강서경 작가 등 한국의 주요 작가와 작품들을 소개했다. 특히 한국 작가들이 작품성에 비해 글로벌 시장에서 상대적으로 저평가되고 있다는 인식이 퍼지고 관련 논의가 시작됐다는 점은 주목할만하다.

프리즈 런던이 살아있는 작가들의 블루칩 작품들을 거래하는 쪽으로 성장해간다면, 파리의 피악은 좀 더 실험적이고 젊은 신진 작가들을 발견할 수 있는 전시장이었다.

올해 인상적인 건, 프리즈에 참가하진 않았지만 오랜 역사를 지닌 유서깊은 작은 규모의 파리 갤러리들이 다시 미술시장과 미술 자체에 대한 고민과 질문을 가지고, 기성 작가들의 작품을 재조명하고 신인 작가를 많이 발굴해 소개하고 있는 점이다. 프리즈의 대형 무대에서 볼 수 없는, 보석 같은 작가들을 찾을 수 있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지난 5월 옛 상공회의소 건물을 안도 타다오가 리모델링해 새로 문을 연 피노 콜렉션 미술관의 경우, 대가들의 작품과 더불어 새로 떠오르는 80년대생의 신진 작가들 작품이 많이 소개되었다. 이 미술관의 수석 큐레이터인 캐롤라인 부르조아는 “이제는 새로운 작가를 발굴해야 한다. 큐레이터들의 역할과 연구·소개가 너무나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며 새로 발굴한 작가들을 보여주었다.

미리암 칸, o.t., nov.94, 1994.

미리암 칸, o.t., nov.94, 1994.

특히 우리에게 고무적인 건 세계 최고 미술시장 브랜드인 프리즈 아트페어가 내년 10월에 서울에 온다는 사실이다. 프리즈가 서울로 온다는 것은 매우 큰 의미를 갖는다. 아트 바젤이 2013년 홍콩에 입성하면서 상하이와 함께 아시아 글로벌 미술시장의 메카가 된 것과 같이, 2022년 프리즈 서울의 개최는 서울이 중국과 더불어 어깨를 겨루는 글로벌 미술시장의 한 축으로 부상할 수 있다는 의미다.

실제로 런던과 파리에서 만난 미술계 관계자들은 내년 프리즈 서울에 대해 높은 관심을 보였다. 실제로 한국갤러리 뿐 아니라 해외 갤러리들이 한국 작가의 작품을 여럿 소개했다. 화이트 큐브에서 박서보를, 악셀 갤러리에서 윤형근을, 리만머핀은 서도호의 작품을 내놨다.

세계의 미술시장이 왜 한국을 주목하는 것일까. 우선 세계적으로 바람을 타고 있는 한류의 열풍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BTS 음악에 이어 영화 ‘기생충’ ‘미나리’, 그리고 넷플릭스에서 ‘오징어 게임’이 전세계를 휩쓸고 있다. 그렇게 보면, 아직 K아트는 백남준 이후 빈자리가 아직 채워지지 않고 있다고 봐야 한다.

프리즈 마스터 디렉터인 네이슨 클레멘테는 “한국의 시장은 매우 가능성이 크다. 물론 매우 지식이 많고 세련된 콜렉터들도 있지만, 시장을 평가할 때 함께 고려해야 하는 미술의 생태계 즉, 미술대학, 국공립 미술관, 또한 나아가 매우 중요한 기업 콜렉션이 단단하게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 아주 매력적” 이라고 말했다. 실제 한국은 광주·부산 비엔날레 등의 국제 행사를 통해 중요한 작가들을 배출했고, 지금은 그들이 더 큰 글로벌 무대로 도약할 채비를 마친 상태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이를 뒷받침할 단단한 인프라가 발전하고 있는 단계에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한국의 콜렉터 역시 해외에서 상당히 안목을 인정받고 있다. 최근 페이스·쾨닝·바라캇 컨템포러리·타데우스로팍·니먼몰핀 등 해외의 유수 갤러리들이 한국 지점을 잇따라 열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으로 보인다.

따라서 1년 앞으로 다가온 프리즈 서울 2022는 한국 미술계와 미술시장이 한단계 도약할 수 있는 분기점이 될 전망이다. 그동안 참가하기 어려웠던 런던 프리즈 페어에 가지 않고도 세계적 거장들의 작품과 글로벌 콜렉터들을 만날 수 있게 된다. 더욱 다양한 작가들을 알게되고, 개개인의 취향을 넓혀 가며 국제적인 콜렉션을 넓혀 갈 수 있는 동시에, 한국 작가들의 시장을 넓힐 수 있는 바잉파워를 보여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유는 ‘Love of Art’ 라는 글에서 “사람들은 미술을 단지 사랑해서 사는 것 뿐 아니라, 그 미술을 가지고 있는 동료 그룹의 관심을 사는 것이다”라는 말을 했다. 새로운 시장이 열리는 동시에 세계에 K아트를 알릴 수 있는 큰 무대가 될, 프리즈 서울 2022를 기대해본다.

◆이지윤

영국 골드스미스대, 코톨드 인스티튜트 오브 아트 등에서 미술경영학(석사)·미술사(박사)를 공부했다. 20여년 런던에 거주, 글로벌 미술계에서 일하다 2014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디렉터를 맡았다. 현재는 미술 큐레이팅 사무소 ‘숨 프로젝트’를 운영하며 연세대 겸임교수, 북경 중앙 미술학원 객원 큐레이터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