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블로2 다시 뜨자 너도나도 ‘쌀먹’, 합법화 요구 거세

중앙선데이

입력 2021.10.30 00:02

업데이트 2021.10.30 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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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0호 02면

게임 아이템 현금 거래 열풍 

“이달 들어서만 게임 내 아이템 판매로 30만원가량 벌었습니다. 금액이 크진 않지만 손실 우려가 있는 주식이나 코인 투자와 달리 시간만 들이면 수익을 얻을 수 있어 당분간 계속할 생각입니다.” PC게임 디아블로2 리저렉션(부활)을 즐기는 회사원 오모(40)씨는 퇴근 후 대부분의 시간을 게임을 하는 데 쓰고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게임을 통해 아이템을 얻으면 현금 거래 사이트를 통해 곧바로 현금화하고 있다는 얘기다. 오씨 등 게이머들에 따르면 이를 ‘쌀먹’이라고 부른다. ‘쌀을 사먹자’는 의미인데, 게임 아이템 거래를 통해 돈을 번다는 신조어다.

20여 년 전 국내 PC방을 휩쓸었던 디아블로2의 리마스터(게임 방식은 그대로 두고 그래픽만 바꾼 개선판) 버전인 ‘디아블로2 리저렉션’이 중년들에게 큰 인기를 끌면서 게임 아이템 현금 거래가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경제력은 갖췄지만 게임에 투자할 수 있는 시간이 한정적인 중년 게이머들이 아이템 현금 구매에 나서고 있고, 이들에게 아이템을 팔기 위해 젊은층은 물론 또 다른 중년들이 게임으로 몰리고 있다. 대학생 신모(21)씨는 “코로나19 확산 이후 아르바이트 자리 구하기도 어려워졌는데 게임으로 용돈이라도 벌어보자는 생각에 시작했다”며 “소득이 높은 40대 게이머들이 많아서인지 거래가 활발해 최저시급 정도는 버는 것 같다”고 말했다.

리니지 ‘진명황 집행검’ 수천만원 호가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게임 아이템 현금 거래는 사실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오랜 기간 국내 아이템 거래 순위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던 NC소프트의 리니지의 경우 게임 내 아이템인 ‘진명황의 집행검’은 수천만원을 호가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다만 국내에서는 게임 아이템 현금 거래는 2017년을 정점으로 정체된 상태다. 게임 아이템 거래가 합법도 불법도 아닌 회색 지대에 놓인 탓이다. 우선 한국콘텐츠진흥원 산하 콘텐츠분쟁조정위원회에서는 “게임산업진흥법에서는 사행성이 들어간 게임 내 재화가 아니라면 개인간 거래는 문제 삼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게임 아이템의 경우 ‘사행성’ 판단이 애매한 영역이란 점이 문제다. 게임 상에서 가치가 높은 아이템은 누구나 얻을 수 없고, 획득 확률이 낮아 문제 삼을 여지가 있어서다.

이 때문에 게임에 현금 거래 기능을 넣으면 게임물관리위원회에서 등급분류가 나지 않아 서비스 자체가 불가능하다. 따라서 현재 서비스가 이뤄지고 있는 게임은 모두 게임 내에선 현금 거래를 할 수 없다. 아이템 거래가 명확히 불법이 아닌 데도 게임물관리위원회를 통한 간접 규제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현재 이뤄지는 아이템 거래는 게임 밖의 아이템 거래 사이트나 개인간 거래다. 국내 최대 아이템 거래소 아이템매니아를 운영중인 IMI의 한 관계자는 “게이머들 가운데 현금 거래를 하는 사람들의 숫자는 일정 규모에 도달한 상황”이라며 “다만 거래소를 통하지 않은 거래는 집계가 되지 않아 통계에 잡히지 않는 거래도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음지에서 거래가 이뤄지다 보니 게임 아이템 거래를 통한 탈세나 자금세탁 등도 끊이지 않는다. 게임업계와 전문가 사이에서 게임 아이템 현금 거래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위정현 중앙대 교수(경영학)는 “한국에서는 십수년도 지난 사행성 게임 바다이야기의 충격이 너무 커서 정치권에서는 아무도 게임 아이템의 현금 거래 양성화를 거론하지 않는다”며 “거시적 안목에서 게임산업을 키운다는 안목에서는 게임 아이템 현금 거래를 양지로 끌어올려야 한다”고 말했다.

국내와 달리 해외에서는 현재 ‘Play to Earn(게임을 하면서 돈을 버는 것)’이 게임업계 기술 발전을 주도하고 있다. 특히 NFT(블록체인 기술로 암호화한 디지털 자산으로 대체 불가능한 토큰) 기술을 게임에 접목해 안정성을 높이면서 새로운 트랜드가 되고 있다. NFT 게임은 게임을 통해 실제로 쓰임새가 있는 NFT를 얻을 수 있고, NFT를 암호화폐로 바꿔 현금화도 가능하다. 게임사가 서비스를 중단하더라도 게임 내 자산 소유권이 게이머에게 남는다는 점도 매력이다. NFT 분석업체 논펀저블(nonfungible) 집계에 따르면 NFT 게임의 암호화폐 거래량은 지난해 500만 달러 수준에서 올해 10월에는 5억6000만 달러로 100배 이상 늘었다. 차명훈 코인원 대표는 “NFT가 소유권을 증명하는지 저작권을 증명하는지 불분명한 부분이 있어 다른 분야에서 적용하기는 쉽지 않겠지만, 게임에서는 NFT를 통해 게임 아이템의 소유권을 명확하게 증명할 수 있다”고 말했다.

NFT 게임의 대표 주자는 ‘필리핀 서민들의 생업’으로까지 불리는 엑시인피니티다. 게임 내 캐릭터인 엑시를 획득해 팔거나, 대결을 통해 보상으로 NFT를 얻으면 이를 동명의 암호화폐인 ‘엑시인피니티’로 전환할 수 있다. 덕분에 코로나19로 생계가 어려워진 필리핀 서민들이 대거 게임을 시작하면서 이용자가 급증했고, 최근 한 달간 엑시인피니티 코인 거래량은 33억8000만 달러(약 4조원)에 이른다. 반면 국내 게임사들은 해외에만 NFT 게임을 서비스하거나, 국내에서는 NFT 거래 기능을 빼고 서비스를 하고 있다. 국내 IT공룡 카카오의 블록체인 플랫폼 ‘클레이튼’을 도입한 ‘파이브스타즈 포 클레이튼’이 대표적이다. 이 게임은 게임 상에서 블록체인 경제 시스템이 포함된 탓에 게임물관리위원회로부터 등급분류를 받지 못했다. 게임 개발사 스카이피플은 현재 행정 소송을 진행 중이다.

게임 캐릭터 판매, 필리핀 서민들 생업

물론 해외 시장만 공략해 성공한 사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위메이드가 서비스 중인 모바일 MMORPG(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 ‘미르4’는 블록체인 기반의 가상화폐 ‘드레이코’를 게임 내 유틸리티 코인으로 사용하면서 NFT를 접목시켰다. 글로벌판 기준 미르4의 동시접속자 수는 지난 27일 100만 명을 돌파했다. 위메이드의 주가 역시 8월 초 2만4000원 선에서 지난 29일 18만2800원까지 수직 상승했다. 장현국 위메이드 대표는 최근 임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진 기회의 창이 얼마나 오래 동안 열려 있을지 알 수 없다”며 “전사적으로 블록체인 게임과 플랫폼에 집중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게임업계와 전문가들은 전세계 게임 산업의 트렌드가 바뀌고 있는 만큼 뒤처지지 않으려면 게임의 사행성 판단 문제를 명확히 해야 할 때라고 지적한다. 윤주호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게임 아이템을 NFT로 바꿔 거래하면 현금화가 가능하니 일괄적으로 사행성이 있다고 보는 것은 논란이 많은 이슈”라며 “지금은 상황별로 판단하고 있는데 이를 보다 명확히 할 필요성이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위 교수는 “그동안 메타버스 생태계를 구현하겠다며 수많은 플랫폼이 나왔지만 로블록스 사례에서 볼 수 있듯 게임을 통해 이용자들이 집단적으로 놀 수 있는 요소가 만들어졌을 때 재미와 가치를 인정받았다”며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게임 아이템 거래와 경제 시스템 접목은 결국 양성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NFT 게임 미르4 ‘흑철’ 월 40만원 수익…자체 개발 암호화폐로 거래
엑시인피니티의 캐릭터 엑시. 최소 20만원 이상에 거래된다. [사진 엑시인피니티]

엑시인피니티의 캐릭터 엑시. 최소 20만원 이상에 거래된다. [사진 엑시인피니티]

해외 게이머들은 이른바 ‘NFT(대체불가능한 토큰) 게임’인 엑시인피니티로 월 100만원, 미르4로 월 40만원 정도를 벌 수 있다고 한다. 이들 게임은 NFT에 기반하는데, NFT는 ‘토큰을 다른 토큰으로 대체할 수 없는 암호화폐’를 말한다.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해 소유권과 판매 이력 등의 관련 정보가 모두 저장되고, 이에 따라 최초 발행자를 언제든 확인할 수 있어 위조 등이 불가능하다.

자산 소유권을 명확히 함으로써 게임·예술품·부동산 등의 기존 자산을 디지털화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하지만 이 암호화폐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비트코인과 같은 암호화폐와는 다르다. 비트코인 1개당 가격은 모든 비트코인이 동일하므로 사고 파는 게 가능하지만, NFT는 각각의 코인(토큰)마다 고유한 값을 갖기 때문에 거래 친화적이라 할 수 없다.

NFT 게임은 이를 게임 내 케릭터와 같은 아이템에 적용해 소유자의 권리를 명확히 한 것이다. 아이템 자체가 거래가 어려운 암호화폐인데, 게이머들은 어떻게 이를 현금화(거래)하는 걸까. 엑시인피니티·미르4와 같은 게임사가 비트코인과 같은 별도의 암호화폐를 개발해 암호화폐 거래소에 상장한 덕분이다.

예컨대 엑시인피니티는 동명인 엑시인피니티(AXS)라는 암호화폐를 개발해 거래소에 상장했다. AXS는 게임 내 아이템을 사고팔 수 있는 수단인데, 현금화는 게이머가 아이템을 AXS로 거래한 뒤 AXS를 거래소에서 다시 일반인에게 되파는 식으로 진행된다. AXS는 비트코인처럼 수시로 가격이 오르락 내리락하기 때문에 운이 좋으면 더 많은 이익을 낼 수 있다.

미르4의 경우 역시 자체 개발 암호화폐인 ‘위믹스’가 있고, 이를 통해 NFT의 현금화가 가능하다. 반대로 게임 내 아이템을 사고 싶은 게이머는 거래소에서 현금을 주고 AXS나 위믹스를 산 뒤, 이를 주고 게임 내 NFT 아이템으로 바꾸는 것이다. AXS·위믹스는 한국의 빗썸 등 국내외 암호화폐 거래소 여러 곳에 상장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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