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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층 해운대 엘시티 앞바다서 물질…그 해녀들 월수입 반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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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지난 19일 부산 해운대 엘시티와 용호동 W아파트 사이에 위치한 남천항. 제법 날씨가 쌀쌀해진 날씨에도 부산에서 가장 높은 빌딩을 뒤로한 채 해녀가 물질을 하고 있었다. 어머니에 이어 2대째 해녀를 하고 있는 김경숙(72)씨였다. 김씨는 “몸은 피곤하지만 바다에 가면 피곤한 지 몰라. 속이 다 시원하지”라고 말했다.

부산 남천어촌계 해녀 강순희 씨(81)가 남천항에서 물질을 하고 있다. 사진 동의대 한일해녀연구소

부산 남천어촌계 해녀 강순희 씨(81)가 남천항에서 물질을 하고 있다. 사진 동의대 한일해녀연구소

김씨는 1969년 결혼을 하면서 제주에서 부산으로 와 아들 셋을 낳은 뒤 30년간 활어센터를 운영했다. 그러다 60세가 되면서 이것저것 신경 쓸 일이 많은 활어센터보다 물질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스무 살 때 물질을 그만둔 김씨가 10년 전부터 다시 물질을 하게 된 이유다. 그는 “옛날에는 해녀를 천하게 봤는데 요즘에는 그리 안 보더라”며 “아이 낳고 장사하느라 40년 동안 물질을 안 했는데도 열세살때부터 배웠던 거라 바로 할 수 있더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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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는 “해녀들은 비가 오지 않으면 매일 하루 3~4시간씩 물질을 한다”고 했다. 부산시에 따르면 현재 부산에는 700여 명의 해녀가 31개 어촌계에 소속돼 물질을 하고 있다.

50억 넘는 엘시티 앞바다서 물질하는 해녀

부산 남천어촌계 해녀 김경숙 씨(72)가 수확한 해산물을 분류하고 있다. 사진 동의대 한일해녀연구소

부산 남천어촌계 해녀 김경숙 씨(72)가 수확한 해산물을 분류하고 있다. 사진 동의대 한일해녀연구소

부산에서도 수영구 남천항에서 활동하는 해녀는 단연 외지인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는다. 고층빌딩이 즐비한 도심을 낀 해안에서 물질을 한다는 희귀성 만큼이나 보존가치가 뛰어나서다. 남천항 좌우에 있는 101층 엘시티와 69층 W아파트는 부산에서 손꼽히는 고가 아파트라는 점도 눈길을 끈다.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엘시티는 전용면적 186㎡ 크기의 아파트 매매가가 40억~50억원으로 평당 1억원에 육박한다. W아파트의 매매가(전용면적 99㎡)는 18억원으로 평당 6000만원에 이른다. 부산지역 아파트 평균가와 비교하면 3배~5배가량 높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남천항 바로 뒤편에 있는 ‘삼익 비치아파트’도 서울 ‘은마아파트’처럼 재건축을 앞두고 가격이 급등해 평당 5000만원을 넘어섰다.

삼익아파트가 개발되기 시작한 1976년부터 여러 차례 매립을 거치면서 남천어촌계 소속 해녀는 급속도로 줄었다. 1970년대 200여명이던 해녀는 올해 5명으로 줄어든 상태다. 해녀들은 “하루 3~4시간씩 억척스럽게 물질을 해도 한 달 수입은 300만원 남짓”이라며 “생계를 유지하는 것에 만족하며 산다”고 했다.

유형숙 교수, 2016년 ‘한일해녀연구소’ 설립

동의대 한일해녀연구소 유형숙 소장이 해녀의 삶을 기록한 '어제오늘내일' 책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동의대

동의대 한일해녀연구소 유형숙 소장이 해녀의 삶을 기록한 '어제오늘내일' 책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동의대

부산의 해녀 문화를 지키려는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유형숙 동의대 호텔경영학 교수가 지난해 7월부터 해녀 5명의 이야기를 녹취하고, 기록하는 작업에 나선 게 대표적이다. 유 교수는 “남천항이 도시화하면서 해녀 활동의 어려움이 많다”며 “도심에 존재하는 남천 해녀의 가치가 크다고 보고 책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지난 1월 발간된 책 제목은 부산 해녀의 어제와 오늘이 내일의 문화유산이 된다는 의미를 담아『어제오늘내일』로 정했다.

유 교수는 해녀 연구를 위해 2016년 3월 국내 최초로 ‘동의대 한일해녀연구소’를 설립하기도 했다. 유 교수는 인터뷰를 한 5명의 해녀 중 강인공(81)씨가 유독 기억이 남는다고 했다. 여든을 넘긴 나이에도 물질을 하는 강씨는 제주도에서 남천항으로 이사와 제주도 해녀 문화를 많이 알고 있어서다.

강씨는 ‘상군’ 해녀였던 어머니를 따라 15세부터 물질을 했다. 25세에 결혼 후 4년 만에 사별했으나 해녀를 하며 아들을 억척같이 키웠다. 60년째 물질을 하는 강씨는 “옛날에는 잠수복은커녕 맨발에 맨손으로 전복을 땄기 때문에 손에 상처가 없는 날이 없었다”며 “허리에 두번 금이 가고, 다리에 관절염이 와서 걸음을 잘 못 걷는 데도 집에 있으면 답답해서 물질하러 나온다”고 말했다.

해녀, 한국·일본만 존재…2016년 유네스코 등재

부산 남천어촌계 해녀 노봉금 씨(74)가 해산물 수확 후 기쁨의 손짓을 하고 있다. 노씨 모습 뒤로 66층고층아파트인 '용호동 W아파트'가 보인다. 사진 동의대 한일해녀연구소

부산 남천어촌계 해녀 노봉금 씨(74)가 해산물 수확 후 기쁨의 손짓을 하고 있다. 노씨 모습 뒤로 66층고층아파트인 '용호동 W아파트'가 보인다. 사진 동의대 한일해녀연구소

한국 해녀와 일본 해녀와의 차이도 크다고 유 교수는 말한다. 그는 “일본 해녀는 하루 1~2시간만 작업하지만 한국 해녀는 하루 3~4시간씩 물질을 한다”며 “억척스럽게 일하지만 수확량이 줄고 판로 확보 등의 문제로 수입은 월 300만원 수준”이라고 말했다.

해녀는 한국과 일본에만 존재한다. 제주 해녀는 2016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유 교수는 그해 동의대 한일 해녀연구소를 설립하고 본격적인 연구에 나섰다. 그는 제주뿐 아니라 부산에도 해녀가 남아있다는 사실을 널리 알리는 게 목표다.

유 교수가 2014년 일본에서 열린 ‘해녀써밋’에 참가했을 때 일본 사람들은 한국 해녀가 제주에만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고 한다. 유 교수는 이듬해 열린 해녀써밋에 부산 기장 해녀 5명과 함께 참석했다. 그 결과 2016년 해녀써밋 포스터에는 한국 해녀에 제주와 함께 부산이 함께 기재되는 성과를 얻었다.

해녀 10명 중 7명 70세 이상 고령

부산 남천어촌계 해녀들이 서로 도와가며 해녀복을 입고 있다. 사진 동의대 한일해녀연구소

부산 남천어촌계 해녀들이 서로 도와가며 해녀복을 입고 있다. 사진 동의대 한일해녀연구소

부산 해녀 10명 중 7명은 70세 이상 고령자다. 후계자를 양성해야 해녀 문화 계승이 가능한 상황이다. 유 교수는 “지난해 해녀 체험단 1기생을 모집해 20명이 참가했고, 그중 1명이 해녀로 등록했다”며 “해녀 체험단을 활성화하고, 일본과의 교류도 활발히 해 나가면서 후계자 양성 체계를 만드는데 기여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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