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中 "수양제가 고구려 이겨"…을지문덕 장군 지하서 운다

중앙일보

입력 2021.10.2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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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중국 국정 교과서의 역사 왜곡 사례가 최근 3년간 꾸준히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의 중·고등학생 대부분이 배우는 교과서에 버젓이 "경복궁은 중국 황궁의 복제판"이라거나 조선과 발해가 "중국의 속국"이라는 잘못된 설명이 담겼는데 정부는 대응을 자제하는 분위기다.

경복궁ㆍ훈민정음, 대놓고 왜곡

21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지성호 의원실이 동북아역사재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중국 국정교과서에 나타난 한국사 왜곡 사례는 2018년 5건 → 2019년 6건 → 지난해 12건으로 늘었다. 재단은 중국과 일본의 역사 왜곡에 대응하기 위해 2006년 설립된 교육부 산하 공공기관이다.

지난해 중국의 국정 교과서 '문화 교류와 전파'는 "경복궁의 구조와 양식은 중국 황궁의 복제판"이라며 "경복궁의 편액(扁額ㆍ현판)을 한자로 써서 중국 문화의 영향을 재현했다"고 서술했다. 해당 교과서는 훈민정음을 언문(諺文ㆍ한글을 속되게 부르는 말)으로 표기하기도 했다.

같은 해 또 다른 국정 교과서인 '국가제도와 사회치리'는 발해를 "당조(唐朝)의 지방 정권"으로 기술했다.

이에 더해 국정 교과서 '중외역사강요'(中外歷史綱要) 하(下)권은 "일본의 야철(冶鐵ㆍ제철)과 벼농사 기술이 중국 이민자로부터 전래했다"고 기술했다. 동북아역사재단 측은 "일본의 야철과 벼농사 기술은 한반도에서 전래됐다는 게 한ㆍ일 학계의 정설"이라고 밝혔다.

중국 국정교과서 역사 왜곡 사례.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중국 국정교과서 역사 왜곡 사례.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살수대첩 왜곡..6ㆍ25 책임 美ㆍ유엔에 돌리기도

지난 2019년 발간된 '중외역사강요' 상(上)권에는 춘추전국 시대 중국의 장성을 한반도 서북부까지 연결하거나, 고대 중국 왕조 영역을 한반도 북부까지 포함하도록 지도에 잘못 표기했다.
또 "수 양제(수나라 황제)가 고구려를 정벌했다"고 기술했다. 고구려의 명장 을지문덕이 612년 수 양제의 대군을 물리친 살수대첩은 한국사의 3대 대첩으로도 잘 알려져 있는데, 이를 정벌로 표현해 완전히 왜곡한 것이다.

이밖에도 발해를 건국한 대조영을 "말갈 부족의 수령"이라고 일컫고 조선을 "중국의 속국"이라고 칭하기도 했다.

지난 2019년 발간된 '중외역사강요' 상(上)권에 담긴 내용 일부. 발해를 건국한 대조영을 "말갈 부족의 수령"으로 묘사했다. 동북아역사재단 제공.

지난 2019년 발간된 '중외역사강요' 상(上)권에 담긴 내용 일부. 발해를 건국한 대조영을 "말갈 부족의 수령"으로 묘사했다. 동북아역사재단 제공.

또 6ㆍ25 전쟁 발발 책임이 마치 미군과 유엔군에 있는 것처럼 서술한 내용도 있었다고 동북아역사재단은 설명했다. 그러면서 북한이 남침했다는 언급 자체도 없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동북아역사재단 측은 "전쟁 발발 상황을 사실대로 설명하지 않아 (6ㆍ25 전쟁 발발 원인을) 연합군의 북침으로 오인할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2018년 발간된 '중국역사'에도 발해에 대해 "말갈이 7세기 말에 세운 정권"이라거나 "당나라에 신하로 속하는 지방 봉건 정권"이라고 설명한 부분이 발견됐다. 지도 상 고대 중국 왕조 영역을 한반도 북부까지로 표시한 경우도 포착됐다.

중국 국정 교과서에 나타난 한국사 왜곡 사례 조사를 담당하는 권은주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은 21일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중국이 자국 중심의 유리한 역사의 한 쪽 면만 기술하고, 상대편의 입장이나 역사 전체를 객관적으로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내용은 누락할 경우 이를 배우는 학생들은 왜곡된 역사 인식을 갖게 될 우려가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2019년 발간된 '중외역사강요' 상(上)권에 담긴 내용 일부. 지도 상 중국 장성을 한반도 서북부까지로 잘못 표시하고, 서한ㆍ조위가 한반도 서북부까지 차지하고 있는 것처럼 왜곡했다. 동북아역사재단 제공.

지난 2019년 발간된 '중외역사강요' 상(上)권에 담긴 내용 일부. 지도 상 중국 장성을 한반도 서북부까지로 잘못 표시하고, 서한ㆍ조위가 한반도 서북부까지 차지하고 있는 것처럼 왜곡했다. 동북아역사재단 제공.

中에 공개 대응 안 하는 정부

하지만 정부 차원에서 눈에 띄는 대응은 보이지 않는다.

지난 2018년 이후 중국 국정 교과서의 역사 왜곡과 관련해 정부가 주한 중국대사관 관계자를 불러 공개적으로 항의하거나 공식 성명이나 논평을 낸 적은 한 번도 없다.

이에 지성호 의원실이 21일 외교부에 중국의 교과서 역사 왜곡에 대한 대응 사례를 문의했다. 그러자 외교부는 17년 전인 2004년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관련 한ㆍ중 외교차관 간 구두 협의를 언급하며 "동북아역사재단과 긴밀한 협업 하에 중국 교과서의 역사 왜곡 사례 발견 시 고위급 및 실무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중국 측에 시정을 지속 요구해오고 있다"고 답했다. 최근의 대응 사례는 외교부 답변에 없었다.

이와 관련, 강준영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는 "동북아역사재단이나 학계에서 아무리 중국의 역사 왜곡 사례를 수집하고 이를 분석해도 외교 당국 차원에서 엄중한 항의는 고사하고 오히려 방관하는 태도를 보인다면 역사 왜곡에 대한 중국 중앙 정부의 무책임한 태도를 용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日 역사 왜곡 대응과 온도 차

한편 일본의 역사 왜곡에 대한 정부 대응과 비교하면 중국을 향한 대응이 훨씬 소극적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 의원실이 외교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8년부터 올해까지 일본 내 교과서의 역사 왜곡을 이유로 정부가 주한 일본 대사관 관계자를 초치한 횟수는 6건, 논평 발표는 2건, 성명 발표는 2건이었다. 같은 기간 중국에 대한 교과서 왜곡 관련 공식 대응은 없었다.

이와 관련, 지 의원은 "외교부가 중국 눈치 보기에만 급급해 우리 역사가 중국에 강제로 침탈당하는 시대적 과오를 후세에 남겨서는 안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민의힘 지성호 의원. 국회사진기자단. 연합뉴스.

국민의힘 지성호 의원. 국회사진기자단.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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