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표정(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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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우리 선수들은 이번 북경아시안게임에서 그전에 없던 새로운 모습들을 보여주었다. 1백70여개의 메달 얘기가 아니다. 물론 메달들은 어느 하나를 놓고 보아도 장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러나 정작 우리가 흐뭇했던 일은 그 메달을 받을 때의 우리 선수들 표정이었다. 그전처럼 울고 불고 흐느끼며 눈물을 흘리는 선수들이 없었다. 시상대 위에서 남보기도 민망하게 몸을 비틀고 얼굴을 찡그리며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는 선수들도 없었다. 감격스럽지 않고,힘겹지 않아서 그런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감격하기로 치면 30억 아시아인들 가운데서 금메달을 받고,은과 동메달을 받았는데 얼마나 자랑스럽고 기특한 일인가. 감격하고도 남을 일이다. 또 그날이 있기까지 얼마나 많은 땀과 눈물을 흘렸으며,밤낮으로 얼마나 고독한 수련을 거듭했겠는가. 눈물을 흘리고도 남을 일이다.
하지만 이들은 늠름한 모습으로 목에 메달을 걸고,옆에 있는 메달리스트에게 악수와 포옹을 청하는 여유를 잊지 않았다. 그점에선 항상 얼굴이 돌처럼 굳어 있고,괜히 화난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는 북한 선수들의 경직된 모습과는 너무도 대조적이었다.
그만큼 우리 젊은이들도 이젠 세계시장으로 세련되어 가고 있는 것 같다. 선수들의 메달은 단순히 누구와 싸워 이겼다는 감격 말고도 그 주인공의 어른스러움에 우리 마음은 한층 더 든든했다.
이번엔 단체경기에서도 꽤 많은 메달을 받았다. 한국사람은 단체전에 약하다는 콤플렉스가 터무니없는 허구임을 보여주었다. 스포츠 세계에서 선수들의 승부는 기량에 달린 문제이지 국민성을 탓할 일은 아니다.
특히 레슬링이며,권투,유도 등 투기 종목에서 우리 선수들은 두각을 나타냈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그 메달을 받기까지 수만,수십만번의 연습과 실패와 좌절을 겪었을 것이다.
그것은 누구나 하는 말로 헝그리정신으로 치부할 일이 아니다. 요즘처럼 안일과 편리와 잔꾀와 요령만 찾는 세태에 우리 사회의 어느 일각엔 수굿하고 고통스러운 일을 해내는 의지의 젊은이들도 있다는 사실에 우리는 새삼 감동한다. 스포츠는 바로 그런 건강한 인간정신의 극치를 보여주는 면에서 언제나 우리에게 용기와 희망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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