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장혜수의 카운터어택

1984년 가을, 두 투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8면

장혜수 기자 중앙일보 콘텐트제작에디터
장혜수 콘텐트제작에디터

장혜수 콘텐트제작에디터

지난달 14일은 대장암으로 2011년 세상을 떠난 투수 고 최동원의 10주기였다. 별명 ‘무쇠팔’은 훈장이자 멍에였다. 오른쪽 어깨 하나로 팀을 떠받쳤다. 역설적으로 그랬기에 대기록을 쓴지도 모른다. 1984년 프로야구 한국시리즈에서 혼자 4승(1패)을 거두며 롯데 자이언츠를 우승으로 이끌었다. 1987년 5월 16일에는 해태 타이거즈 선동열(58)을 상대로 15이닝 무승부(2-2) 완투를 펼쳤다. 민주화 요구가 거셌던 1988년, 그는 프로야구선수협의회(현 프로야구선수협회) 결성을 추진했다. 구단들 방해로 실패하고 트레이드 당해 고향을 떠났다. 2009년 7월 4일 롯데 유니폼을 입고 시구자로 부산 사직구장에 서기까지, 20년간 타향을 떠돌았다. 끝내 고향 팀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롯데와 삼성 라이온즈의 1984년 한국시리즈 이야기를 담아낸 다큐멘터리 영화 ‘1984, 최동원’이 다음 달 개봉한다. 1984년 한국시리즈에서는 전·후기리그 우승팀끼리 맞붙었다. 전기리그 우승팀 삼성은 후기리그 막판 져주기까지 하며 상대적으로 쉬운 롯데를 한국시리즈 상대로 골랐다. 롯데가 내세울 건 최동원뿐이었다. 강병철 당시 롯데 감독은 1·3·5·7차전 선발로 최동원을 예고했다. “동원아, 우짜노 여까지 왔는데.”(강병철) “알겠심더, 마 함 해보입시더.”(최동원) 그 유명한 두 사람 대화다. 최동원 성적은 이랬다. ▶1차전 완봉승 ▶3차전 2실점 완투승 ▶5차전 3실점 완투패 ▶6차전 5이닝 무실점 승(5회 구원등판) ▶7차전 4실점 완투승. 그렇게 4승 1패다.

다음 달 개봉하는 다큐영화 ‘1984, 최동원’ 포스터. [사진 프로야구 롯데]

다음 달 개봉하는 다큐영화 ‘1984, 최동원’ 포스터. [사진 프로야구 롯데]

롯데 최동원의 4승에 가렸지만, 그해 한국시리즈 삼성 마운드에도 그 못지않은 투수가 있었다. 삼성의 재일동포 투수 김일융(70)이다. 그의 성적은 이랬다. ▶2차전 1실점 완투승 ▶4차전 8이닝 무실점 승 ▶5차전 3이닝 무실점 승(7회 구원등판) ▶7차전 7과 3분의 1이닝 6실점 패. 그렇게 3승 1패다. 6차전까지는 최동원과 나란히 3승씩이었다.

최종 7차전 결과에 따라 누구든 4승 투수가 될 수 있었다. 지친 최동원도 김일융도 7차전 구위는 좋지 않았다. 운명은 한순간 갈렸다. 김일융은 8회 롯데 유두열(2016년 작고)에게 3점 홈런을 맞고 패전투수가 됐다. 직전까지 한국시리즈 20타수 2안타, 1할 타자 유두열의 한 방에. 그렇게 김일융에는 ‘비운’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1984년 9월 30일 1차전으로 시작해 10월 9일 7차전으로 끝난 한국시리즈가 명승부로 기억되는 건 모든 걸 쏟아낸 최동원과 김일융이라는 두 투수 덕분이다. (누군가는 혹사당한 거라고 한다. 하지만 그다음 시즌인 1985년 최동원은 20승, 김일융은 25승을 기록했다.)

어디 스포츠만 그렇겠는가. 승패를 겨루는 모든 경쟁이 다 그러하다. 선거도 다르지 않다. 내년 3월 9일까지, 144일 남았다. 명승부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