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국회, 호주제 폐지 적극 임해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호주제 폐지를 골자로 한 민법 개정안이 28일 국무회의를 통과함으로써 이제 국회 의결만을 남겨두고 있다. 지난 5월 7개 부처와 11개 시민단체 등으로'호주제 폐지 특별기획단'을 발족한 이래 반년 만에 일궈낸 성과다. 대통령선거 때마다 공약의 단골 메뉴였으나 막상 총선 때는 득표를 저울질하다가 슬며시 자취를 감추곤 했던 것이 호주제 폐지의 지난 역사였다. 이제 국회도 달라져야 한다. 사회 변화에 걸맞은 입법을 함으로써 법과 관습의 괴리를 막는 것이 법치를 위해서도 바람직한 일이다.

호주제는 우리 사회의 성차별 문화를 불가피하게 만드는 과거지향의 유산으로 국내외의 비판을 받아왔다. 지난 40년간 호주제 폐지운동을 펼쳐온 여성계는 말할 것도 없고, 지난 3월 국가인권위원회도 호주제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침해해 헌법에 위배되는 것으로 판단했다. 1999년 유엔 인권위원회의 지적을 필두로 국제사회에서도 호주제가 가부장제를 강화하고 있다는 우려를 거듭 표시해 왔다.

그러나 가(家)를 중시하는 전통문화의 약화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이런 가운데 2001년 이후 헌법재판소에 제청된 호주제 관련 위헌법률 심판 제청건만도 9건이나 쌓일 정도로 현실에서 고통을 받는 이들은 늘고 있다. 출산율 1.17, 이혼율 세계 2위인 한국 사회에서 할머니가 어린 손자의 보호 아래 놓여 가족의 질서를 흐트러뜨리고, 딸만 있어 폐가를 감수해야 하며, 재혼 가정의 자녀들이 성이 달라 사회적 냉대를 받는 것을 마냥 두고 볼 수는 없다.

우리는 개정안이 자녀가 아버지의 성과 본을 따르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예외를 인정할 수 있는 여지를 열어두고, 가족 범위를 새롭게 규정한 것은 호주제 폐지가 가족의 해체로 이어질지 모른다는 우려를 보완키 위한 현실적 대안으로 이해하고자 한다.

이제 공은 국회로 넘어갔다. 법안을 이리저리 굴리다가 폐기하는 일이 없어야 겠다. 국회 차원의 공청회 등을 거쳐 빨리 처리하는 것이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