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증시 대폭락설, 진원지는 치솟는 에너지·원자재 값

중앙선데이

입력 2021.10.09 00:02

업데이트 2021.10.09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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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7호 02면

세계 경제 ‘스태그플레이션 공포’

국제 유가 급등에 전국 주유소 휘발유 가격도 오름세가 이어지고 있다. 8일 기준 전국 휘발유 평균 판매 가격은 1ℓ당 1667.13원이다. 서울의 한 주유소에 표시된 유가 정보. [연합뉴스]

국제 유가 급등에 전국 주유소 휘발유 가격도 오름세가 이어지고 있다. 8일 기준 전국 휘발유 평균 판매 가격은 1ℓ당 1667.13원이다. 서울의 한 주유소에 표시된 유가 정보. [연합뉴스]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이 당초 전망치인 6%에 못 미칠 것이다.” 국제통화기금(IMF)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총재가 최근 한 말이다. 그는 코로나19 델타 변이 바이러스의 확산과 함께 글로벌 공급망 문제, 그리고 인플레이션(물가상승)을 핵심 이유로 짚었다. 특히 글로벌 공급망의 병목현상 등은 언제까지 이어질지 예측조차 불가한 상황이다. 그러다 보니 글로벌 증시도 휘청거리고 있다. 워낙 분위기가 나빠 일각에선 10월 대폭락설까지 나온다. 최근 출렁이고 있는 국내 증시도 예상보다 큰 폭으로 하락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세계 증시의 이런 위기설의 진원지는 다름 아닌 ‘원유·원자재 값 폭등’이다. 짚어보면 글로벌 공급망 문제도, 인플레이션도 모두 여기서 비롯되고 있다. 국제 유가와 원자재 값은 이미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미국 뉴욕상업거래소에 따르면 11월물 서부텍사스유(WTI) 가격은 이달 현재 2014년 11월 이후 7년 만에 최고 수준이다. 국제 천연가스 가격도 현재 3개월 전의 거의 2배다. 2008년 10월 이후 13년 만에 최고 수준이다.

석탄과 철광석, 곡물 등도 줄줄이 가격이 뛴 상태다. 모두 공급이 수요를 못 따라가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7일 ‘10월 경제동향’ 보고에서 “원자재 수급 불안으로 국내 제조업이 위축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원자재 값 상승은 제조기업의 생산 비용 증가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는 가계의 소비 부담 증가와 소비 여력 감소로도 직결된다. 뉴욕타임스(NYT)도 최근 기사에서 전 세계 주요국의 에너지 가격 급등이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경기 회복세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고 보도했다.

탈탄소 환경 규제도 원자재 생산 제동

◆가격 왜 이리 올랐나=1차 원인은 코로나19 백신 보급과 접종 확산에 따른 가파른 경기 회복세다. 그러면서 수요가 급증했는데, 공급은 제자리다. 원유의 경우 지난달 미국의 원유 생산 시설이 밀집한 멕시코만이 허리케인의 직격탄을 맞았다. 그럼에도 주요 산유국이 공급을 늘리는 데 소극적이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등 기타 산유국 협의체인 OPEC+는 최근 코로나19 재확산 우려 등을 이유로 다음 달에도 증산 속도를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원자재 공급 위축은 전세계의 친환경 에너지 전환이 유발한 측면도 있다. 탄소중립(탄소 배출 제로)을 목표로 각국 정부가 탈(脫)탄소 정책을 추진하면서 친환경 산업의 원자재 수요는 팬데믹 이전보다 급증했다. 하지만 각종 환경 규제 때문에 역설적으로 생산엔 제동이 걸렸다. 예컨대 전기차에 들어가는 비철금속 중 알루미늄은 중국이 최대 생산국인데, 중국 정부가 올해 탄소 저감 등을 이유로 알루미늄 제련소 가동을 중단하면서 가격 급등(13년래 최고치)을 부추겼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인플레이션 우려 확산=경제는 아직 덜 회복됐는데 물가만 오르는 ‘스태그플레이션’ 우려가 커진 배경이다. 제조업과 소비재가 원자재나 원유 값 상승의 직격탄을 맞고 있어서다. 예를 들어 자동차 강판 가격이 껑충 뛰자 현대차의 승용차 판매 가격도 상승세다. 상반기 현대차의 승용차 판매 가격은 평균 4399만원으로 지난해(4182만원)보다 5.1%, 2019년(3774만원)에 비해선 16.5% 각각 올랐다. 강판 값이 오른 건 원자재인 철광석 가격이 올 들어 지난해에 비해 2배로 급등한 때문이다.

해외도 마찬가지다. 미국의 8월 신차 소비자물가지수(CPI)는 158.6포인트로 해당 통계가 나오기 시작한 1947년 이후 사상 최고치였다. 유럽·일본 제조사들도 올 들어 차량 가격을 크게 올렸다. ‘제조업의 쌀’인 반도체 가격 인상도 이어지고 있다. 세계 1위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업체인 대만의 TSMC는 올 들어 차량용 반도체 가격을 20%가량 올렸다. 로이터는 반도체 가격 인상이 자동차뿐 아니라 휴대전화에서도 인플레이션을 유발하고 있다고 전했다.

석탄 공급 부족도 스태그플레이션 우려를 키우고 있다. 최근 ‘세계의 공장’ 중국과 인도는 석탄 공급난으로 극심한 전력난을 겪고 있다. 이에 철강과 섬유 등 다양한 업종에서 정상적인 조업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전해졌다. 인도 언론은 이달 초 보도에서 자국 내 화력발전소 135곳 중에 72곳의 석탄 재고가 사흘치도 안 남았다며 전력난 재현을 우려했다. 이들 나라에서 원자재 수급난에 공장 가동률이 떨어져 공급망의 병목현상이 길어질수록, 타격은 고스란히 전 세계 소비자들이 입게 된다.

NYT는 “원유와 원자재 값 급등으로 미국인들이 식품과 화학제품, 플라스틱제품 가격 상승은 물론 집안에서 난방비 상승이란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는 각국의 소비자물가상승률만 봐도 한눈에 알 수 있다. 지난달 유로존의 소비자물가상승률은 3.4%로 13년래 최고치였다. 신흥국인 터키는 무려 19.6%에 달했다.

◆장기화 확률 높아=각국 정부와 많은 전문가들은 어두운 전망을 내놓고 있다.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은 올 여름만 해도 미국의 인플레이션을 “일시적”이라고 했다가, 최근엔 “내년까지 인플레이션이 이어질 수 있다”며 입장을 바꿨다. 스티븐 로치 전 모건스탠리 아시아지역 회장은 외신 인터뷰에서 “공급망의 병목현상이 세계 각지로 확산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며 “이는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 시기를 연상시킨다”고 우려했다.

실제로 물가상승률 전망치는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낮아지고 있다. 지난달 Fed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직후 올해 물가상승률 전망치를 이전 전망치보다 0.8%포인트 오른 4.2%로 발표했다. 반면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이전 전망치보다 1.1%포인트 내린 5.9%로 내놨다. 원유나 원자재 값이 진정되지 않는 한, ‘인플레이션→소비 위축→경기 둔화’라는 전형적인 스태그플레이션의 굴레에서 벗어나긴 쉽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문제는 지금의 가격 ‘대란’이 장기화할 확률이 현재로서는 그렇지 않을 확률보다 훨씬 높아 보인다는 점이다. 피터 맥널리 서드브리지 원자재담당 대표는 “원유 재고가 당분간 계속 감소할 것”이라며 원유 가격 상승이 최소 연말까지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증산량은 부족한데, 연말로 갈수록 북반구의 겨울철 수요는 급증할 수밖에 없어서다. 이에 골드만삭스는 최근 WTI의 연말 전망치를 배럴당 87달러로 상향 조정했다.

파월 “내년까지 인플레이션 이어질 듯”

다른 원자재 가격도 마찬가지다. 이재선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연말까지 주요 원자재 가격 하락을 이끌 요인이 그리 눈에 띄지 않는다”고 말했다. 예컨대 친환경 에너지 전환에 한창인 유럽에선 현재 천연가스 재고량이 10년 만에 최저 수준이지만, 소비량이 증가하는 겨울철을 앞두고 있다. 이 연구원은 “세계 각국의 ‘위드 코로나’ 전환과 경제 활동 본격화가 원자재 수요 증가세를 더 부추길 가능성도 충분하다”고 덧붙였다.

설상가상으로 제조업에서 공급망 붕괴에 주요 물품을 실어 나르는 운송비까지 증가하면서 물가상승 압력을 키우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정부도 스태그플레이션에 대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일각에선 나오고 있지만, 정부는 일단 선을 그은 상태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6일 국회에서 “스태그플레이션까지 (상황이) 연결되진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통계청에 따르면 올 3분기 국내 물가상승률은 2.6%로 지난 2012년 1분기(3.0%) 이후 최고치였다. 정부의 올해 연간 물가상승률 목표치는 1.8%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상황 속에 당분간 국내외 증시도 살얼음판을 걸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미 Fed가 긴축적인 통화정책을 예고한 타이밍에 스태그플레이션 우려는 커진 상황이라 당분간 투자 심리 회복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부자 아빠…』 저자도 “글로벌 부동산·증시 폭락”
“10월에 글로벌 금융 시장의 역사적 폭락이 온다.” 베스트셀러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저자인 로버트 기요사키의 말이다. 그는 지난달 트위터를 통해 “부동산 시장과 증시가 함께 폭락할 것”이라며 이같이 주장했다. 이후 외신 인터뷰에선 “중국의 헝다 사태 등으로 거품이 터질 것”이라며 “위기에 대비해 금·은·비트코인에 투자하라”고 덧붙였다.

기요사키 외에도 몇몇 전문가들이 중국발 위기, 전 세계적 인플레이션, 그리고 최근 미국 정부의 셧다운(잠정폐쇄) 우려를 근거로 10월 대폭락설을 제기한 바 있다. 하지만 시장은 이달 들어 이들의 주장만큼 강한 충격은 아직까지 받고 있지 않은 분위기다. 우선 미국 정치권이 미국의 부채 한도를 오는 12월 초까지 상향 조정하는 데 합의, 이때까지 부채를 감당하면서 협상 시간을 벌게 된 게 단기 호재다.

헝다도 자회사 지분 일부 매각 등으로 디폴트(채무불이행) 위기에서 급한 불을 껐다. 다만 헝다의 부채는 여전히 막대한 규모이며, 미국의 셧다운 위기도 불씨는 남았다는 점에서 낙관만 하기보다는 신중히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의 테이퍼링(자산 매입 축소)이 임박한 데 따른 시장의 불안감이 여전하다는 점, 통상 10월은 증시 변동성과 불확실성이 큰 달이었다는 점도 투자자들이 고려해야 할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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