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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니지, 아랍국 최초 여성 총리 임명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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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아랍 첫 여성 총리가 된 나즐라 부덴 롬단 튀니지 총리. [로이터=연합뉴스]

아랍 첫 여성 총리가 된 나즐라 부덴 롬단 튀니지 총리. [로이터=연합뉴스]

아랍 국가에서 첫 여성 총리가 나왔다. 튀니지의 카이스 사이에드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나즐라 부덴 롬단(63) 총리를 임명했다고 미국 CNN 방송 등이 보도했다. 사이에드 대통령이 지난 7월 히셈 메시시 총리를 해임하고 의회 기능을 정지시킨 지 두 달 만이다. 아프리카 북부 지중해 연안에 있는 튀니지는 1958년 아랍연맹에 가입한 나라다.

사이에드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대통령실에서 롬단 총리와 면담한 뒤 “(여성 총리 배출은) 튀니지와 튀니지 여성들에게 역사적인 일”이라며 “새 정부는 부패에 맞서 보건과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 국민의 요구에 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이미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 며칠 안에 새로운 내각을 제안해 달라”고 당부했다.

튀니지는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를 절충한 이원집정부제를 채택하고 있다. 대통령은 외교·국방 관련 권한을 갖고 총리는 그 밖의 행정을 총괄한다. 롬단 총리는 지구과학을 전공한 뒤 튀니지 국립 공과대학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쳤다. 프랑스 파리국립고등광업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튀니지의 지진 위험도를 주로 연구했다. 2011년부터 튀니지 교육부에서 세계은행 관련 프로젝트와 고등교육 개혁 업무를 맡았다. 정치권에서 활동한 경험은 없다. 사이에드 대통령으로선 여성 총리로 분위기 전환의 카드를 꺼내 들었다는 평가가 튀니지 정치권에서 나온다.

지난달 18일 튀니지 사이에드 대통령 반대자들이 민주화를 요구하며 시위를 하는 모습. [EPA=연합뉴스]

지난달 18일 튀니지 사이에드 대통령 반대자들이 민주화를 요구하며 시위를 하는 모습. [EPA=연합뉴스]

롬단 총리가 풀어야 할 과제는 가득 쌓여 있다. 지난 7월 사이에드 대통령이 의회 기능을 정지한 이후 국제통화기금(IMF)과의 재정 지원 협상은 보류된 상태다. 새 정부는 당장 협상을 재개해야 하는 상황이다. 튀니지는 수년간 이어진 경기침체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까지 겹치면서 심각한 재정위기를 겪고 있다. 튀니지 내부에 만연한 부패 문제 해결과 민심의 통합, 코로나19 방역도 롬단 총리의 숙제다.

롬단 총리가 충분한 권한을 행사하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도 튀니지 정치권에서 나온다. 사이에드 대통령이 장관의 임명과 해임에 대한 총리의 권한을 축소하고 대통령의 권한을 강화했기 때문이다. 사이에드 대통령은 지난주 “비상 상황에서 대통령이 장관을 임명하거나 해임할 수 있다”는 대통령 행정 명령을 발표했다.

카이스 사이에드 대통령

카이스 사이에드 대통령

롬단 총리의 임명은 정당한 법 절차를 지키지 않은 것이어서 무효라는 주장도 야당에서 나온다. 이번 총리 임명은 의회의 동의를 얻지 않았다. 튀니지 의회에서 제1당인 엔나흐다는 성명을 내고 의회 업무 재개를 촉구했다. 엔나흐다 소속인 사미르 딜루 전 인권장관은 페이스북에서 “새 정부는 재정위기와 감염병 대유행 상황에서 심각한 도전을 받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헌법학자 출신인 사이에드 대통령은 TV 출연 등으로 인지도를 높였다. 2019년 대통령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했다. 직선적인 말투로 ‘로보캅’이란 별명을 얻고 청년층을 중심으로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경제침체가 장기화하면서 곳곳에서 반정부 시위가 발생했다. 지난 7월 사이에드 대통령이 메시시 총리를 해임하자 “대통령이 총리와의 권력 다툼에서 국민의 불만을 이용했다”는 주장도 튀니지 정치권에서 나왔다. 2011년 ‘아랍의 봄’으로 불린 민주화 운동의 발원지였던 튀니지가 다시 독재 국가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냐고 우려하는 시선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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