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에 사표 내고 영국행…축덕 소녀의 저지를수 있는 용기[별★터뷰]

중앙일보

입력 2021.09.25 10:00

업데이트 2021.09.25 11:26

퇴사 후 영국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난 양송희씨. 사진 이연수 작가 제공

퇴사 후 영국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난 양송희씨. 사진 이연수 작가 제공

“사실 엄청 고민했죠. 한국에선 서른을 적은 나이로 보지 않잖아요.”

서른을 앞둔 2018년 여름, 그녀는 정규직을 버렸다. 해외 워킹홀리데이를 떠나기로 결심했다. 낯설게 보는 시선, 무모한 선택이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어깨를 짓눌렀다. 하지만, 고민 끝에 영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지금 그녀는 과거 자신의 모습이 대견하다고 느껴진다고 했다.

‘저질러야 시작된다’는 평소 지론에 따른 선택이었다. 첫걸음을 뗀 무모한 용기가 많은 걸 바꿨다고 말하는 양송희(32)씨. 사는 데 축구가 전부는 아니라고 하지만, 때론 전부 같기도 하다는 ‘축덕 스토리’를 들어봤다.

13살 소녀, 축구와 사랑에 빠지다

양송희씨와의 별톡.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양송희씨와의 별톡.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한일월드컵의 거리 응원 열기는 13살 소녀를 월드컵 키즈로 만들었다. 시작은 축구 선수 ‘덕질’(좋아하는 분야에 심취해 관련된 것을 모으거나 파고드는 행위)이었다. 김남일 선수를 보기 위해 경기장을 찾았다. 선수를 따라다니다가 축구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국제대회가 열리면 밤을 지새웠고 축구 골든벨 대회에서 우승하기도 했다. 대학에서는 선후배 11명을 모아 대한축구협회의 여대생 축구대회에 도전했다. 경기 당일 제때 못 일어날까 봐 전날 유니폼에 축구 스타킹을 신고 자기도 했다. 쟁쟁한 축구부와 경쟁한 탓에 1승엔 실패했다. 하지만, 양씨는 “우리의 열정만큼은 축구 스타 리오넬 메시였다”고 자부했다.

덕업일치에도 더 큰 무대 꿈꿨다

양송희(가운데)씨는 2010년 전국의 아마추어 여대생들이 기량을 뽐내는 축구대회에 출전했다. 사진 양송희씨 제공

양송희(가운데)씨는 2010년 전국의 아마추어 여대생들이 기량을 뽐내는 축구대회에 출전했다. 사진 양송희씨 제공

2013년 5월, 덕질은 직업이 됐다. K리그 구단인 인천 유나이티드에서 입사해 관중석에서만 보던 선수들과 한솥밥을 먹게 됐다. 대부분이 남자 직원이라 힘겨웠지만, 열정 하나로 버텼다고 한다. 전기, 건축, 소방 설비, 잔디관리에 구슬땀을 흘렸고 경기 포스터를 잔뜩 진 채 시내를 누볐다. 경영기획팀에서 팀의 살림을 꾸리기도 했다. 양씨는 “하루는 누가 회사에서 이루고 싶은 꿈을 물었는데 나도 모르게 ‘팀이 좋은 성적을 거뒀으면 좋겠다’고 답했다”며 “어려운 팀 사정에 마음고생도 했지만, 그 시절 팀과 나는 하나였다”고 회고했다.

덕업일치(취미가 직업이 된 것)를 이뤘지만, 마음 한구석이 허전했다. 정체되고 있다는 불안감과 더 큰 무대에서 배우고 싶다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5년간 다닌 회사에 사표를 던지고 영국으로 떠났다. 여러 EPL 구단에 지원서를 넣었고 손흥민 선수가 뛰는 토트넘 홋스퍼에서 기회를 얻었다. 선수 유니폼과 기념품 등을 파는 리테일 스토어 근무였다. 고국의 정규직 대신 축구 종가 영국의 7개월 계약직을 얻었다. 양씨는 자신의 도전이 인정받은 것 같아 뛸 듯이 기뻤다고 한다.

7개월 계약직에도 뛸 듯이 기뻤다

시즌 중 토트넘 리테일 스토어에서는 손흥민 선수 유니폼이 많이 팔렸다고 했다. 이에 대비해 구단 측은 매장에 한국어로 적힌 알림 메시지를 적어놨다고 한다. 사진 양송희씨 제공

시즌 중 토트넘 리테일 스토어에서는 손흥민 선수 유니폼이 많이 팔렸다고 했다. 이에 대비해 구단 측은 매장에 한국어로 적힌 알림 메시지를 적어놨다고 한다. 사진 양송희씨 제공

상품을 정리하고 고객이 찾는 제품을 건네는 것, 단순해 보였지만 실상은 달랐다. 연일 밀려드는 손님에 초반엔 탈진 직전까지 갔다. 힘에 겨워 집에 돌아온 뒤 샤워하다가 주저앉는 날도 있었다.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경기가 없는 날엔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병행했다. 결막염과 두피염에 시달리면서도 그는 “내가 가야 길이 된다”는 문구를 되뇌며 마음을 다잡았다고 한다.

워킹홀리데이 기간 양송희씨의 방에는 '양송희가 가면 길이된다! 고 적힌 포스트잇이 붙어 있었다. 양송희씨는 힘들때마다 이 포스트잇 문구를 되뇌였다고 했다. 사진 양송희씨 제공

워킹홀리데이 기간 양송희씨의 방에는 '양송희가 가면 길이된다! 고 적힌 포스트잇이 붙어 있었다. 양송희씨는 힘들때마다 이 포스트잇 문구를 되뇌였다고 했다. 사진 양송희씨 제공

간절한 분투 덕분이었을까. 양씨는 추가 근무 제안을 받기도 했다. 손흥민이란 한국 선수가 있던 점도 유리하게 작용했다고 한다. 그만큼 현장 업무 기회가 늘었고, 팬을 위해 어떻게 일을 해야 하는지 많은 영감을 받을 수 있었다. 양씨는 “토트넘 구단은 ‘팬들에게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모든 걸 준비하는 곳이었다”며 “한국인 선수가 있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았고 더 바쁘게 일할 수 있어 보람찬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꿈을 저지를 용기 

양송희씨가 에세이를 준비하면서 적은 메모들. 사진 양송희씨 제공

양송희씨가 에세이를 준비하면서 적은 메모들. 사진 양송희씨 제공

런던 생활을 마무리하고 돌아온 양씨는 지난해부터 한국프로축구연맹 홍보팀에서 일하고 있다. 영국에 가기 전 두 번이나 고배를 마신 곳이다. 그는 “연맹에 들어가기 위해 ‘스펙’을 쌓은 건 아니었지만, 그간 밟아온 길이 재취업에 도움이 된 것 같다”고 했다.

최근엔 작가라는 부캐(부 캐릭터)가 생겼다. 지난달 에세이『저질러야 시작되니까』을 펴냈다. “축구 취준생 시절 정보가 부족해 고생했는데 남들은 그런 고민을 덜 하게 돕고 싶었다”고 했다. 독자의 메일에 꼬박꼬박 답장하고 조언을 건네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는 누구든 자신의 책을 보며 꿈을 ‘저지를 수 있는’ 용기를 갖길 소망한다고 했다.

당신은 어떤 별이라고 생각하나.
“북두칠성의 첫 번째 별 ‘탐랑’이다. 지난해 재미로 중국 별자리 점을 봤는데 탐랑이라고 하더라. 첫 번째 별은 다른 별이 따라올 수 있게 길을 비춘다. 평소 남들이 안 해본 걸 먼저 해보고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는 데 뿌듯함을 느꼈다. 그런 나랑 탐랑이 비슷한 것 같다. 내가 만든 빛이 뒤따를 이들의 길을 밝혀주었으면 좋겠다.”
책을 내고 달라진 게 있나.
“그동안 홍보팀에서 선수나 리그를 알리고 포장하는 일을 많이 했다. 남을 빛나게 하기 위해 노력하는 시간이었다. 이번에 책을 쓰면서 처음으로 내가 주인공이 돼 나를 알리고 있다. 온전히 나 자신의 이야기를 담는 시간을 보내면서 그동안 내가 좁은 세계에 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은 조금 더 넓은 세계로 나를 알리는 색다른 경험을 하고 있다.”
앞으로의 목표는.
“선수단 운영 일은 꼭 한번 해보고 싶다. 최선을 다하다 보면 언젠가 그 부서 일도 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웃음)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은 걸 후회했던 적이 있었냐는 질문을 받는데 단언컨대 한 번도 없었다. 정말 축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축구계는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지지 않나. 그 공간에 몸담는 유별난 ‘여자’가 아니라, 축구를 정말 사랑해서 열정을 불사르는 ‘사람’으로 나를 기억해줬으면 한다. 비슷한 길을 걷는 이들에게 좋은 선례로 남기 위해 뚜벅뚜벅 길을 걷는 ‘탐랑’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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