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주유소, 다른 회사 기름도 판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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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시중 대부분의 주유소가 SK㈜.GS칼텍스 등 정유사 간판을 내걸고 있지만 실제 판매하는 기름은 그 회사 제품만은 아니다. 정유사끼리 서로 석유제품을 교환하는 것이 오랜 관행인 데다 최근 경쟁이 심해지면서 주유소도 다른 정유사의 제품을 공공연히 들여다 팔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사실은 한국주유소협회가 최근 전국 9000여 개 주유소를 상대로 '상표표시제 폐지를 위한 서명운동'을 벌이면서 확인됐다.

주유소협회 측은 "일부 주유소들이 타 정유사의 기름을 몰래 받아 파는 것은 사실"이라고 시인했다. 주유소 간 가격 경쟁이 심해지면서 더 싼 도매가를 제시하는 정유사가 있으면 유혹에 넘어간다는 것이다. 이미 서명에 참여한 5000여 주유소 업자들은 "상표를 내건 정유사의 기름만을 판매하라는 고시 때문에 정유사가 비싼 가격을 제시해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며 "주유소들이 다양한 정유사에서 기름을 공급받게 상표표시제를 폐지해 달라"고 주장했다.

특히 주유소 업자들은 "어차피 정유사끼리도 석유제품을 맞바꾸지 않느냐"는 논리를 내세운다. 실제로 열린우리당 김현미 의원이 지난달 공정거래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현대오일뱅크가 국내에서 판매한 석유제품 4만3032배럴 중 1만7241배럴(40.1%)이 타사 제품이다. SK(다른 회사 제품이 37.4%)나 GS칼텍스(33.2%), SK인천정유(33.9%)도 다른 정유사의 기름을 받아 자사와 계약한 주유소에 팔고 있었다. 이런 제품 바꾸기에 동참하지 않는 회사는 에쓰오일뿐. 지난해 국내 유통물량(23만7464배럴)의 30.8%가 이렇게 서로 맞바꾼 기름이었다. 정유사들의 모임인 대한석유협회는 "수송비를 줄이기 위해 일부 물량을 교환하는 것은 사실"이라며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런 정유사.주유소의 기름 바꾸기 관행 속에서 결국 피해를 보는 것은 소비자다. 서울대 허은녕(지구환경시스템공학부) 교수는 "소비자는 자신이 산 기름이 어느 정유사 제품인지 알 권리가 있다"며 "정부가 정기 점검을 해서라도 어느 주유소가 어떤 정유사 기름을 쓰는지 공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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