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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자살 예고에 일본 '발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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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이부키 분메이 일본 문부과학상 앞으로 배달된 자살예고 편지.

자살을 예고하는 편지 한 통으로 일본 열도가 발칵 뒤집혔다.

6일 밤 일본 문부과학성에는 "이지메(집단 괴롭힘) 때문에 괴롭다. 11일에 자살하겠다"는 편지가 배달됐다. 편지봉투 안에는 이부키 분메이(伊吹文明) 문부과학상과 교육위원회, 학교 교장, 담임교사, 동급생, 동급생의 부모, 자신의 부모에게 보내는 7통의 편지가 들어 있었다.

아사히신문 보도에 따르면 발신인은 편지에 "왜 나를 이지메하느냐. 내가 재수가 없어서? 아니면 내게 나쁜 냄새가 나서?"라고 적혀 있었다.

학교장과 담임교사 앞으로 보낸 편지에는 "나와 부모가 오래전부터 이지메 당한 사실을 알렸는데도 왜 아무것도 하지 않았느냐"며 학교 측의 무관심을 꼬집었다. 그러면서 8일까지 상황이 변하지 않으면 11일에 학교에서 자살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름이나 주소.학교명 등 자신의 신원과 관련한 정보는 전혀 밝히지 않았다.

이에 문부과학성은 7일 0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문제의 편지가 당국에 접수된 사실을 발표했다. 이지메 문제 해결을 위해 문부성이 노력하고 있으니 "절대 자살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편지를 보낸 학생에게 전달하기 위해서다.

이부키 문부상은 방송에 나와 "생명은 하나뿐이다. 힘들겠지만 누군가에게 너의 심정을 정확하게 전달하고 도움을 청하라"고 호소했다. 일선 교사들에게는 "학생들의 작은 표정 하나 놓치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시오자키 야스히사(鹽崎恭久) 관방장관도 "할머니와 할아버지, 부모님이 주신 생명을 귀하게 여겨 달라"고 촉구했다.

일본 정부는 이날 오전 '자살 종합 대책회의'를 개최하고 대책 마련에 나섰다. 편지 겉봉에 '풍(豊)'자가 찍힌 우체국 소인을 단서로 편지 발신지로 추정된 전국 50개 지역에선 7일 이른 아침부터 교육위원회와 각급 학교별 비상회의가 열렸다.

일선 담임교사들이 학생들의 필체를 편지의 글씨체와 일일이 대조하는 진풍경도 벌어졌다. 혹시 편지를 보낸 사람이 자기 반 학생이 아닌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오사카의 한 학교에서는 교사회의에서 "자살이 예고된 11일, 아예 전교생을 한자리에 모아두자"는 제안까지 나왔다.

이번 사건은 최근 연이어 발생한 '이지메 자살'로 정부가 전국 초.중.고교를 대상으로 긴급 실태조사를 하고 있는 가운데 일어났다. 지난달 11일 후쿠오카현의 중학교 2학년 남학생이 '이지메를 당해서 더 이상 살 수 없다'는 메모를 남긴 채 자살한 데 이어 23일에도 기후현에서 중학교 2학년 여학생이 이지메를 당해 괴롭다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문부성이 이 편지를 단순한 장난으로 보지 않는 이유다. 이부키 장관은 "편지가 장난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지만 목숨과 관련된 것인 만큼 방치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일본 청소년 사이에서 영웅으로 통하는 뉴욕 양키스팀의 마쓰이 히데키 선수도 이날 "너희는 결코 혼자가 아니다. 꿈을 버리지 말라"는 격려 메시지를 신문에 기고했다.

박소영 기자

◆ 이지메=두 명 이상이 특정인을 집중적으로 괴롭히며 집단적으로 따돌리거나 언어.물리적으로 폭력을 가하는 행위를 말한다. 일본에서 1980년대 기승을 부리다 점차 줄고 있다. 문부성이 전국 공립학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95년 6만96건에서 2005년 2만143건으로 감소했다. 이지메를 이유로 자살한 사건은 95년 6건이었으며 99~2005년에는 단 한 건도 없다가 올해 세 건이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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