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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끼 없는 사이 또 눈맞아···7남매 낳은 못말릴 한국 호랑이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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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용인 에버랜드의 한국호랑이 부부 태호(수컷, 왼쪽)와 건곤(암컷). 에버랜드

경기 용인 에버랜드의 한국호랑이 부부 태호(수컷, 왼쪽)와 건곤(암컷). 에버랜드

경기도 용인 에버랜드 동물원의 한국호랑이 사육장엔 2020년과 올해 2년 연속으로 '금줄'이 걸렸다. 아기 호랑이의 탄생을 알리는 금줄이다. 동갑내기 한국호랑이 부부인 건곤(암컷·5)과 태호(수컷·5) 사이에서 연년생 7남매가 태어난 것이다.

암컷 호랑이는 홀로 새끼를 키운다. 출산 후 최대 2년 정도를 육아에 전념하기 때문에 연년생 호랑이 출산은 드물다. 호랑이들을 돌보는 이양규(51) 사육사는 ‘건곤과 태호의 돈독한 금실’을 비결로 꼽았다.

“작년 2월에 태어난 ‘태범(수컷)’이와 ‘무궁(암컷)’이가 1년 만에 1㎏에서 100㎏으로 컸어요. 덩치가 큰데도 계속 엄마만 찾고 매달리니까 건곤이가 너무 힘들어하더라고요. 그래서 새끼들이랑 잠시 떨어트려 놨어요. 그런데 이때 태호랑 또 눈이 맞았더라고요.”

중매로 맺어진 건곤과 태호

한국호랑이는 ‘백두산 호랑이’, ‘조선범’, ‘시베리아 호랑이’, ‘아무르 호랑이’ 등으로 불린다. 한국호랑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국내에선 남획으로 종적을 감췄다. 세계적으로도 국제적 멸종위기 1급 동물로 분류된다.

건곤이와 태호는 2016년 5월 중국 상하이 동물원에서 태어났다. 날짜만 따지면 건곤이가 20일 더 빨리 태어난 누나라고 한다. 중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던 이들은 종보전 프로그램 교환을 통해 2018년 1월 에버랜드 동물원으로 왔다. 당시 건곤과 태호를 포함해 암수 호랑이 6마리가 한국 땅을 밟았다.

야생의 수컷 호랑이는 홀로 생활한다. 자기 영역에 암컷이 있으면 그 암컷과 짝짓기를 한다. 영역에 암컷이 없으면 평생 혼자 사는 경우도 부지기수라고 한다. 암컷과 수컷이 만나도 무조건 사이가 좋지도 않다. 싸워서 상처를 입히고 죽이기도 한다.

이에 사육사들은 호랑이들의 생년월일과 성격, 식성 등을 따져 건곤과 태호를 부부로 맺어줬다. 수컷 중 가장 유순하고 여유로운 호랑이가 ‘태호’였고, 암컷 중 제일 얌전하고 순한 아이가 ‘건곤’이었다.

에버랜드 동물원의 한국호랑이 태호, 건곤 부부의 첫 자녀 무궁이와 태범이. 에버랜드

에버랜드 동물원의 한국호랑이 태호, 건곤 부부의 첫 자녀 무궁이와 태범이. 에버랜드

중매(?)로 만난 호랑이들은 한 공간에 살기 전 적응 기간을 거친다. 문을 조금만 열어서 보여주고 냄새를 맡게 하는 식이다. 몇 개월에 걸쳐 ‘썸’을 타기도 하고, 아예 관심을 보이지 않아 헤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태호와 건곤이는 금방 사랑에 빠졌다. 딱 한 달 만에 방문이 활짝 열렸다. 이후 둘은 ‘눈꼴 시릴’ 정도로 붙어 다녔다고 한다. 서로 몸을 비비고 냄새를 맡는 등 애정표현도 서슴지 않았다. 사랑에 빠진(?) 호랑이들이 내는 특유의 낮은 저음으로 ‘그르렁’거리며 정담도 나눴다. 분리해 놓으면 서로가 있는 방향의 벽에 몸을 비비는 등 찾는 행동도 했다.

2020년 2마리, 올해 5마리…다산 부부

암컷 호랑이는 빠르면 2~3살, 수컷은 5살이 정도 돼야 번식이 가능하다. 하지만 일찍 사랑에 눈을 뜬 태호와 건곤이는 2018년에 이어 2019년 11월에도 짝짓기를 하는 모습이 목격됐다. 16주 뒤인 2020년 2월 첫 아이인 태범이와 무궁이가 태어났다.

1년 뒤인 지난 2~3월. 건곤이는 육아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사육사들은 건곤이를 쉬게 하려고 잠깐 태호와 합사를 시켰는데 이때 또 임신했다. 이 사육사는 “야생의 암컷 호랑이는 짝짓기가 끝나면 수컷과 헤어져 홀로 출산을 하고 육아를 하면서 새끼들이 다 자라기 전까진 수컷을 만나지 않는다”며 “그래서 둘의 짝짓기를 목격하고도 ‘설마’ 했는데 2~3개월이 지나니깐 건곤이의 배가 불러오고 먹이 섭취량이 늘어서 임신을 확신했다”고 말했다.

한국호랑이 태호와 건곤 부부가 올해 낳은 아기 호랑이들. 무려 5마리를 낳았다. 에버랜드

한국호랑이 태호와 건곤 부부가 올해 낳은 아기 호랑이들. 무려 5마리를 낳았다. 에버랜드

지난 6월 27일. 두 번째 아이들이 태어났다. 무려 5마리다. 호랑이는 보통 한 번에 2~3마리의 새끼를 낳는다. 5마리는 전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사례다.

이 사육사는 “호랑이 유두는 원래 6개인데 대부분의 호랑이가 2~3마리의 새끼를 낳으면서 2개는 퇴화가 됐다”며 “그런데 건곤이는 5개가 발달해 있어서 다산이 가능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름 찾는 오둥이, 유학가는 태범·무궁

건곤이는 모성애도 강하고 육아도 잘한다. 새끼에게 제대로 젖을 먹이지 못해 사육사의 도움을 받는 호랑이도 많은데 건곤이는 새끼들이 골고루 잘 먹을 수 있도록 조절을 한다고 한다. 5마리의 아기 호랑이들은 어미의 사랑 속에 현재 7~10㎏으로 폭풍 성장했다. 에버랜드는 오는 22일까지 아기 호랑이들의 이름을 공모한다.

태범이와 무궁이는 유학을 떠난다. 오는 10월부터 산림청 산하 국립백두대간 수목원의 ‘백두산 호랑이보전센터’ 유학 프로젝트에 참여한다. 1년 6개월에서 2년 사이의 호랑이가 어미로부터 독립하는 습성을 고려한 것이다. 센터 측은 2년간 호랑이 생태를 연구하고, 에버랜드 수의사와 사육사들이 정기적으로 방문해 이들의 상태를 함께 관찰한다.

에버랜드 동물원의 이양규 사육사. 에버랜드

에버랜드 동물원의 이양규 사육사. 에버랜드

호랑이의 평균 수명이 15년에서 20년인 만큼 5살인 건곤이와 태호는 사람 나이로 따지면 10대 후반쯤이다. 사이도 좋아서 새끼를 더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에버랜드는 “‘출산’보다 ‘행복’에 힘쓰겠다”고 했다.

이 사육사는 “번식도 중요하지만, 동물들의 행복 지수를 높이는 것이 더 중요하다”며 “호랑이들이 더 잘 지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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