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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최민우의 시선

조성은을 진짜 키운 건 누군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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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최민우 기자 중앙일보 정치부장
2017년 7월 '취업 특혜 의혹 제보조작' 사건과 관련 당시 국민의당 조성은 전 비대위원이 양천구 서울남부지검에서 참고인 신분으로 출석하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7년 7월 '취업 특혜 의혹 제보조작' 사건과 관련 당시 국민의당 조성은 전 비대위원이 양천구 서울남부지검에서 참고인 신분으로 출석하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조성은은 n번방 TF 때도 사고를 쳤어요." 

이른바 '고발 사주' 의혹의 제보자 조성은(33)씨에 대해 국민의힘 관계자는 이같이 말했다. "작년 4월에 김웅 후보자, 버닝썬 제보자 김상교씨 등과 n번방 TF를 만들었는데 사실상 조성은이 주도했죠. 제보도 많았고, 중대 발표도 하겠다고 했는데 결과적으론 찌라시였던 거에요. 그걸 그렇게 부풀렸으니…."

통합당 입당 때부터 뒷말 무성 #조씨 관련 인사 야당에도 여럿 #이준석 대표, 진상파악 나서야

실제로 지난해 4·15 총선을 열흘쯤 앞두고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이 n번방 특위를 발족하자 정치권은 술렁거렸다. 특히 민주당 유력인사 아들 n번방 연루설이 스멀스멀 흘러나왔다. 이에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2~3개를 준비한 것 같다. 주말쯤 터트리려 한다"며 정치공작설을 강하게 제기했다. 논란이 커지자 조씨 등은 긴급히 기자회견을 열고 "폭로는 없다"며 슬그머니 꼬리를 내렸다. 결국 국민의힘 관계자의 전언은 과거 행적에서 볼 수 있듯 조씨는 신뢰하기 어려운 캐릭터라는 의미였다. 그런데 민주당 이력으로 점철된 이 수상한 인사는 어떻게 제1야당에 똬리를 틀 수 있었을까.

지난해 초 조씨 영입 과정에 관여한 이의 설명은 이렇다. "솔직히 '와꾸'가 나왔죠. 조씨가 창당하려던 '브랜드뉴파티'에는 여성 두 명이 간판이었어요. 한 명은 진보정당 출신이고, 다른 한 명은 민주평화당 출신의 조씨. 그러니 브랜드뉴파티를 끌어들인다는 것은 통합당에 부족한 여성·진보·호남을 메우는 '그림'이 나오는 거죠. 선거철은 도떼기시장인데, 검증 뭐 그런 게 어디 있겠어요."

조성은 '브랜드뉴파티' 대표가 지난해 2월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미래통합당 합류 선언을 하고 있다. 뉴스1

조성은 '브랜드뉴파티' 대표가 지난해 2월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미래통합당 합류 선언을 하고 있다. 뉴스1

조씨가 미래통합당에 들어온다며 카메라 앞에 선 건 지난해 2월 16일이다. 당시 통합추진위원회 정병국·박형준 공동위원장과 함께 '중도 청년 정당 합류 기자회견'을 열었다. 조씨는 회견장에서 "이제 진보를 지지할 명분이 없어졌다"며 울먹이기도 했다. 하지만 조씨는 이후에도 구설이 적지 않았다. 대표적인 게 정당 명부 조작 논란이다. 브랜드뉴파티를 창당할 때 사망자를 당원에 포함하는 등 당원가입서를 위조했다는 거였다. 그래도 당내에선 이를 묵인하거나 두둔했다.

조씨와 브랜드뉴파티 창당을 도모했던 B씨는 최근 페이스북에 이렇게 조씨를 평가했다. "김대업을 떠올리는 이들도 있지만 아니다. 이전 세대와 다른 점은 어디로 튈지 짐작이 쉽지 않다는 거다. 자신의 뜻에 맞지 않으면 언제든지 조직을 갈아탄다. 소셜 미디어에서의 선전전에도 능한 세대다. 결정적으로 이러한 사이클을 즐긴다. 개인화된 테러와 관종이 결합한 시대. 지금 우리는 구태정치를 먹고 자라난 괴물이 던진 자살폭탄을 실시간 라이브로 목도하는 중이다."

2018년 1월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국민의당지키기운동본부 전체회의에서 박지원 국민의당 전 대표(현 국가정보원장)와 조성은씨가 대화하는 모습. 뉴스1

2018년 1월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국민의당지키기운동본부 전체회의에서 박지원 국민의당 전 대표(현 국가정보원장)와 조성은씨가 대화하는 모습. 뉴스1

조씨의 튀는 행태가 국민의힘으로선 내심 반가울지 모른다. 조씨의 등장 이후 '고발 사주' 논란은 오히려 역전되는 모양새다. 그가 얼떨결에 했다는 말 때문에 '박지원 기획설'이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세금 체납과 직원 임금 체불 의혹에도 1억원이 훌쩍 넘는 마세라티를 몰고 다니는 건 안줏거리로 용이하다. 조씨는 마세라티 차량에 대해 “경제적 형편이 되니까 타는 거 아니겠나. 나처럼 젊은 여성이 사업을 하려면 적정한 외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혹자는 메신저보다 메시지가 본질이며 손가락 말고 가리키는 달을 보라고 하지만, 손가락에 자꾸 눈이 돌아가는 건 인지상정이다.

그런데 이걸로 끝일까. 조성은만 난도질하면 될까. 돌이켜보면 '고발 사주'와 관련된 일은 조씨가 국민의힘에 있었을 때 벌어진 일 아닌가. 무작정 '적군'이라며 총질만 할 수 없다는 얘기다. 특히 많은 이들은 여전히 검사 출신 김웅 의원이 당에 별다른 지분도 없는 신출내기에게 이토록 민감한 자료를 왜 넘겼는지 궁금해하고 있다. 뒷말 무성했던 조씨가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당에 입성하고, 선대위 부위원장이라는 타이틀을 따내고, 단번에 마이크를 잡을 수 있었던 것도 고개를 갸웃하게 만든다.

국민의힘 김웅 의원은 지난 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해명 기자회견을 마친 뒤 소통관을 나서고 있다.   김 의원은 이날 "고발장 등을 받았는지 기억나지 않는다"는 입장만을 되풀이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 김웅 의원은 지난 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해명 기자회견을 마친 뒤 소통관을 나서고 있다. 김 의원은 이날 "고발장 등을 받았는지 기억나지 않는다"는 입장만을 되풀이했다. 연합뉴스

이건 수사기관과 별도로 공당(公黨)이라면 마땅히 밝혀야 할 사안이다. '제2의 조성은'을 방지하기 위해서도 말이다. 하지만 국민의힘에서 관련 진상조사를 한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 혹여 조씨와 엮인 당내 인사 상당수가 이준석 대표와 친분이 두텁기 때문은 아닌지 의심스러운 대목이다.

김용태 국민의힘 청년 최고위원은 이렇게 말한다. "많은 사람이 청년정치의 중요성을 외쳤지만, 속 빈 강정에 불과했음이 드러났다. 선거가 임박하면 구색을 갖추기 위해 보여주기식 감투 씌워주기에 급급했던 과오가 부메랑이 됐다."

결국 '조성은 사태'는 꼬일 대로 꼬인 대한민국 청년정치의 민낯을 드러냈다. 이를 수정하지 못한다면, 그의 뒷배를 도려내지 못한다면, 그토록 비난했던 586의 내로남불과 무슨 차이가 있을까. 청년정치의 아이콘 이준석이 답할 차례다.

최민우 정치에디터

최민우 정치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