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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은 숙제 해결인가, 선거용 포퓰리즘인가…일산대교의 정치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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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이재명 경기지사가 지난 5일 오후 충북 청주 CJB컨벤션센터에 열린 민주당 세종·충북 합동연설회에 참석해 손을 들어 지지를 호소하는 모습. 이 지사는 첫 충청권 순회경선 전날이던 지난 3일 일산대교 공익 처분 계획을 발표했다. 김성태 기자.

이재명 경기지사가 지난 5일 오후 충북 청주 CJB컨벤션센터에 열린 민주당 세종·충북 합동연설회에 참석해 손을 들어 지지를 호소하는 모습. 이 지사는 첫 충청권 순회경선 전날이던 지난 3일 일산대교 공익 처분 계획을 발표했다. 김성태 기자.

“불공정한 바가지를 계속 쓸 순 없잖아요. 옆에 새 다리라도 만들면 안 됩니까? 협약서에 그것도 안 된다고 돼 있다고요?”

이재명 경기지사가 지난 1월 경기도청 업무보고회에서 일산대교 통행료 문제에 대한 보고를 받은 뒤 했다는 말이다. 이 발언을 시작으로 이 지사는 일산대교 현장 간담회(2월 15일)와 ‘일산대교 전문가 TF’ 출범 회의(3월 5일)를 잇따라 개최했다. 6개월간 법률 검토를 거친 이 지사는 지난 3일 일산대교의 사업자 운영권을 회수해 10월 중 무료화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대통령 선거를 6개월여 앞두고 이뤄진 결정에 야권에선 “국가재정을 흔드는 매표 행위”(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라는 거친 반응이 나왔다. 허은아 국민의힘 수석대변인도 “사업자 손실보상은 도민들의 세금으로 충당해야 하고, 해당 업체 대주주인 국민연금공단 역시 기대수익을 포기 당하게 생겼다”며 “이 지사는 정녕 한국판 차베스가 되기로 작정한 셈인가”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이 지사 측은 “이번 일은 선거의 유불리를 계산해 벌인 게 아니다”라는 입장이다. “10년 넘게 고양·김포·파주 등 인근 지역 주민들의 민원이 쏟아졌던 묵은 숙제인 만큼, 이를 해결하는 건 도지사로서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란 설명이다.

남경필도 시도했던 통행료 인하…MRG의 딜레마

2008년 개통된 일산대교는 수익형 민자사업(BTO, Build-Transfer-Operation) 방식으로 지어졌다. 대림산업 등 5개사가 민간자본 1906억원을 조달해 건설하고, 그 대가로 2038년까지 30년간 운영관리권을 행사해 통행요금을 챙기는 구조다. 한강을 지나는 27개 자동차용 교량 가운데 유일하게 통행료를 징수한다. 일산대교 주식회사의 지분은 건설사 구조조정이 한창이던 2009년 국민연금공단으로 넘어갔다.

한강 유일 유료교량 일산대교.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한강 유일 유료교량 일산대교.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일산대교에서 가장 가까운 다리(김포대교)가 8㎞나 떨어져 있다 보니, 일산대교 통행료 문제는 역대 경기지사의 숙제였다. 하지만 해결이 쉽지 않았다. 통행료 수입이 협약서에 정해진 보장기준에 못 미치면 경기도가 이를 대신 지급하는 최소운영수입보장제(MRG·Minimum Revenue Guarantee)가 체결돼 있어서다. 통행료 수입이 떨어지면 이를 도비로 메꿔야 하는 구조 탓에, 외려 통행료는 두 차례나 인상됐다.

이재명 지사 이전에 가장 적극적으로 일산대교 문제 해결에 나섰던 건 국민의힘 소속 남경필 전 경기지사였다. 사진은 남 전 지사가 2017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수도권 규제 토론회'에 참석해 발제자로 나선 모습. 경기도청 제공

이재명 지사 이전에 가장 적극적으로 일산대교 문제 해결에 나섰던 건 국민의힘 소속 남경필 전 경기지사였다. 사진은 남 전 지사가 2017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수도권 규제 토론회'에 참석해 발제자로 나선 모습. 경기도청 제공

이 문제 해결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건 국민의힘 소속 남경필 전 지사였다. 남 지사는 취임 첫해인 2014년부터 “사업을 재구조화해 통행요금을 낮추자”며 국민연금 측에 재협상을 요구했다. 하지만 국민연금은 응하지 않았다. 국민연금이 일산대교 주식회사에 빌려준 돈 1831억원의 이자율이 연 8~20%라, 국민연금 입장에선 저금리 시대에 기존 계약을 유지하는 게 절대 이익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이에 남 전 지사는 2015년 일산대교 MRG 보조금 419억원의 지급을 보류하는 승부수를 띄웠지만, 이듬해 법원에서 패소하면서 이런 압박조차 무위로 돌아갔다.

이재명의 강공법…“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

이재명 경기지사가 3일 오전 일산대교에서 ‘일산대교 공익처분 계획 합동 브리핑’에 참석해 일산대교 무료화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이날 기자회견엔 최종환 파주시장, 정하영 김포시장, 이재준 고양시장(왼쪽부터)이 함께 참석했다. 경기도청 제공

이재명 경기지사가 3일 오전 일산대교에서 ‘일산대교 공익처분 계획 합동 브리핑’에 참석해 일산대교 무료화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이날 기자회견엔 최종환 파주시장, 정하영 김포시장, 이재준 고양시장(왼쪽부터)이 함께 참석했다. 경기도청 제공

이 지사 역시 처음엔 재협상을 시도했다. 하지만 국민연금이 응하지 않자, 이 지사는 민간투자사업법 제47조에 규정된 ‘공익 처분’을 해법으로 꺼내 들었다. “사회기반시설의 상황 변경이나 효율적 운영 등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 필요한 경우 주무관청이 민자사업 승인을 취소할 수 있다”는 규정을 활용해 아예 일산대교의 운영권을 회수하기로 한 것이다.

이런 결정을 두고 관가에선  “한번도 가보지 않은 길”이란 평가가 나온다. 공익 처분이 하수관과 같은 작은 시설에 이뤄진 적은 있어도, 일산대교 같은 큰 시설에 적용된 선례가 없어서다. 경기도가 국민연금에 지급하는 보상금이 자칫 높게 책정되면 경기도 재정이 타격을 입게 된다. 반대의 경우엔 국민연금 손실로 이어진다. 정치적·행정적 리스크가 큰 결정이라, 최종 판단은 법원에서 내려질 가능성이 크다. 국민연금공단 관계자는 “공단도 법률 자문을 거쳐 보상금 협상에 나설 것이다. 배임 소지가 있어 헐값에 넘겨주는 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여권 내 반응도 엇갈린다. 서울시 지하철 9호선 재협상 과정에 정통한 한 여권 인사는 “박원순 서울시에서 공익 처분 규정을 몰랐겠느냐. 하지만 이런 해법은 최후의 수단이다”라고 말했다. 경기도가 좀 더 협상을 벌였어야 한다는 취지다. 하지만 경기 지역의 한 민주당 의원은 “재협상으로 합의할 수 있는 건 요금징수 기간을 늘려 그 대가로 통행료를 낮추는 것뿐인데, 이건 미래세대에 부담을 넘기는 조삼모사 아니냐. 협상으론 해결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번 결정을 “주어진 권한을 이용해 문제를 해결한다”는 이재명식 행정의 표본으로 바라보는 해석도 있다. “이번 결정은 ‘현 상태가 공정한가’라는 물음에서 시작했다. 공정하지 않다면, 법률과 행정상 권한을 찾아내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게 이 지사의 생각”(경기도 핵심 관계자)이란 설명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이 지사는 시장 경제 원리에 반한다”는 반발도 나온다. 이한상(경영학) 고려대 교수는 “이해관계의 당사자가 있는 계약을 여론으로 개입해 무효화시킬 수 있는 사회 분위기를 만드는 이 지사의 접근은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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