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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언의 '더 모닝'] "진실이 두 개인 경우가 많습디다"

중앙일보

입력


안녕하세요? 오늘은 '고발 사주' 의혹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국회에서 지난 8일 '고발 사주' 의혹에 대한 입장을 밝히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 임현동 중앙일보 기자

국회에서 지난 8일 '고발 사주' 의혹에 대한 입장을 밝히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 임현동 중앙일보 기자

“살아가다 보니 진실이 두 개인 경우가 많습디다.”

영화 ‘모가디슈’의 대사입니다. 소말리아의 한국 대사(김윤석 분)가 북한 대사(허준호 분)에게 한 말입니다. 북한이 소말리아 반군에 무기를 건넸느냐는 문제를 놓고 두 사람이 이야기하다 한국 대사가 이 말로 상황을 정리합니다. 한국 정부에는 북한이 무기를 제공한 게 진실이고, 북한 정권엔 한국 정부의 거짓 유포가 진실입니다. 두 사람이 밤새워 논쟁을 한들 어느 한쪽이 승복할 리가 없습니다.

이른바 ‘고발 사주’ 의혹도 두 개의 진실로 끝날 듯합니다. 당적을 수시로 바꾼 젊은 정치인이 직접 또는 간접으로 의혹 제기에 관여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공익을 위한 진실한 폭로'로 이 사건을 보지 않는 사람이 늘었습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사주’를 한 게 사실이라고 하더라도(100% 가정입니다) 증거로 입증될 가능성은 지극히 희박합니다. 사주 받은 사람으로 지목된 손준성 검사는 김웅 의원에게 고발장을 작성해 전달한 적이 없다고 입장을 밝혔습니다. 검찰이 감찰 또는 수사를 한 뒤 손 검사가 작성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발표를 해도, 손 검사가 시인하지 않는 한 ‘진실 공방’이 벌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극단적인 상황을 생각해 봅니다. 손 검사가 검찰에 윤 전 총장의 사주를 받아 고발장을 만들었다고 진술하는 경우 말입니다. 검찰이 윤 전 총장을 기소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일이 벌어져도 윤 전 총장이 손 검사에게 지시하는 말이 녹음된 파일이나 동영상이 존재하지 않는 한 검찰의 발표를 믿지 않을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윤 전 총장을 지지하는 측은, 그리고 검찰과 법무부를 신뢰하지 않는 측은 ‘정치 공작’이라고 할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논리적으로는 양립할 수 없는 두 개의 진실이 병존하는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한쪽에서는 조국 전 장관이 억울하게 멸문지화를 입었다고 합니다. 다른 한쪽에서는 조 전 장관이 지금도 거짓말로 국민을 속이고 있다고 합니다. 세월호 침몰에 감춰진 진실이 있다고 믿는 시민과 나올 것은 다 나왔다고 생각하는 시민이 공존합니다. 한명숙 전 총리, 박원순 전 서울시장 관련 사건도 마찬가지입니다.

2002년 대선 때 이회창 후보 지지자들은 정권과 검찰이 정치 공작으로 병역 비리 사건을 만들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회창 후보를 반대하는 측에서는 그의 아들 병역 비리 의혹이 사실이라고 믿었습니다. 김대업씨가 검찰에 제공한 녹음 파일에서 조작 흔적이 발견됐어도 두 진실의 간격은 좁혀지지 않았습니다. 김씨가 선거 뒤에 허위 사실을 유포한 혐의로 구속됐습니다만, 이회창 후보 가족의 병역 비리를 확신하는 사람은 지금도 많습니다.

친정권 성향의 검사들이 요직을 장악한 검찰이 개입했기에 ‘고발 사주’ 의혹은 하나의 진실로 정리되기가 더욱 어렵습니다. '윤석열 찍어내기'에 앞장섰던 대검 간부가 감찰을 지휘하고 있습니다. 윤 전 총장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중립성과 신뢰성 측면에서 현재의 검찰이 역대 최악이라고 생각합니다. 검찰의 발표를 결코 믿지 않습니다.

두 쪽으로 갈라진 사회, 그 사이에서 공평하게 심판 역할을 해야 할 공적 기관마저 한쪽으로 기울어진 사회에서는 ‘합의된 진실’이 설 곳이 없습니다. “진실이 두 개인 경우가 많습디다.” 너무나 현실적인 대사입니다.

어제 본인이 제보자라고 주장하는 인물이 JTBC와 인터뷰를 했습니다. 그는 “대화방 캡처에 나온 ‘손준성’이란 인물이 검사인지도 몰랐다”고도 했습니다. '손준성'이 검사인 줄 몰랐는데, 어떻게 윤 전 총장의 '고발 사주'를 의심한 제보자가 될 수 있나요? 뭔가 이상합니다. 관련 기사를 보시죠.

“내가 공익제보, 김웅이 작년 대검에 고발장 내라고 했다”

 국민의힘 대선후보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총장 시절, 야당에 여권 인사 고발을 사주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실제 대검찰청에 공익 제보를 했다는 인사 A씨가 9일 언론 인터뷰를 했다. 그는 “김웅 의원이 ‘대검에 고발장을 접수시키라’고 했다”며 “받은 자료를 당에 전달하진 않았다”고 밝혔다.

A씨는 이날 오후 JTBC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사안의 심각성이 크다고 느꼈다”며 “김웅 의원과 윤 전 총장의 기자회견을 봤고, 고민 끝에 제보자라고 밝히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A씨는 자신이 인터넷 매체 ‘뉴스버스’에 알리고, 대검에 공익 신고자 신청을 한 당사자라고 했다.

A씨는 “김웅 의원에게 자료를 받은 사실을 뉴스버스 측에 알렸을 뿐 정치 공작과는 전혀 무관하다”며 “현재 여야 어떤 캠프에도 속해 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김 의원에게 당시 자료를 받은 것은 맞지만 당에 따로 자료를 전달하진 않았다”며 “대화방 캡처에 나온 ‘손준성’이란 인물이 검사인지도 몰랐다”고 말했다. A씨는 또 “김 의원이 당시 전화로 대검찰청에 고발장을 접수시키라고 얘기했는데 당시엔 그 의미를 몰랐다”고 주장했다. 대검은 ‘뉴스버스 보도 관련 제보자의 공익 신고서 등을 제출받아 법령상 공익 신고자로서의 요건을 충족했다’고 밝혔다. 다만 아직 국민권익위원회는 제보자가 공익 신고자인지에 대한 유권해석을 내놓지 않았다.

앞서 김웅 의원은 “손준성 검사(전 대검 수사정보정책관, 현 대구고검 인권보호관)에게 자료를 받았는지 기억나지 않으며 (텔레그램) 대화방은 삭제돼 확인할 수 없다”고 했다. 또 “대검에 고발하라고 한 것도 기억나지 않지만 사실이라면 제보자가 근거를 통해 밝히라”고 했었다. 손 검사는 텔레그램을 통해 김 의원에게 고발장 등을 전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인물이다.

대선판을 뒤흔들고 있는 ‘고발 사주’ 의혹은 현재까지 미궁에 빠져 있는 고리가 한둘이 아니다. 이번 의혹은 출발점부터가 의혹투성이다. 손 검사는 “고발장을 작성했다는 의혹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6일 입장문)고 했고, 해명이 자주 바뀌긴 했지만 김웅 의원도 “고발장은 안 썼다”(8일 기자회견)고 입장을 정리했다. ‘사주 의혹’에서 손 검사가 김 의원에게 보냈다고 등장하는 고발장은 두 건인데, 여권은 지난해 4월 3일(유시민·최강욱·황희석 등 13명) 건보다 8일(최강욱 1명) 고발장을 더 의심한다. 이 고발장엔 최강욱 열린민주당 의원이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아들의 가짜 인턴확인서 발급과 관련해 허위 사실을 말했다는 의혹이 담겨 있는데, 4개월 뒤(2020년 8월) 통합당에서 유사한 내용과 형식의 고발장으로 실제 고발을 했기 때문이다.

또 의혹을 제기한 매체는 ‘손준성 검사→김웅 후보→통합당’ 순으로 고발장이 전달됐다면서, 그 근거로 ‘손준성 보냄’이라는 텔레그램 문구를 거론한다. 이에 대해 김 의원조차도 지난 8일 “그 표시가 조작되진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이 때문에 민주당에선 “손 검사가 진실을 고백해야 한다”고 압박하고 있다. 반면에 야당에선 ‘손준성 보냄’ 문구 속 손준성이 아예 다른 인물일 수 있다는 등 조작 가능성을 제기하는 이가 적지 않다.

현일훈·하수영 기자 hyun.il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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