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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우 속 40시간 할머니 지켰다…국내 첫 '명예구조견' 된 소방교 백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치매환자인 90대 할머니가 한밤중 집을 나와 길을 잃고 쓰러지자 폭우가 내리는 가운데도 할머니 곁을 지킨 반려견이 명예구조견으로 임명됐다.

지난달 25일 충남 홍성군에서 치매환자인 90대 할머니가 논둑에서 쓰러지자 40시간을 곁에서 지킨 백구가 집으로 돌아와 견주이자 할머니의 딸인 심금순씨와 인사하고 있다. [사진 홍성군]

지난달 25일 충남 홍성군에서 치매환자인 90대 할머니가 논둑에서 쓰러지자 40시간을 곁에서 지킨 백구가 집으로 돌아와 견주이자 할머니의 딸인 심금순씨와 인사하고 있다. [사진 홍성군]

충남소방본부는 6일 “홍성소방서에서 반려견 백구(견령 4세)를 전국 1호 ‘명예 119 구조견’으로 임명하고 소방교 계급장을 수여했다”고 밝혔다. 전국에서 반려견이 명예구조견으로 임명된 건 백구가 처음이다.

지난달 25일 "어머니가 안 보인다" 실종신고 

백구가 명예 구조견으로 임명된 사연은 이렇다. 지난달 25일 새벽 “어머니가 보이지 않는다. 아무래도 어젯밤 집을 나가신 것 같다”는 경찰과 119상황실에 접수됐다. 신고자는 충남 홍성군 서부면에 사는 김모(93) 할머니의 딸로 치매 환자인 어머니가 사라져 발을 구르던 상황이다.

신고를 접수한 경찰은 집 근처와 마을 주변 수색에 나섰다. 경찰이 인근 농장의 폐쇄회로TV(CCTV) 영상을 확인한 결과 할머니가 마을 밖으로 벗어나는 모습이 확인됐다. 경찰은 할머니가 집을 나간 시간을 24일 오후 11시쯤으로 추정했다. 할머니 수색에는 홍성소방서 구조대원과 의용소방대, 방범대 등도 추가로 투입됐지만 신고 하루가 지난 26일 오전까지도 할머니의 행방을 찾지 못했다.

실종된 90대 할머니 구조에 도움을 준 백구가 119명예구조견으로 임명된 뒤 가족 품에 안겨 있다. 연합뉴스

실종된 90대 할머니 구조에 도움을 준 백구가 119명예구조견으로 임명된 뒤 가족 품에 안겨 있다. 연합뉴스

당시는 홍성은 물론 충남 전역에 폭우가 내려 고령의 할머니가 버티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경찰과 구조대원들은 물론 가족과 마을 주민의 속도 타들어 갔다.

실종 추정 40시간 만인 26일 오후 3시30분쯤 경찰의 열화상 탐지용 드론 화면에 작은 생체 신호가 포착됐다. 집에서 2㎞쯤 떨어진 논 가장자리에 쓰러져 있던 김 할머니 곁을 지키던 반려견 백구의 체온이 드론을 통해 확인된 것이다. 경찰과 119구급대가 할머니를 발견했을 때 백구는 할머니 가슴에 기대고 있던 상태였다.

실종 40시간…드론에 확인된 '백구' 체온 

발견 당시 저체온증을 호소하던 할머니는 119구급대에 의해 인근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다. 현재는 회복 중으로 건강에는 큰 이상은 없는 상태다. 경찰은 “할머니가 물속에 있어 체온이 정확하게 표시되지 않았는데 백구의 체온으로 발견할 수 있었다”며 “비가 내리던 악천후 속에서 할머니가 생존할 수 있었던 건 반려견 백구가 곁을 지켜준 덕분”이라고 말했다.

충남소방본부는 실종된 90대 할머니 구조에 큰 도움을 준 백구를 119명예구조견으로 임명했다. 연합뉴스

충남소방본부는 실종된 90대 할머니 구조에 큰 도움을 준 백구를 119명예구조견으로 임명했다. 연합뉴스

이 과정에서 김 할머니와 백구 사이의 각별한 인연도 공개됐다. 3년 전 길에 버려졌던 유기견 백구는 큰 개에게 물려 다쳤고, 이를 발견한 김 할머니와 가족이 지극정성으로 보살펴 목숨을 구했다고 한다.

백구의 주인인 심금순(65)씨는 “비가 내리던 날씨에 실종 시간이 길어지면서 가족 모두가 애를 태우고 있었다”며 “유독 어머니를 잘 따랐던 백구가 은혜를 갚은 것 같아 고맙고 가족과 다름없다”고 강조했다.

견주 "백구가 은혜 갚은 것 같다" 

백구의 명예 구조견 임명식에 참석한 양승조 충남지사는 “코로나19로 모두가 힘든 시기에 백구가 믿을 수 없는 기적을 만들어 모두를 감동하게 했다”며 “백구가 보여준 것은 주인을 충심으로 사랑하는 행동 그 이상으로 사람도 하기 어려운 지극한 효(孝)와도 같다”고 말했다.

지난달 25일 충남 홍성군에서 치매환자인 90대 할머니가 논둑에서 쓰러지자 40시간을 곁에서 지킨 백구가 집으로 돌아와 견주이자 할머니의 딸인 심금순씨와 인사하고 있다. [사진 홍성군]

지난달 25일 충남 홍성군에서 치매환자인 90대 할머니가 논둑에서 쓰러지자 40시간을 곁에서 지킨 백구가 집으로 돌아와 견주이자 할머니의 딸인 심금순씨와 인사하고 있다. [사진 홍성군]

한편 지난해 4월 소방청은 사람을 구한 동물을 명예 소방견으로 임명할 수 있는 ‘명예 소방관 및 소방홍보대사 운영에 관한 규정’을 제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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