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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피 PER 높고 반도체·원화 약세…한국 증시 매력 저하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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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2호 15면

외국인 ‘셀 코리아’ 왜

지난달 외국인은 코스피 시장에서 6조2568억원을 순매도했다. 지난달뿐 아니다. 외국인은 올 들어 8월까지 한국 증시(코스피·코스닥·코넥스)에서 30조7260억원을 내다 팔았다. 8개월 만에 지난해 연간 순매도 24조7128억원을 뛰어 넘은 것이다. 한국 증시에서 좀처럼 보기 드문 기록이다. 이로 인해 삼성전자를 비롯한 주요 종목의 주가가 약세를 보이고 있다.

그나마 개인 투자자들이 급격한 지수 하락을 막고 있지만, 힘에 부쳐 보인다. 외국인 매도가 8월 한 달이나 올해만의 문제라면 반도체 등 특수 요인 때문으로 치부하겠지만, 외국인은 지난해에도 24조원 넘게 내다팔았다. 이 정도라면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기조적으로 보는 게 맞다. 도대체 외국인들은 왜 우리 주식을 이렇게 내다 파는 것일까.

아마도 국내 증시에 매력을 느끼지 못해서가 아닐까. 코스피의 주당순이익배율(PER)는 현재 13배가 조금 넘는다. PER는 낮을수록 이익 대비 주가가 낮고, 반대면 주가가 높다는 의미다. 지난 15년 가까이 코스피의 PER가 한 자리 수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최근 주가 부담이 상당히 커졌다고 볼 수밖에 없다. 외국인은 주식도 많이 가지고 있다. 현재 시가 총액 기준 외국인 보유 비중은 30% 정도다. 2016년 4월 이후 가장 낮지만,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여전히 높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멕시코처럼 회사를 만들 때부터 미국 자본이 참여해 지분율이 높은 몇몇 국가를 제외하고는 외국인이 전체 주식의 3분의 1 이상을 가지고 있는 나라는 많지 않다. 갖고 있는 주식도 비교적 낮은 가격에 매입했다. 외국인은 외환위기가 끝나고 기업 구조조정이 본격화하던 2001~2003년 우리 주식을 집중적으로 사들였다. 당시 코스피 평균이 700 정도였으니까 단순히 따져도 주식을 산 후 네 배 넘게 이익을 본 셈이다. 주식을 많이 가지고 있고, 매입 가격도 낮은데 지금처럼 주가가 급등한 상태에서 굳이 더 살 이유가 없어 보인다.

외국인 입장에서 보면 우리 시장의 종목 구성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최근 전 세계 주식 시장에서 미국이 독보적인 상승세를 기록 중인데, 이는 아마존·애플 등 플랫폼 기업이 다른 나라보다 강하기 때문이다. 우리 시장에도 네이버·카카오 같은 플랫폼 기업이 있지만, 철강·화학·자동차 등 과거 주력 산업을 대체할 정도는 못된다. 과거 주력 산업은 성장성에 대한 의문이 들고, 새로운 플랫폼 산업은 고평가 논란으로 정체에 빠져 있다. 이게 현재 우리 시장의 형세인데, 외국인이 보기에 매력적인 상태는 확실히 아니다. 정체된 주식을 팔아 오르는 종목을 사는 건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우리 시장이 지지부진한 동안 미국 시장이 상승하고 있으니 우리 주식을 팔아 미국 주식을 사려는 것이다.

이 같은 분위기에 기름을 부은 게 반도체다. 지난달 IT(정보통신), 특히 반도체 주가가 눈에 띄게 하락했다. 7개월간 8만원대를 유지하던 삼성전자는 7만원대 중반으로 떨어졌다. SK하이닉스는 10만원를 지켜낼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는 상태가 됐다. 외국인은 지난달에만 삼성전자·SK하이닉스 주식 8조원 어치를 내다팔았다. 반도체 경기 둔화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실제로 반도체 가격은 수요 감소로 약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2분기 반도체 수요 기업들이 상당량의 반도체 재고를 쌓았기 때문에 수요 감소로 전환한 것이다. 주가 부담도 만만치 않다. 2018년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은 58조원이었지만, 올해 이익은 52조 정도로 예상된다. 이익은 2018년보다 적은 데 반해 주가는 올해 초 9만6000원까지 올라 2018년 최고가 5만7000원의 1.7배가 됐다.

여기에 환율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아직 환율이 외국인 매수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정확한 분석은 없지만, 외국인이 우리 주식을 매매해 생긴 차익을 자국으로 가져갈 때 달러로 바꿔야 하기 때문에 원화가 약세일 때 도움이 된다고 짐작하는 정도다. 원-달러 환율은 8월 한때 1180원까지 올랐다. 지금도 1160원대에 머물고 있다. 원화가 약해진 건 달러가 강해서다. 6개 주요 통화 대비 달러가 어느 수준인지 보여주는 달러인덱스가 8월에 93까지 올라왔다. 5월에 89였으니까 넉 달간 달러가 5% 가까이 절상된 셈이 된다.

국내 요인도 원화를 약하게 만들고 있다. 수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30% 이상 늘었지만 무역수지는 그렇지 않다. 7월에 무역수지 흑자가 17억6000달러로 줄었다. 지난 8개월간 외국인이 260억 달러에 해당하는 주식을 내다 팔았다. 우리 기업이 해외에 물건을 팔아 벌어들인 달러만큼 주식으로 빠져 나간 것이다. 환율과 외국인 매매 관계가 항상 똑같이 움직이지 않지만, 투자자들이 ‘원화 약세=외국인 매도’로 인식하고 있는 이상 원화 약세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외국인도 우리와 같은 투자자다. 투자자인 이상 전망이 좋을 때 주식을 사고, 전망이 나쁠 때 주식을 내다 파는 게 당연하다. ‘외국인이 한국 주식을 어떻게 팔 수 있어?’라는 생각을 하지 말고, 2년 연속 대규모 매도를 할 때에는 우리 시장이 왜 그들에게 그저 그런 시장이 됐는지 고민해야 봐야 한다. 전망은 정확한 진단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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