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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최선희의 문화예술톡

탈레반과 예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6면

최선희 초이앤라거 갤러리 대표

최선희 초이앤라거 갤러리 대표

미국이 철수하고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 수도인 카불을 점령한 이후 세계의 시선이 아프가니스탄에 집중되고 있다. 목숨을 내던져가며 비행기에 매달려 탈출해야만 할 정도로 이 나라의 미래에는 희망이 없는 걸까. 국제 사회는 허망한 죽음을 알리는 소식에 슬퍼하고 분노하지만 광기 어린 정권이 지배하는 아프가니스탄 국민을 도울 힘은 미약하다.

현재 가장 걱정되는 것은 여성의 인권이다. 탈레반이 장악한 이후로 아프가니스탄 여자들은 집 안으로 꼭꼭 숨어들었다. 눈만 제외하고 온몸을 가려야 하는 부르카를 입고서도 제대로 바깥으로 나가지 못하는 20년 전 공포의 삶으로 되돌아갔다. 지난 20년간 이루어진 여성의 자유를 위한 연대 활동이 하루아침에 허물어진 것은 참으로 통탄할 일이다. 이 가운데에 여성 예술가들의 신변은 이중으로 위험한 상황이다. 탈레반은 예술 활동을 이슬람 교리에 반하는 행동으로 규정하고 탄압해왔고 문화유산을 파괴해왔다.

샴시아 하사니(Shamsia Hassani)의 ‘악몽’(Nightmare). [사진 샴시아 하사니 인스타그램]

샴시아 하사니(Shamsia Hassani)의 ‘악몽’(Nightmare). [사진 샴시아 하사니 인스타그램]

전 세계는 2001년 탈레반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바미안 석불 입상을 파괴해버린 범죄를 기억한다. 가까스로 탈출한 여성 영화감독 사하라 카리미는 SNS를 통해 자국의 여성과 어린이, 그리고 예술인을 도와달라고 요청한다. 탈레반 장악 이후 많은 예술가가 SNS에서 자신들 작품의 자취를 모두 지워버리고 잠적하고 있다.

이 중에서 아프가니스탄 최초의 여성 그라피티 예술가인 샴시아 하사니의 인스타그램은 여전히 운영되고 있는데, 현 상황에 대한 본인의 슬픔과 분노를 담은 작품과 코멘트를 올리고 있다. 하사니는 카불의 버려진 건물을 배경으로 아프간 여성의 모습을 서정적으로 그리면서 여성의 자유와 미래에 대한 희망을 이야기해왔고, 때로는 전신을 가려야만 하는 옷인 부르카에 여성을 가두는 극우 이슬람 사상에 대해 그녀만의 상징적인 표현으로 비판해왔다. 또한 카불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리키면서 다음 세대 아프간 여성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끼쳐왔던 인플루언서이기도 하다.

나는 그녀의 신변과 미래가 걱정되어 인스타 메시지를 보내본다. 이러한 수많은 메시지에 대해 그녀는 인스타를 통해 본인이 안전하게 지낸다는 소식을 전하지만 그 연약한 생존이 언제 위협받을지 몰라 불안하다. 점점 희망을 놓아버리고 슬퍼하는 그녀의 메시지를 보며 부조리한 권력을 이길 수 없는 예술의 나약함을 실감한다.

예술가에게 더는 자유가 없다는 것, 이 세상의 본질을 파고드는 문화 예술이 사라지는 암흑이 다시 시작돼야 한다는 것, 극한 종교의 교리와 권력에 눈먼 우매하고 포악한 인간이 만든 끔찍한 비극에 대항하여 예술인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아프가니스탄의 미래를 위해 국제사회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