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곱버스냐 레버리지냐, 대박 노리다 ‘개미 지옥’ 빠질 수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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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1호 06면

고위험 고수익 상품에 몰리는 개미들

27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명동점 딜링룸 전광판에 표시된 코스피. [뉴스1]

27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명동점 딜링룸 전광판에 표시된 코스피. [뉴스1]

개인 투자자 서모(41)씨는 요즘 증시 걱정에 밤잠을 설친다. 서씨는 지난 20일 하락장 때 주가 지수 하락에 2배 베팅하는 이른바 ‘곱버스(인버스+곱빼기)’ 상품에 3000만원가량을 투자했다. 이달 초부터 셋째 주까지 코스피가 7% 넘게 하락한 것을 보고 추가 하락을 예측해서다. 그러나 23일부터 증시가 반등세로 돌아선 탓에 평가손실이 나기 시작했다. 서씨는 “길게 보면 하락장이 이어지겠다 싶어도 확실한 게 없고 손실까지 불어나니 다른 일이 손에 안 잡힌다”며 “주위엔 위험하니까 (곱버스 투자를) 시도하지 말라고 한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국내 증시가 이달 들어 크게 휘청거리면서 개인 투자자들이 곱버스와 ‘레버리지’ 등 고위험 고수익 상품에 다시 몰리고 있다. 레버리지는 곱버스와 정반대로 주가 지수 상승에 2배 베팅하는 상품이다. 코스피200 선물 등의 기초지수(추종하는 지수)가 1% 오를 때마다 수익률이 2%씩 오르는 것을 기대한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9~20일 2주간 개인 투자자는 상장지수펀드(ETF) 5596억원어치를 순매수했다. 그런데 이들은 대표적 곱버스 상품인 ‘KODEX 200선물인버스2X’ 5570억원어치를 순매도하면서 레버리지 상품인 ‘KODEX 레버리지’ 5744억원어치를 순매수했다.

기관은 하락장 예상하고 곱버스 투자

이 기간 KODEX 200선물인버스2X 외에도 ‘KOSEF 200선물인버스2X’ 등 곱버스 상품들의 수익률은 각각 나란히 16%대에 달했다. 여기서 차익을 실현한 다수가 증시 반등에 베팅하면서 레버리지로 갈아탔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들 입장에서 하나 꺼림칙한 것이 있다. 같은 기간 기관 투자자들의 행보다. 기관은 이 기간 KODEX 200선물인버스2X 6049억원어치를 순매수, KODEX 레버리지 5462억원어치를 순매도하는 등 개인 투자자와는 반대로 곱버스에 투자했다. 하락세가 멈출 것으로 본 개미와 달리, 기관은 하락장 지속을 예측한 것이다.

문제는 이달 급격한 증시 하락을 불러온 주요 이슈들이 개인 투자자보다 기관 예측대로 계속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강재현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연내 테이퍼링(자산 매입 축소) 시행은 기정사실이라 증시에 이견 없는 상수(常數)일 것”이라며 “각 종목의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 수준)이 지금 이상으로 확장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지난달 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Fed 위원 대부분은 조기 테이퍼링이 적절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미국이 최근 경기 회복세에 힘입어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잔뜩 풀었던 돈줄을 움켜쥐면 해외뿐 아니라 국내 증시도 움츠러들 수밖에 없다.

코로나19 델타 변이 바이러스 확산과, 한국의 최대 수출품인 반도체 업황에 대한 우려도 증시 반등을 섣불리 예측하기 힘들게 만든다. 국내 코로나19 신규 확진자 수는 여전히 하루 평균 2000명대 안팎을 오가고 있다. 김선우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반도체 업황은 글로벌 생산 업체들의 경쟁적인 설비 투자와 이에 따른 가격 하락 등 리스크로 아직 낙관하기 쉽지 않다”며 “당분간 주가 반등이 제한될 수 있다”고 전했다. 한국은행이 26일 기준금리를 0.75%(종전 0.5%)로 올린 것도 증시 자금 이탈을 부추길 수 있는 요소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따라서 현 시점에서 레버리지 투자는 가뜩이나 큰 위험성이 배가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그렇다고 곱버스 투자가 유리한 시점이라고 하기도 어렵다. 무엇보다 곱버스든 레버리지든 고액 장기 투자는 금물(禁物)인 고위험 고수익 상품 자체를 충분히 이해한 후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익명을 원한 증시 전문가는 “대부분의 개미는 가치투자만 증시에서 살아남을 길이라 여겨 평소에 목돈을 투입해 장기 보유하는 습관을 가졌다”며 “태생부터가 헤지(방어)를 위한 파생상품인 곱버스 투자 때도 이런 습관을 고수해선 낭패를 보기 쉽다”고 지적했다.

통상 증시가 활황일 때라도 리스크 분산 차원에서 전체 자산 대비 소규모 금액을 투자하도록 설계된 게 곱버스 상품이다.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단기 조정 기간에 곱버스 투자에서 곱절 수익이 나서 다른 일반 상품·종목의 수익률 저하 또는 손실이 어느 정도 상쇄되는 원리다. 이때 빠르게 차익을 실현하고, 다시 다른 데 투자하는 게 곱버스 투자의 정석이다. 그렇지만 곱버스 상품 특유의 높은 수익률에 매료된 적잖은 개인 투자자들이 ‘한탕’을 목적으로 목돈을 넣어 장기 보유하거나, 심지어 빚을 내 투자하는 ‘빚투’ 등 잘못된 전략으로 위험성을 키우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우려한다.

또 곱버스 상품은 소액을 넣었더라도 장기 투자 자체가 까다롭다. 매순간 증시가 예측대로만 움직이진 않는데, 곱버스의 경우 그때그때 확인 가능한 평가손실액이 일반 상품·종목보다 월등히 커서 평상심을 잃기 쉽게 한다. 그러면 매도 타이밍을 잘못 잡아 손실만 계속 쌓일 수 있다. 레버리지 상품도 마찬가지다. 이 때문에 금융당국은 곱버스나 레버리지 ETF 및 상장지수증권(ETN) 예비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온라인 의무 교육을 실시하고 있지만, 이들의 경각심 환기를 유도하기엔 분량·내용이 충분치 않다는 지적이다.

매도 시기 잘못 잡으면 손실 눈덩이

이에 대해 일각에선 제도적 개선 필요성을 제기한다. 권민경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곱버스·레버리지 상품 운용사들이 투자자 보호를 위해 이들 상품의 부작용을 개선한 상품을 개발·출시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예컨대 운용사들은 곱버스·레버리지 상품 운용에서 일반 상품과 달리 ‘매일’ 장 마감 전에 선물 매매를 한다. 상품성 유지를 위해선 기초지수에 대한 추종 배율(±2배)에 부합할 때까지 선물 보유량을 조절해야 해서다. 증시가 오른 날에는 선물을 매수하고, 떨어진 날엔 매도하는 식이다. 이를 리밸런싱(투자 자산 비중의 재조정) 거래라 한다.

거액을 굴리는 이들 운용사가 이렇게 리밸런싱 거래를 자주 할수록 선물 시장의 등락이 심해져 지수 왜곡 현상도 나타나기 쉽다. 이를 잘 아는 외국인과 기관 투자자들이 차익 실현에 나서면서 개미들만 손실을 입는 일이 적잖게 발생한다. 권 연구위원은 “자체 연구 결과 이런 문제를 줄이기 위해 리밸런싱 주기를 ‘이틀’로 늘리면 수익률 저하 부작용이 기존 대비 40%, 지수 변동 확대 위험성이 50%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이 같은 개선 상품의 실제 출시를 위해선 당국이 파생상품 관련 규제 일부를 완화할 필요도 있다”고 덧붙였다. 지수가 어제 올랐어도 오늘 원상 복구하는 식의 횡보장이 많은 만큼, 리밸런싱 주기를 이틀로 바꾸는 게 각 운용사에 큰 부담을 주진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해외로 눈 돌린 개미들, 올 들어 중국 전기차 ETF 9657억원 순매수

국내 상장지수펀드(ETF) 투자 열풍이 거센 가운데, 올 들어서는 해외에 투자하는 ETF가 인기라 관심을 모은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1월부터 이달 18일까지 개인 투자자들이 가장 많이 순매수한 ETF는 ‘TIGER 차이나전기차SOLACTIVE’였다. 중국의 전기차 업체에 투자하는 상품으로, 이 기간 개미들이 9657억원어치를 사들였다. ‘TIGER 글로벌리튬&2차전지SOLACTIVE’(3776억원)와 ‘TIGER 미국테크TOP10 INDXX’(3219억원), ‘TIGER 미국필라델피아반도체나스닥’(3154억원)과 ‘TIGER 차이나항셍테크’(2560억원) 등도 인기였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각각 미국·중국 등 글로벌 시장에 투자하는 상품이다.

올해 이 같은 해외형 ETF의 순자산 총액은 지난 23일 기준 12조3187억원으로, 지난해 말보다 이미 101.5% 증가했다. 같은 기간 국내형 ETF의 순자산 총액은 7.5% 증가한 49조3613억원에 그쳤다. 해외형 상품이 올 들어 개미를 이처럼 끌어 모으고 있는 건 높은 수익률 때문이다. TIGER 차이나전기차SOLACTIVE의 경우 올 초 대비 최근까지 가격 상승률이 50%대에 달한다. 중국 전기차 시장의 급성장, 지난해와 올 초의 폭발적인 상승세가 어느새 꺾인 국내 증시에 비해 여전히 활황인 미국 증시 등이 이런 해외형 ETF엔 연일 힘을 실어주고 있다.

개미의 ‘학습 효과’도 빼놓을 수 없다. 이들은 지난해 국내 증시가 너무 많이 급격히 올랐다고 보고 하락을 예측해 국내형 곱버스(인버스+곱빼기) ETF인 ‘KODEX 200선물인버스2X’를 가장 많이 순매수(3조5862억원)했다. 하지만 예측이 무색하게 상승장이 이어지면서 손실을 감당해야 했다. 여기에 국내 증시의 정체와 기준금리 인상 등을 고려하면 당분간은 국내에서 눈을 돌린 해외형 ETF의 인기가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상장된 해외형 ETF는 현재 총 149개에 달한다. 이 가운데 98개는 특정 업종을 추종하는 테마형 상품이다.

TIGER ETF 시리즈를 운용하는 미래에셋자산운용의 권오성 상무는 “국내 상장된 해외형 ETF를 통해 미국과 중국 등 세계 시장을 선도 중인 나라에 손쉽게 투자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개인 스스로 좋은 상품을 가려내는 ‘안목’을 기르는 데 힘써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장재창 인모스트투자자문 대표는 “해외형 ETF가 효율적 투자 수단임엔 분명하지만 글로벌 시장 흐름을 잘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며 “곱버스나 레버리지 같은 고위험 고수익 상품 투자를 원한다면 이런 데서 충분한 학습과 투자 경험을 쌓은 다음에 시도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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