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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7번 다 맞힌 그곳 표심…"이러다 내가 출마하게 생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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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지난 20일 경기도 하남시 덕풍전통시장의 모습. 이곳에서 만난 상인들은 임대료 상승과 매출액 감소로 인한 고통을 호소하며, 차기 대통령의 핵심 과제로 부동산 문제 해결과 코로나19 극복을 꼽았다. 양수민 인턴기자

지난 20일 경기도 하남시 덕풍전통시장의 모습. 이곳에서 만난 상인들은 임대료 상승과 매출액 감소로 인한 고통을 호소하며, 차기 대통령의 핵심 과제로 부동산 문제 해결과 코로나19 극복을 꼽았다. 양수민 인턴기자

“둘 다 하는 꼬락서니들 보면, 다 아니에요.”

대선 D-200일을 하루 앞둔 지난 20일, 경기도 하남시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 “대선에서 어느 당을 찍을거냐”고 묻자 돌아온 답변이다. 하남에서만 31년을 살았다는 62세 택시기사 양용진씨는 “요즘 전셋집을 구하기가 너무 힘들다. 말도 못할 정도”라며 생활고도 토로했다. 여야 모두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양씨는 “다음 대통령은 '진짜 민주주의'를 원하는, 비리 없고 청렴결백한 사람이면 좋겠다”고 했다.

이날 경기도 하남시를 찾은 건 이 지역의 투표 결과가 늘 전국 대선 결과와 일치한 ‘족집게 지역’이라서다. 하남시는 1989년 경기 광주군(현재는 광주시)과 분리돼 시(市)로 승격한 이래 전국 대선 투표 결과를 정확히 맞췄다. 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문재인 대통령은 모두 당선 당시 이곳에서 1위를 차지했다. 1987년 대선 경기 광주군에서도 노태우 대통령이 1위였으니, 하남시민의 투표 결과는 직선제 이후 모든 대선 결과와 일치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족집게’ 경기 하남시의 역대 대선 결과.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족집게’ 경기 하남시의 역대 대선 결과.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당선자 뿐만 아니라 지난 7차례 대선의 1~4위 순위 역시 하남시(1987년은 광주군) 개표 결과와 한 번도 어긋난 적이 없다. 지난 대선에선 문재인 대통령과 홍준표·안철수·유승민·심상정 후보의 1~5위 순위까지 모두 적중했다. ‘족집게 비결’에 대해 하남시청 관계자는 “도농이 고루 섞여있다 보니, 연령과 소득 분포 측면에서 전국 평균과 유사한 지역이라 그런 것 같다”고 설명했다.

전셋값 年 50% 상승, 부동산 민심 분노…표심은 팽팽

이 지역에도 정치 불신은 상당했다. 30년 동안 하남시청 인근 덕풍전통시장에서 야채 가게를 운영해 온 김모씨(여·49)는 선호하는 대선 후보를 묻는 질문에 “관심 없다. 내가 출마하게 생겼다”고 말했다. 김씨는 정치에 관심을 끊은 이유로 “집값·전셋값 다 오르고, 상가 월세가 올라 힘들다”는 이유를 댔다.

8평(26.4㎡)에 불과한 김씨 가게의 월세는 120~130만원 수준이라고 했다. 김씨는 “5년 전만 해도 월세가 50~60만원 정도였다”며 “건물이 비싸게 팔리니 건물 산 사람은 월세를 올리는 건데, 가게 매출은 바닥보다 더 심각하다”고 했다. 김씨는 “친구들과 만나도 이젠 정치 얘기를 하지 않는다”며 “우리가 백날 얘기해봤자 뭐하나, 본인들이 잘해야지”라고도 했다.

지난 24일 경기도 하남시 미사지구의 한 공인중개사 사무소. 4년 전까지만 해도 3~4억원대에 불과했던 이 지역의 30평대 아파트 전세가는 8억원대를 넘어서고 있다. 권민재 인턴기자

지난 24일 경기도 하남시 미사지구의 한 공인중개사 사무소. 4년 전까지만 해도 3~4억원대에 불과했던 이 지역의 30평대 아파트 전세가는 8억원대를 넘어서고 있다. 권민재 인턴기자

상가 월세만 오른 게 아니다. 하남시의 아파트 집값과 전셋값 상승폭을 두고선 공인중개사들 사이에선 “무섭다”는 말까지 나왔다. 하남시 평균 전세가는 지난 1년 동안 49.8%나 오르며 전국 최대 상승폭을 기록했다. (지난 5월 기준, 부동산 정보 업체 경제만랩 분석) 하남 미사지구의 경우 2017년만 해도 35평 아파트의 전세가가 3~4억원 정도였으나, 최근엔 호가가 7억원에 달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공인중개사는 “3~4억원 정도만 대출 가능하다는 신혼부부에게 8평짜리 오피스텔을 보여줬더니, 새색시가 눈물을 쏟아 마음이 아팠다”며 “예전엔 30평대 아파트 전세 살 돈 아니냐. 이런 정권의 지지율이 40%씩 나오는 게 이해가 안된다”고 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4년 전 문재인 대통령에 투표했던 시민들 사이에서도 불만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23년째 하남에서 장사를 하고 있는 박상범(57)씨는 문 대통령에 대해 “역대 대통령 중에 가장 잘할 줄 알았지만, 지금 보니 역대 제일 별로”라고 했다. “서민의 모든 삶이 나빠졌다. 옛날엔 모두 내집을 가질 거란 꿈이 있었는데, 지금은 아파트 분양가가 10억원이 넘으니 불가능하지 않냐”는 이유에서다. 그는 “여당보단 야당 후보를 눈여겨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해도 성난 부동산 민심이 무조건 야당 지지로 향하는 건 아니다. 공인중개사 유모(73)씨는 “부동산 정책은 정부가 굉장히 잘못했다”고 했지만, 이번 대선에서도 민주당에 또 투표할 예정이다. “이재명·이낙연·정세균 세 사람 모두 경력 있고 훌륭한 사람들”이란 이유에서다. 하남시 미사지구에 거주 중인 이모(여·52)씨도 “부동산에 실망했지만, 야당을 지지하고 싶지는 않다”고 말했다.

깊어진 코로나19 그늘…여야 내전엔 눈살 찌푸려

부동산 다음으로 대선 이슈로 꼽힌 건 코로나19였다. 하남 스타필드 지하에서 음식점을 운영 중인 정모(여·50)씨는 “코로나19로 2년 고생하는데 정부가 200만원, 300만원씩 찔끔찔끔 주고 있다. 동냥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 안된다”며 “다음 달에 가게 문을 닫을 것”이고 말했다. 정씨는 대선 후보들이 경쟁적으로 내놓는 공약에 대해서도 “어차피 지키지도 않을 것이다. 누가 되든 다 별로”라고 말했다.

경기 하남 스타필드 입접 매장 곳곳에는 사회적 거리두기 팻말이 붙어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음식점 사장 정모(여·50)씨는 ″정부가 인건비를 올려놓아 아르바이트를 쓰고 싶어도 못쓴다″며 ″그러면서 소상공인을 살린다고 하는 게 참 못마땅하다″고 했다. 권민재 인턴기자

경기 하남 스타필드 입접 매장 곳곳에는 사회적 거리두기 팻말이 붙어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음식점 사장 정모(여·50)씨는 ″정부가 인건비를 올려놓아 아르바이트를 쓰고 싶어도 못쓴다″며 ″그러면서 소상공인을 살린다고 하는 게 참 못마땅하다″고 했다. 권민재 인턴기자

코로나19 장기화로 노인복지 시설의 운영이 축소된 탓에 노인층 불만도 적지 않았다. 4년 전 문 대통령을 찍었다는 장세기(62)씨는 “코로나 때문에 다 방구석에 쳐박혀 있다”며 “코로나19가 없었다면 문 대통령이 잘했다고 했을 수도 있겠으나, 지금까지 잘 한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노인복지관에서 미용 봉사활동을 하는 전모(51)씨는 “어르신들은 사람들에게 코로나 주사 빨리 안맞힌다고 ‘대책이 없냐’는 말씀을 많이 하시며 답답해 하신다”고 말했다.

여야 대선 후보들 간의 네거티브 경쟁에 대해서는 지지 정당을 막론하고 쓴 소리가 쏟아졌다. 하남시 신장시장 인근에서 세탁소를 운영하는 문모(여·39)씨는 “민주당 토론회를 보니 자극적으로 말하는 게 너무 많아서 눈여겨 봤던 사람들에게도 실망했다”고 말했다. 하남시에서 65년 간 거주했다는 택시기사 김종필(70)씨도 “양당 후보 모두 흙탕물 싸움만 하고, 불필요하게 과거만 들춰내고 있다”며 “장래 비전을 갖고 싸워야지, 지나간 과거 들춰서 뭐할 거냐”고 말했다.

정치권에 대한 실망감은 세대 교체 주문으로도 이어졌다. 덕풍전통시장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는 오순자(여·60)씨는 “이대로라면 내년 대선에서 투표를 아예 안 할 생각”이라며 “차라리 국민의힘의 그 젊은 사람(이준석 대표)이 나와서 젊은층이 확 다 갈아엎었으면 좋겠다. 확 변화를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택시기사 조모(52)씨 역시 “대선 후보들은 아무 관심 없다”면서 “차라리 이준석 대표가 택시기사를 한다는 그런 게 개인적으로 재미있다”고 말했다.

7번 대선 맞힌 지역은 14곳…청주 상당에선 “이번엔 충청 출신?”

1987년 이후 7차례 대선에서 1위 후보를 다 맞춘 지역은 경기 6곳(구리·하남·남양주·평택·광주·안성), 인천 2곳(서구·남동구), 충북 5곳(청주 상당·청주 흥덕·증평·음성·옥천), 그리고 충남 금산군까지 모두 14곳이다. 지난 대선에서 경기 하남시 다음으로 각 후보의 득표율에 근접한 건 충북 청주 상당구였다. 4년 전 충북 청주 상당구 개표에선 문재인 대통령을 포함한 1·2·3위 순위가 정확히 일치했고, 각 후보의 득표율도 전국 개표 결과와 0.6%~1.6%포인트 내의 작은 오차만 보였다.

지난달 28일 충북 청주시 상당구에서 한 시민이 폐지를 실은 리어카를 끌고 있다. 이 지역은 상대적으로 부동산 문제보다 코로나19 대응을 대선 이슈로 꼽는 사람들이 많았다. 연합뉴스

지난달 28일 충북 청주시 상당구에서 한 시민이 폐지를 실은 리어카를 끌고 있다. 이 지역은 상대적으로 부동산 문제보다 코로나19 대응을 대선 이슈로 꼽는 사람들이 많았다. 연합뉴스

지난 12일 찾아간 충북 청주 상당구에선 부동산 정책에 대한 불만은 상대적으로 약했다. “전세값이 많이 오르긴 했으나, 인근 세종시와 비하면 부동산 문제가 심각하진 않다”는 설명이었다. 대신 이곳에선 코로나19 방역 문제가 대선 핵심 의제로 거론됐다.

청주시 상당구에서 국밥집을 운영하는 김미숙(여·64)씨는 “젊은 사람들부터 백신을 맞췄어야 하는데 순서가 거꾸로 돼 코로나19가 다시 확산되는 것 같다”며 정부 방역에 대한 불신을 나타냈다. 반면 유통업에 종사하는 지역 주민 김기철(50)씨는 “코로나로 인해 세계 정세가 급변하는 만큼, 안정된 사람보다는 변화를 주도하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며 이재명 경기지사의 기본소득 정책에 대한 호감을 나타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둘러싼 ‘충청 대망론’에 대한 입장은 엇갈렸다. 한 전통시장 앞에서 만난 유영복(76)씨는 “김종필씨가 대통령 한번 했어야 했는데, 안되어서 그게 한”이라며 “이번엔 충청도 출신인 야당 후보가 대통령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반면,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전동일(53)씨는 “아직까진 주변에서 윤석열 전 총장을 ‘충청 후보’로 진지하게 생각하는 것 같진 않다”고 말했다.

반면 여당 지지자 가운데에선 이재명 경기지사를 처가가 충청이라는 점을 주목했다. 가구 가게를 운영하는 이재홍(50)씨는 “고향 따지면 이 지사 처가가 충북(충주)이다. 결국 양극화 등 우리나라 문제를 해결하는 게 중요한 것 아니겠냐”고 말했다. 이런 논란에 대해 상당구 낭서면에만 50년을 거주한 농민 김모(여·75)씨는 “누가 충청 출신이든 뭔 상관이냐. 그냥 일 잘하시고 일자리 만들어줘서 벌어먹고 살게 해주면 된다”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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