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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논쟁

수술실 CCTV 의무화, 어떻게 볼 것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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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찬성] “진료기록 대체, 환자 알 권리 보호해야”

“의사의 수술 집중력 떨어질 수 있지만
불신 없어져 공공의 이익이 커져”

신현호 대한변협 의료인권소위원장·법률사무소 해울 변호사

신현호 대한변협 의료인권소위원장·법률사무소 해울 변호사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23일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 방안을 담은 의료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대한의사협회가 반발하고 있지만, 환자 알 권리를 향한 바른 방향이다.

수면 내시경 중 여성 환자를 상습 성폭행한 사건이나 마취 환자 앞 생일 케이크 파티 사건, 간호조무사에 의한 무면허 지혈 처치 사건, 척추 수술 전문병원에서의 대리 수술 내부 고발 사건 등이 벌어질 때마다 수술실 CCTV 설치 필요성이 제기됐다. 이를 찬성하는 측은 의료사고 발생 시 정확한 정보 확보의 필요성과 대리 수술 방지 등을 위해 필요하다고 한다. 하지만 반대 측은 의료인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해 환자와의 불신을 부추기고, 의료인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며, 수술 시 집중력 저하로 의료사고 위험이 커져 불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런 논의는 접근 방법에 문제가 있다. 수술실 CCTV 설치는 필요성이 아니라 필연적으로 설치해야 할 의료법상 의무다. 의료법 제22조 제1항은 “의료인은 환자의 주된 증상, 진단 및 치료 내용 등 의료 행위에 관한 사항과 의견을 상세히 기록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현행 의료법은 1973년 아날로그 시대, 종이 문서를 전제로 만든 것이다. 당시 전자문서나 CCTV 같은 디지털 개념이 없었다.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 수준의 디지털 시스템을 갖춘 국가다. 수술실 CCTV 영상 녹화는 의료 행위를 가장 상세히 기록하고 저장할 수 있는 방법의 하나다. 글로 작성하는 진료기록은 먼저 치료하고 후에 기록하기 때문에 기억력 감퇴, 기술 방법 한계로 인해 정확하지 않거나 의도적 은닉·삭제·변조 등의 개연성이 있어 환자로부터 부실·거짓 기재의 의혹을 받고 있다. 대표적 예가 산부인과 의사가 조작된 진료기록을 제시한 사건이다. 의사는 양수색전증으로 급사했다며 면책을 주장했으나, CCTV 영상으로 진료기록 거짓 기재가 밝혀졌다.

의료인 측 입장에서 일거수일투족이 CCTV에 녹화되면 감시받는다는 스트레스로 인해 수술 집중력이 떨어질 수 있지만, 그보다 얻는 공공의 이익이 더 크다. CCTV가 의료법상 의무 진료기록의 일부가 되면 문서로 상세하게 기재할 의무 부담을 덜게 되고, 무고성 수술실 성추행 주장도 방지할 수 있다.

의료계가 의료인 면허취소 기준 강화, 수술실 출입자 명부 작성, 지문 인식, 대리 수술 고발 포상제 등을 먼저 시행해보고 효과가 없을 때 수술실 CCTV를 설치하자는 연기론을 대안으로 제시하나, 이러한 제도와 CCTV 설치를 병행하면 환자 불신을 없애 의료에 대한 신뢰가 더 확보될 수 있다.

수술실 CCTV 영상 자료는 의무 기록의 하나임에도 일부에서 환자와 의료인이 모두 동의한 후 촬영하거나, 법원이나 수사기관에서 요구한 경우에 한해 공개하자는 제안은 설득력이 없다. 의료인은 의무기록을 환자로부터 동의받은 후 작성하지 않는다. 의료인이 일방적으로 작성·보관한 의무기록이지만 환자는 언제든 열람·복사할 수 있는 것처럼 수술실 CCTV도 모두 녹화되고, 제한 없이 볼 수 있어야 한다.

의료인에게는 의무기록 작성·보관 의무가 있다. 이는 헌법상 환자의 알 권리 보호를 위해서도 필요하다. 따라서 수술실을 포함해 모든 진료실에 CCTV를 설치해 환자의 알 권리가 보장되게 해야 한다.

[반대] “인권침해 등 득보다 실이 많아”

“녹화장면만으론 얻을 정보 거의 없어
과실 판정 어려워 부작용만 키울 우려”

오광조 전주비전대 겸임교수·미래마취통증의학과 원장

오광조 전주비전대 겸임교수·미래마취통증의학과 원장

수술실 CCTV 설치법 찬성 측은 의료사고를 예방하고 의료진의 과실을 밝히려면 CCTV가 필수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수술실에 상주하며 현장을 누구보다 잘 아는 마취과 의사인 필자가 보기엔 득보다 실이 많을 법안이다. 그래서 필자는 국회에서 이 법안을 무리하게 강행 처리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수술 중 과실을 확인하려면 모든 과정을 녹화해야 한다. 집도의의 손을 따라가며 수술 장면을 찍어야 하는데 이러면 수술은 불가능하다. 사람이 찍든 카메라가 찍든 오염이나 수술 방해는 피할 수 없다.

수술 부위가 보이지 않는 수술도 많다. 현미경 수술은 앉아서 렌즈를 보며 손만 움직인다. 옆의 마취과 의사도 수술 상황을 잘 모른다. 질환·환자·의사에 따라 수술 과정과 방법이 다른데 수술장면만으로 과실을 따질 수는 없다.

수술은 변수가 너무 많다. 사람마다 혈관·근육·신경의 위치가 모두 다르다. 수술 중 피가 튄다고 실수라고 하긴 어렵다. 영상에서 갑자기 수술방이 분주해지고 손이 빨라지면 뭔가 잘못됐다고 공격할 건가. 마취 과정에 문제가 있었는지 확인하는데 CCTV는 필요 없다. 환자가 잘 깨어나면 성공이고, 못 깨어나면 사고다.

수술은 팀으로 한다. 집도의는 중요한 고난도 과정 위주로 집도해야 집중력이 떨어지지 않는다. 정식 의사인 수련의는 수술에 참여해 스승의 지도하에 도제식으로 술기를 익혀가는데 이런 장면을 문제 삼아 교수가 모든 과정을 직접 안 해서 잘못이라고 지적하면 한국에서 더는 외과 의사를 키우지 못한다.

탈의실이나 화장실의 몰래카메라는 명백한 범죄다. 수술실은 전신 탈의에 피부까지 절개한다. 화장실 성범죄를 막으려고 CCTV를 설치하라고 하지 않는데, 수술실은 법으로 설치하라고 한다. 마취된 환자는 인권이 없다는 말인가.

수술실은 밀폐된 장소라 은밀한 범죄가 가능하다는 오해가 있다. 하지만 수술실은 개방된 공간이다. 외과의·마취과의·간호사·방사선사 등 이질적인 집단이 드나든다. 수술팀은 환자 개인의 외모에 관심이 없다. 얼굴과 몸통을 덮고 수술 부위만 드러낸다. 신체 어느 부위든 소독약으로 덧칠한 환부일 뿐이다. 그래도 추행을 의심한다면 유방암 수술, 생식기 관련 수술은 하지 말란 말인가.

일부 공장형 성형 수술의 유령 의사가 문제인데, 탈의실에서 바꿔서 들어오면 어떻게 할까. 탈의실도 카메라를 설치해야 하나. 수술실에서는 모두가 의료용 마스크·수술모·수술복을 착용해 구별이 안 된다.

CCTV가 수술실을 촬영해도 사실상 얻을 수 있는 정보는 거의 없다. 의료 사고가 발생하면 과실을 가릴 수 있다. 예방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고 외과 의사는 위축돼 소극적으로 안전한 수술만 할 것이고 환자는 무방비로 녹화될 것이다. 산부인과나 비뇨기과 수술은 민감한 부위가 적나라하게 노출되는데 그 장면의 녹화를 찬성할 건가. 만약 외부로 유출되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한국은 한해 200만 건의 수술이 진행되고 약 5000만 명의 환자가 10억 건의 진료를 받고 3000여 건의 의료분쟁이 발생한다. 의사는 신이 아니고 안타깝게도 의학은 한계가 있다. 극소수 과실 가능성을 감시하려고 수술실에 CCTV를 설치한다면 이익보다 환자 인권침해나 수술장면 유출 등 부작용이 훨씬 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