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건설 제값 받는게 중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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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건설의 매각을 주관하고 있는 외환은행의 고위 관계자가 5일 "(옛 대주주인) 현대그룹의 참여를 제한하지 않는 것이 맞다"고 밝혔다. 현대그룹이 현대건설을 되찾을 수 있는 가능성을 터준 것이다. 그는 "채권단 입장에선 제값을 받는 게 중요하다"며 "옛 대주주란 이유로 입찰 참여를 배제해 제값을 받지 못하면 이는 주주들에 대한 배임"이라고 덧붙였다.

이는 현대건설의 2대 채권기관인 산업은행이 부실기업의 옛 대주주 책임론을 제기하며 현대그룹의 현대건설 인수 움직임에 제동을 걸고 있는 것과 정면 배치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채권단 내부의 이견 조정이 필요하게 됐다.

김창록 산업은행 총재는 8월 "부실기업을 매각할 때 원래의 주인이 다시 찾겠다는 것은 도덕적 해이의 문제가 있다"며 옛 대주주 책임론을 제기했다. 이어 10월 말 국정감사에서도 "옛 사주 문제는 법률적.사실적 판단보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외환은행 고위 관계자는 "산은이 예전의 위상을 생각하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이제 시중은행들도 산은이 이야기한다고 일방적으로 따라가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현재 주식 수로 따지면 산은이 외환은행(12.58%)보다 많은 지분(16.71%)을 갖고 있지만 의결권이 있는 지분의 경우 외환은행이 더 많다.

현대그룹은 그동안 현대상선을 통한 인수자금 마련 계획을 밝히는 등 현대건설 인수에 강력한 의지를 비춰왔다. 금융계에선 현대건설의 매각 가격이 5조~7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러나 외환은행은 현대건설의 매각을 연내 매듭짓기 어렵다는 쪽으로 입장을 정리하고 있다. 외환은행 고위 관계자는 "대주주인 론스타가 주가 조작 사건 등에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상황이어서 정상적인 매각 추진이 어렵다"고 말했다.

여기에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등이 하이닉스반도체로부터 소송을 당하는 등 복잡한 그룹 내부 사정도 매각을 지연시킬 가능성이 있다. 현대그룹의 현대건설 인수에 부정적인 산은이 이 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산은 고위 관계자는 "현 회장 등이 하이닉스 등으로부터 피소된 사안은 현대건설 매각의 주요 변수가 될 수 있다"며 "재판 결과를 본 뒤 매각을 진행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못박았다.

하이닉스는 9월 고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과 전 임원들의 비자금 조성 등으로 손해를 봤다며 현 회장 등을 상대로 820억여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현 회장은 현대그룹의 주력 계열사인 현대상선 주주들로부터도 주주대표소송에 휘말려 있다.

이상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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