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수통”의 3성장군 출신/김용휴사장은 누구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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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국방차관때 12ㆍ12… 재빠르게 변신/총무처장관ㆍ청소년연 총재 지내
아들의 빚보증과 관련,미국에서 귀국을 않고 있는 김용휴남해화학사장은 사회경력보다 군재직시절의 경력이 훨씬 화려했다.
특히 국방부 군수국장ㆍ육군본부 군수참모부장ㆍ육군군수사령관을 거쳐 현역시에는 육군의 「군수통」으로 유명했다.
주월사부사령관ㆍ25사단장ㆍ6군단장 등 비교적 요직을 두루거쳐 「덕장」으로 알려졌지만 본인은 「육사 교장을 지내는 것이 꿈」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했으나 꿈을 이루지 못한채 78년 육군참모차장을 끝으로 중장으로 예편,국방부차관에 임명됐었다.
국방부차관시절 10ㆍ26이 발생했고 김씨는 재빨리 변신,전두환당시 보안사령관과 손잡은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당시 정승화육군참모총장겸 계엄사령관이 10ㆍ26수사본부장이던 전두환보안사령관과 마찰을 빚어 전사령관을 동해지역경비사령관으로 전출시키려하자 이같은 사실을 김씨가 전사령관측에 알려 12ㆍ12의 한 요인이 됐던 것으로 알려져 왔다.
김씨는 육사7기(특별)로 전두환씨(11기) 보다 훨씬 선배였지만 후배인 전씨를 깍듯이 모셨다.
이같은 인연으로 12ㆍ12직후 개각에서 김씨는 총무처장관으로 발탁됐고 82년까지 장관을 지내면서 80년초의 공무원숙정과 기구축소 개편작업을 주도하기도 했다.
김씨는 5ㆍ16직후 대령으로 계엄하의 내각사무원 행정관리국장으로 근무한 적이 있기 때문에 총무처는 낯설지 않았다.
장관을 그만둔 직후 청소년연맹 초대 총재로 임명되었으며 84년에는 농개공이사장으로 잠시 있다가 85년 남해화학사장을 지내 5공시절에는 「상당한 대접」을 받았던 셈이다.
고향인 충남 홍성에서는 선거때마다 여당공천으로 국회의원 출마설이 나돌았으나 직접적인 지역구 관리 등은 하지않았고 끝내 고사했다.
김씨는 85년 10월21일 남해화학 사장에 취임,사원들로부터 전문경영인 못지않은 좋은 평을 들었으며 88년10월 임기만료때 경질설이 나돌았으나 직원들의 반대로 연임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임기중에는 아그리코사 지분을 좋은 조건으로 농협이 인수토록하는 등 경영인으로서 능력을 발휘했다.
성격이 활달하고 사교적이어서 대인관계가 특히 좋고 남해화학 재직시에도 경영상 큰 문제는 없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편 그가 5년간 재임했던 남해화학은 74년5월에 설립된 국내 최대의 비료생산업체로 연간 1백90여만t의 복합비료ㆍ요소비료 등을 생산,국내 비료 수요의 75%정도를 공급하고 있다.
남해는 전남여천석유화학단지에 50만평부지의 공장을 갖고 있으며,종업원은 1천30여명. 연간 매출액은 3천억원 규모에 이른다.
88년3월에는 경영다각화의 일환으로 정밀화학사업인 DNT(디니트로톨루엔,우레탄 원료)공장을 세웠으며 최신식 공장설비를 갖추고 있다.<한종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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