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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탓이오」운동에 동참하자(사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우리 사회는 2년반이라는 엄청난 변혁기를 겪으면서 관념적으로만 생각해온 민주화라는 것이 반독재투쟁기간에 머리속에 그려온 그 이상에 비해 대단히 어려운 작업임을 일상적 체험을 통해 알게 되었다.
독재 아래서 모든 잘못된 일을 독재자의 횡포에 그 책임을 돌렸던 생각과 행동의 관성이 독재자가 사라진 다음까지 계속되고 있는 것을 이제 차츰 느끼게 된 것이다. 아직까지 권위주의를 지탱해온 체제의 골격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물론 아니다.
그러나 우리 일상생활 속에서 권력의 전횡 탓으로만 돌릴 수 없는 여러가지 나쁜 습성들이 여러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 것을 우리는 체험하고 있다.
그런 현상은 독재로부터 민주화 과정으로 가는 길에서 우리가 겪지 않으면 안될 과도기적 현상이라고 추상적으로 생각하고 지나쳐버리기는 쉬운 일이다.
그러나 날로 우리의 생활환경을 위협하고 있는 무질서,범죄의 횡행,집단이기주의와 거기에 뒤따르는 폭력행위 등을 보면서 우리는 모순되는 의문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민주화를 지향하면서 자신의 이익이 직결된 문제에 있어서는 모든 권위를 거부하면서 자기에게 피해를 주는 남의 이익의 난폭한 주장에 대해서는 권위,즉 공권력의 강화를 요구하는 세태에 대한 것이다.
독재자가 없으니 이젠 내 이익을 최대한 확보해야겠고 그걸 위해서는 수단 방법을 가릴 필요가 없다는 독선들이 곳곳에서 판을 칠 때 결국 피해는 자신이 속한 사회 전체에 돌아온다는 사실을 아직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과도기적 무질서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민주화의 본질,즉 사회의 기본 질서를 국민 스스로의 의지로 키워나가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천주교 평신도 사도직 협의회가 제창하고 나선 신뢰회복 운동은 때늦은 감이 있는 시민차원의 민주화 운동의 줄기라고 평가하고 싶다. 이들이 구호로 내건 「내 탓이오」는 물론 종교적 용어에서 나온 것이지만 오늘의 무질서에 대해 걱정하는 모든 사람이 종교와 관계없이 동참할 수 있는 구체적 정신운동의 실천요강으로 삼을 만한 것이다. 우리는 이 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될 것을 빌어 마지 않는다.
우리 사회가 지금 겪고 있는 배타적ㆍ이기적 무질서의 예는 수없이 많다. 그러나 최근 수해를 겪으면서 도시인들이 체험한 교통의 무질서 상태는 그 한 단면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예일 것이다.
홍수기간중 시민들은 평소 30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를 3시간씩 걸려 통근한 예를 수없이 겪었다. 그 주된 이유는 교차로에서 서로 미리 가려고 차를 밀어 넣는 바람에 교통신호나 경찰관의 교통정리는 있으나마나 모두가 모두의 길을 막는 원시적 이기주의 때문이다.
자동차를 타고도 걷는 사람보다 늦게 움직이는 그 차속에서 모두들 자기 앞을 가로막고 있는 차의 운전사를 탓했지 거꾸로 자신이 탄 차가 다른 차의 진로를 부당하게 막고 있는 책임은 전혀 느끼지도 않았음을 경험해본 사람들은 후에 느꼈을 것이다.
남을 탓하기 전에 자신을 탓할 수 있는 마음가짐을 적어도 대부분의 운전자들이 갖고 있었다면 이번같은 폭우속에서도 교통소통은 훨씬 원활했을 것이다.
사회의 다른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사람이 죽으면 곧 시체를 보상비 흥정의 수단으로 삼고 자신에게 문제가 생기면 순리를 따지기 보다 싸움부터 벌여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세상,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이 영원히 낙오하고 무능력자로 취급당하는 세상,이런 것이 민주화라는 번지르르한 구호 속에서 용납되는 한 민주화는 허황된 신기루에 지나지 않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이제 민주화라는 것이 정치인에게만 기대할 단선적 개념이 아니고 그제도의 주인인 국민전체가 자율적 질서와,나의 이익과 남의 이익을 조화시킬 수 있는 새로운 규범에 따라 행동할 때만 꽃피울 수 있는 실생활 속의 습성으로 키워나가야 된다고 믿는다.
천주교 신도들의 「내 탓이오」운동이 많은 국민들의 공감을 얻어 그런 방향으로 사회기강이 바로잡아지는 데 기여하기를 충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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