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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in] 문화산업계는 지금 유학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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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뉴욕대 스턴 비즈니스 스쿨 알 리버만 교수가 한국 문화산업 연수생들과 토론을 하고 있다.

최근 국내 문화산업계의 화두는 '한류 열풍을 어떻게 계속 불도록 할 것인가'다. 이를 위해 해외 시장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관심은 업계 종사자라면 누구나 귀가 솔깃한 얘기일 터. 선진국의 문화산업 관련 기관에서 최근 동향을 듣고 업체 및 시장 현장을 직접 돌아보는 해외 연수 코스에 대한 관심이 나날이 높아지는 이유다.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이 2002년부터 시행해 온 해외연수과정 '글로벌 비즈니스 코스'가 올해로 5년을 맞았다. 지금까지 400명이 넘는 문화산업계 업체 대표 및 실무자들이 미국과 영국, 일본을 방문했다. 올해부터는 중국도 추가됐다.

이들은 오전에는 대학 교수 및 업체 전문가의 강의를 듣고, 오후 내내 현장을 방문하며 눈과 귀로 현지 사정을 흡수했다. 이 경험은 '제2의 겨울연가''제3의 대장금'을 만드는 기획안 속에 고스란히 녹아드는 중이다. 현지 전문가 및 연수생 사이에 생겨난 인적 네트워킹은 이 코스의 가장 커다란 자산.

이 코스의 인기에 힘입어 한국게임산업개발원과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도 비슷한 프로그램을 개발하며 본격적인 지원에 나서기 시작했다.

문화산업 강국 대한민국을 꿈꾸는 이들의 '21세기 신사유람단'을 따라가 보았다.

지난달 23일 오전 미국 뉴욕 맨해턴 4번가 뉴욕대(NYU) 스턴 비즈니스 스쿨. 34명의 중장년 한국인들이 약간 긴장된 표정으로 강의실에 앉아있다. 이들은 게임, 애니메이션, 캐릭터 제작사 등을 운영하는 국내 문화산업계 CEO들. 서울대 문화콘텐츠 글로벌 리더과정의 마지막 코스로 일주일 간 이곳을 찾은 이들에게 인솔자인 박남규(경영대)교수가 힘주어 말했다. "강의만 듣는 것보다 질문을 해야 더 많은 것을 끌어낼 수 있습니다. 공격적으로 질문하세요."

누가 한국인이 과묵하다고 했던가. 노련한 뉴욕대 교수들의 강의 중간 중간에 날카로운 질문이 이어지자 분위기는 절로 뜨거워진다. "구글은 유튜브를 인수한 뒤 앞으로 저작권 문제를 어떻게 풀 것으로 보십니까?""웹 2.0시대에 루퍼트 머독과 구글은 어떤 미디어 정책을 펼칠까요?""제가 그걸 알면 지금 머독 옆자리에 앉아 있겠지요(웃음). 그런데 머독의 경우는…."

오전 내내 강의와 질의응답을 계속한 이들은 오후 들어 NBC 방송국, 42번가 브로드웨이 등 맨해튼 곳곳을 돌아다녔다. 세계 문화시장을 이끄는 미국의 저력을 파악하고 틈새를 찾기 위해서다. 시내 한복판에 있는 닌텐도 전시관에서는 줄넘기 자루 같이 생긴 신개념 게임기 '위'의 홍보영상을 보며 새로운 게임 인터페이스에 대한 토론을 나눴고, 애플 아이팟 동영상 기기를 즐기는 인파를 보며 어떻게 해야 미국 시장을 뚫고 들어갈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

27일 오후 코스를 결산하는 이들의 결론은 미국의 새로운 모습을 보았다는 것으로 모아졌다. "한국은 새 기술을 개발해서 빨리 내놓는데만 급급한데 미국은 그 기술로 돈을 벌만큼 벌고 다음에야 새 기술을 내놓는 것 같습니다. 이익 극대화 전략이 정말 돋보이네요."(판도라TV 김경익 대표) "미국이 보여주는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관심을 보니 아차 싶었습니다. 거리가 멀어 별생각 안 하고 있었는데 이 시장도 적극 연구해야겠어요."(SK C&C 여상구 상무)

정리에 나선 서울대 이중식(언론정보학과)교수는 "뉴욕은 전세계 베스트 플레이어들이 항상 월드컵을 열고 있는 곳"이라며 "디지털은 새로운 문화 중력을 만들어내는 힘이 있는 만큼 우리는 디지털 강국의 잇점을 최대한 활용해 살 길을 찾아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CEO에 비해 실무자를 위주로 한 글로벌 비즈니스 코스는 현장 중심으로 진행됐다. 7월3일부터 7일까지 중국 베이징 칭화(淸華)대 문화산업연구센터는 27명의 한국인들로 왁자지껄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계속해서 이어지는 수업과 참관으로 지칠 법도 했건만 이들은 중국 영화, 애니메이션, 게임, 방송, 인터넷 산업에 대한 설명을 듣고 현장을 찾아 질문을 던지는 일을 반복했다.

특히 한국 드라마의 천편일률성과 상업성을 지적한 칭화대 판홍(范紅)교수가 "한국 드라마를 외면하고 있는 지식인과 엘리트 계층을 끌어들여야 중국 내에서 본격적인 한류가 이어질 것"이라고 지적하자 그 방법이 무엇일까를 두고 난상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연수를 주관한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중국사무소 권기영 소장은 "한국의 역할은 서구 문화를 동양식으로 소화하는 문화 필터같은 것"이라며 "중국인과 다른 한국인만의 시각으로 중국의 콘텐트를 가공해 세계 시장에 내놓으려는 노력도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뉴욕.베이징=정형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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