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4)꿩 깃털 장식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국립무용단에 들러 단원들의 무용연습과정을 관람했다. 20여명 무용수들의 모자에는 꿩 꼬리 깃이 꽂혀 있었다.
이와 같은 현상은 다른 무용발표회에서도 볼 수 있었고, 무용극에서 선비의 모자에도 새의 깃이 꽂혀 있어 몽골족이 조류의 깃으로 모자를 장식하는 것은 보편적인 것이었다. 특히 꿩 꼬리털은 주역 또는 영광된 사람의 모자에 장식하는 것으로 되어있음을 알 수 있었다.
울란바토르 국립박물관의 동물실에 들어가니 많은 조류의 박제가 전시되어 있는데 꿩은 중앙에 위치하고 있었고 우리의 꿩보다 다소 크다는 느낌이었으며, 목덜미의 흰색 털의 폭이 더 넓었다.
일본 대마도에서는 꿩을 고라이기지 즉 고려 꿩이라 불러 한국에서의 전파를 말하고 있는데 목덜미의 흰 선이 우리의 꿩보다 좁아 가느다랗다.
모자에 새 깃 또는 꿩 꼬리로 장식하는 풍속은 널리 퍼져있다. 중국과 티베트에서 거의 일반화되어 있고 자료에 의하면 운남·귀주 등 변방의 소수민족들도 애용하고 있다. 몽골족과 관련이 있는 시베리아와 아메리카의 인디언에 있어서도 새 깃털은 추장의 머리에 장식되고 있다.

<대마도선 고려 꿩>
동북아시아와 시베리아는 몽골족이 분포되어 있고 티베트는 라마교로 해서 몽골문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아메리카의 인디언 역시 몽골족인바, 몽골족 또 몽골족의 문화가 침투한 곳에는 새 깃털이 머리장식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일생을 티베트문화 조사연구에 몰두한 가와타(천전)씨는 티베트를 가리켜 조장의문화란 말로 부르고 있다.
사람이 죽어 장사지내는 방법에는 땅에 시체를 묻는 매장법, 바다에 버리는 수장법이 있고 시체를 산 위의 지정된 바위에 가져다 놓으면 독수리들이 모여 시체를 먹어치우도록 하는 장법이 조장이다.
조장을 하는 민족들의 논리는 새들이 육체를 먹고 영혼을 하늘나라로 운반해 주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영혼은 하늘나라로 가야 영생하는 것인데 조장만이 승천하는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해 조장을 하고있는 것이다.
사람은 지상에서 걸어다닐 수 있을 뿐인데 새들은 하늘을 날수 있기에 그 특수한 기능이 인정되어 죽은 사람영혼의 운반자로 선택되었다. 몽골족은 조장은 아니다. 몽골족은 가족은 물론 아무도 모르게 가까운 사람에 의해 매장되고 평토를 해버려 풀이 나고 바람이 불어 모래로 덮이면 아무 흔적이 없다. 그래서 몽골족은 무덤이 없고 조상제사도 없다.
그러나 몽골족들은 조류의 하늘을 나는 특수한 기능을 인정하여 조류의 깃털에는 「영력」이 있는 것으로 해석하고있다.
조류의 깃털은 장식으로 아름다울 뿐 아니라 종교적인 의미도 지니고 있어서 새 깃털로 모양을 내는 「조장」의 민속이 전승되어 왔다.
사막은 평면적인데 머리 위에 새 깃털을 꽂으면 높이 솟고 위엄이 있을 뿐 아니라 아름답고 바람에 하늘거리게 되니 더욱 예술적이고 주술적이었다. 그래서 축제 때의 나들이 모자에 장식되고 영광된 지도자나 신을 섬기는 샤먼(무당)들의 모자에는 거의 조류의 깃털이 꽂혀 있었다.

<새가 영혼을 운반>
만주 홍안산맥에 주거하는 혁철족의 지도자와 샤먼들의 머리에는 꼭 깃털이 꽂혀 있었다. 여기에서 단순한 장식이상의 종교적 기능이 상징돼있음을 알 수 있다.
중국의 『위서』고구려전에 의하면 고구려에서는 모자에 『새의 깃을 꽂았는데 변과 같다』(기형여변 방삽조우)라고 했고 『주서』에는 『관리는 새 깃 두개를 꽂았다』(기관려유자 차삽이조우어기상)라고 했으며, 『삼국지』에 의하면 변·신에 있어서는 『큰 새의 깃으로 죽은 사람을 보내는데 그 뜻은 죽은 사람을 날려보내기 위해서다』(이대조우송사기의욕사사자비양)라고 했다.
머리에 새의 깃을 꽂는 고구려와 백제의 풍속은 몽골과 같은 유형에 속하고 변한과 전한에서 죽은 사람을 새의 큰 깃에 실어 보냈다는 것은 영혼의 하늘운반을 기대하는 티베트에 있어서의 조장과 같은 우주관에 의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고구려의 영토가 한때는 요동과 열하에까지 뻗쳤으니 몽골과 접촉이 많았고 인종학에서는 몽골족의 일부가 남하해한 민족이 되었다는 것이고 우리도 인종학에서의 분류는 몽골족으로 되어있어 기층문화가 같은 것은 오히려 당연한 일이다.
여러 조류 중에서 꿩의 깃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은 우리 민족의 조장풍속과 꿩 민속의 원류를 찾는데 있어 이번 여행 중 수확의 하나였다. 몽골에 있어 조류의 깃 중에서 꿩의 깃이 두드러진 것은 우리의 민속과 관련시킬 수 있다.
꿩은 몽골·만주·한국이 주 서식지이고 일본과 칠레의 동북지방에도 서식한다. 색깔이 곱고 고기 맛이 좋아 한국에서는 가장 길조로 여겨져 왔다. 옛날 풍속도에는 무당의 머리에도 꿩 깃이 꽂혀 있어 조류의 깃털을 이용한 분장에 우리 나라에서는 꿩 깃으로 정착되었다.

<우리 나라선 길조>
우리 민속에 있어 꿩의 등장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옛날에는 마을마다 마을을 대표하고 상징하는 농기가 있어 마을 공동의 행사 때는 으레 등장했는데 농기의 꼭대기에는 깃봉으로 꿩 꼬리털을40∼50개쯤 묶어 꽂았다. 깃봉은 가장 영광된 부분인데 여기에 꿩 꼬리털을 장식, 길조인 꿩이 영광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무척 재수가 좋은 일을 가리켜 「꿩 먹고 알 먹고」라는 속담이 있다. 꿩고기는 진미이고 맛이 유별나게 좋아 재수 좋은 사람이나 먹게 되는데 하물며 꿩알까지 먹게 된다는 것은 퍽 행운이란 뜻이다.
경주 지방에시는 봄에 산에 가서 꿩알을 주어 먹으면 그해에 재수가 좋다고 하며 알속은 먹고 알 껍질은 꿰어서 추녀 밑이나 벽에 걸어 두면 그 해에 농사 장원하고 가내태평하며 후환이 없다고 전한다. 꿩이 길상이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행운을 가져다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설날 아침을 잘 먹어야 일년 중 잘 먹는다고 하는데 설날 흰 떡국은 흔히 닭고기를 쓰고 있으나 원래는 꿩 탕이었으며 혼례식 때 초례상에는 닭을 청 홍보로 싸서 놓거나, 동자가 옆에 들고 서있는 것이 고풍이지만, 이 경우에도 원래는 꿩을 청 홍보로 싸서놓았던 것이다. 혼인식이 다 끝나고 시부모에게 첫 대면하는 폐백에도 지금은 닭포 또는 쇠고기포를 사용하지만 이것 역시 원래는 꿩포를 썼다.
시대의 변천에 따라 구하기 어려운 꿩에서 구하기 쉬운 닭으로, 대체되었으니 속담에서 말하는「꿩 대신 닭」이 됐다. 즉 원래는 꿩을 사용하다가 닭으로 바뀌어진 생활관습의 변천을 뜻하는 말이다.

<꿩 날개로 부채도>
설날 새아침의 꿩 탕, 인생의 가장 행복한 순간인 혼인예식에서의 꿩, 그리고 시부모에게 첫 인사드리고 효성을 다할 것을 맹세하는 자리에 꿩이 등장하는 것은 인생의 중요한 계기에 증인으로 채택되었기 때문이다.
「꿩 구워먹은 자리」란 속담도 있는데 꿩고기는 구워먹으면 더욱 맛이 있어 뼈까지 모두 먹어 치우고 먹은 흔적을 아무 것도 남기지 않는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 즉 꿩 구워먹은 자리에는 아무 흔적도 남지 않는다는 뜻이다.
꿩고기가 맛이 있기에 여름철에 냉면에 꿩고기가 들어가면 맛이 디르거니와 값도 비싸고 『만기요형』에 의하면 진상목록에 생치가 기록되어 있고 『산림경제』에는 꿩포 만드는 법, 꿩고기 굽는 법, 꿩고기 찌는 법이 기록되어 있으며, 신라 신문왕 3년에는 꿩고기가 납폐품목에 올라 있어 우리 민족이 꿩에 대해서 일찍부터 관심을 두었던 것이다.
치선이라 해서 꿩 날갯죽지로 부채를 삼았으며 치미선이라 해서 꿩 꼬리털을 여러 개 엮어 부채를 만들었고 조선시대 왕비의 대례복에는 꿩 1백36쌍 2백78마리를 수놓았다.
꿩은 알·고기·꼬리털까지 길상을 뜻하는 것으로 여겨져 경사스럽고 길상을 상징하며 영광스러운 자리에 등장하였으니 우리의 문화 속에는 꿩과 관계되는 문화의식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우리 한민족이 북쪽에서 남으로 남으로 이동해 왔다고 하는데 북에 있었던 조우민속, 특히 꿩의 풍속도 민족이동과 함께 전파된 것으로 해석된다. 다시 말해 꿩 민속의 원류를 만주나 몽골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글 임동권 교수(중앙대·민속학) 사진 주기중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