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가옥 보전 아직 미흡(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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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지역단위로서는 서울의 옛 모습을 유일하게 유지해온 삼청ㆍ가회동 한옥보전지구의 한옥 60%가 보전대상에서 제외되게 됐다. 이 행정조치의 옳고 그름에 앞서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진한 슬픔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좁다란 골목을 이루며 들어선 한옥들이 머리에 얹고 있는 가지런한 기와지붕들. 그것에서 조상의 숨결을 느끼고 지나간 삶을 되돌아보며 남모를 감회에 젖곤 했던 많은 사람들의 가슴은 앞으로 더 삭막해질 것이다. 새삼 개발의 의미가 과연 무엇인가를 되씹어 보게 한다.
서울에서 유일한 삼청ㆍ가회동 한옥지구를 보전지구로 정했던 것은 기본적으로 당연한 것이었다.
그러나 결국 60%를 해제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은 지정만 했지 그를 보전할 수 있는 충분한 지원을 하지 못했던 행정의 탓이다. 한옥지구의 보전이 국가적으로 중요함은 두말할 것도 없으나 그것만으로 개인의 재산권을 마구 침해할 수는 없는 일이다.
왜 국가적ㆍ사회적 필요성과 개인의 권리와의 조화를 꾀하지 못했을까. 행정당국이 내세우는 이유는 「예산부족」일 것이다. 그것은 일단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엄밀히 따지자면 그것은 보전의 중요성을 그만큼 낮게 평가했다는 것밖에 안된다. 예산이란 그 우선순위의 설정에 따라 얼마든지 조정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남은 40%의 한옥지구에 대해 전통건조물보전법을 적용,관리키로 하고 앞으로는 가옥외형 수리비의 70%,건물분 재산세의 전액면제등 지원책을 마련키로 했다고 밝히고 있다. 과감한 지원책이 좀더 일찍 나왔어야 했다. 현재의 지원책도 미흡하다고 본다.
국가적 필요성에 따라 재산권을 제한한다면 지원의 내용도 그에 상응하는 것이어야 한다. 수리비는 70%가 아니라 1백%로 늘려야 하고 건물분뿐 아니라 토지분의 재산세도 면제하고 필요한 유지ㆍ관리비도 지원해야 한다. 아마 그렇게 해도 그 재산권의 침해를 제대로 보상해주기 어려울는지도 모른다.
문화재나 전통건조물로 지정만 했지 그 보전과 재산권의 보호에 소홀한 것은 삼청ㆍ가회동의 한옥들만은 아니다. 전국의 문화재급 전통건축물이 거의 하나같이 지원부족으로 퇴락해가고 있다. 전통건조물에 대해선 보수비만 줄 뿐 관리비는 전혀 주지 않고 있다. 그나마 보수비라는 것도 실제 경비에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그러고도 규제는 옴쭉달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이래가지고서야 보전이 제대로 될 리 없다. 한번 없어지면 앞으로는 경제적 여유가 아무리 많아도 되살릴 수 없는 것이 문화적ㆍ역사적 유산이다.
이번 기회에 정부 전체적 차원에서 전국의 전통가옥을 제대로 보전할 수 있는 대책을 세워야 한다. 경제발전의 효능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여유를 갖자는 것이 아닌가. 경제발전의 참다운 의미를 되새겨 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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