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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길에서 만난 두 얼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중앙일보는 지난8월12일부터 23일까지 l2일 동안 중국에 22명의 사원 연수단을 파견했다. 다음 글은 연수단 일원으로 참가했던 본사 노계원 논설위원의 글을 싣는다. <편집자주>
우리 영토의 최북단 두만강 국경을 건너서고도 북쪽으로50km나 더 들어가는 중국의 변방 연길에 요즈음 한국사람들이 북적거리는 것은 거의가 백두산 때문이다. 친지방문의 경우는 극소수이고 한국인 여행자 대부분은 백두산 관광의 경유지로 연길에서 2, 3일 지내다 간다.
북경을 오가는 여객기가 이곳에서 뜨고 내리며 백두산행 자동차가 발착하는 곳도 이곳이기 때문이다. 우리들 중앙일보 중국연수단이 백두산 등정을 전후해 연길에서 지낸3박4일 동안보고 들은 체험을 종합하면 이곳에서 북적거리는 한국 관광객들 중 일부의 행태가 바람직스럽지 못한 점이 많다는 것이었다.
우선 돈푼 깨나 있어 이곳까지 관광하러 온 한국인들이 순박한 동포들의 삶에 서울의 무절제와 퇴폐풍조를 오염시켜가고 있다는 인상이었다.
연길 시내 중심 가엔 서울의 카페와 카바레를 혼합한 형태로 여자와 함께 술도 마시고 춤도 추고 있는 술집들이 어둡고 울긋불긋한 조명 속에 눈을 끈다. 가라오케 술집과 나이트클럽도 쉽게 발견된다. 이런 유흥업소에선 예외 없이 사랑타령 눈물타령의 한국가요가 길거리에서도 들릴 만큼 큰소리로 울려대고 있다. 이런 곳에 들어가 보면 왁자지껄 떠들며 노래하고 춤추는 사람들은 모두가 한국인들이다.
한국관광객들은 돈을 매우 헤프게 쓰는 사람이 많다고 안내인은 귀띔한다. 술집에서의 팁은 물론이고 상점에서 물건을 살 때도 소득수준으로는 놀랄만한 액수의 거스름돈을 안 받고 가는 것은 보통이고 종업원에게 몇십 달러의 지폐를 서슴없이 찔러 넣어주는 호쾌한(?)한국인도 드물지 않다는 얘기였다. 서울 영동 룸살롱에서 흥청망청하던 버릇이 이국 변방 동족에게까지 발동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 같은 행태는 순박한 이곳 사람들의 노동가치를 혼란시키고 왜곡시키는 것이라는 비판이 뜻 있는 현지 동포들 간에 일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한국 관광객의 오만불손한 언동으로 해서 동족으로서의 정감보다는 오히려 집단적인 반감이 형성되고 있는 것이 청년층을 중심으로 한 이곳 조선족 주민들의 최근 동향이라고 한다.
이런 부정적인 민심의 저변에는 한국인에 대한 불신과 질시가 깔려있다고 한다. 귀국하면 방한초청장을 보내주겠다느니, 사업자금을 대주겠다느니 따위 빈발로 기대를 잔뜩 부풀려 놓은 일부 한국인의 허세와 허풍 때문이다.
이곳에 사는 한 동포는 서울의 사업가라는 사람이 이곳에 대규모 사슴목장을 함께 경영하여 녹용을 한국으로 수출하자며 야산을 물색해 두라고 하더니 편지 한 장 없다고 했다. 한글신문을 발행하는 연변일보사에 5공 때 정부고관을 지냈다는 사람이 찾아와 이 신문의 국제적 보급센터를 서울에 개설하겠다고 큰소리치고 가더니 반년이 지나도록 소식이 없다고 이 신문사 간부는 개탄했다.
한국인의 이런 부정적인 행태가 거듭되면서 이곳 동포들 사이에는 한국인들에 대한 불신과 반발이 일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호텔의 프런트나 룸서비스 데스크, 또는 상점이나 식당에서 조선족 여인을 만났을 때 우리가 반가운 마음에 웃으며 농담을 걸어도 의외로 냉담한 반응에 머쓱해지는 경우가 많았다.
연변대학을 미리 시간약속하고 방문했더니 외사판공실(홍보실)직원 한사람이 나와 작년에 문을 열었다는 개교40주년 기념관을 한바퀴 돌아보게 하고서는 그만 가 주었으면 하는 눈치였다. 교실이나 도서관이라도 좀 보여달라고 했더니 방학중이라 모두 문이 잠겨 있다는 것이었고 학교소개 팸플릿도 재고가 없다고 했다. 그밖에 연길 시내에 있는 몇몇 주요기관을 방문했으나 그 흔한 엽차한잔 대접하는 일없이 총총히 돌려보내는 극히 사무적인 응대 뿐 이었다.
모국동포들의 졸부행태에 대해서는 바가지 요금이라는 역공까지 취하고 있었다. 북경에서 l엔2각하는 택시 기본요금이 연길에선 5엔(약7백원)이었다. 한국관광객이 멈추는 곳마다 십여명씩의 잡상인들이 에워싸며 백두산 산삼이니, 녹용 또는 정체불명의 약초를 내밀며 비싼 값을 부른다. 안내인은 70%정도는 값을 깎으라고 귀띔한다. 백두산 초입에 있는 관리소는 지프를 독점운행하며 정상까지 30여km을 타고 가는데 한대당 3백원을 받고 있다. 우리 돈으로 확산하면 약4만3천원에 불과하지만 이곳 기준으로는 보통월급 2개월분에 해당되는 큰 액수다.
호텔국제전화 가운터에서 일하는 한 동포여인은 전화요금을 미화달러나 중국의 아환폐로만 받으면서도 거스름돈은 태환이 불가능한 내국인용인 민폐로 내주면서 영수증 발급을 기피하고 있었다.
반세기에 가까운 이별과 단절 끝의 해후가 빚어내리라고 기대했던 감격과 반가움의 교감은 어느 구석에서도 편린조차 엿보기 힘들었다. 이토록 냉담하고 이기적인 반응이 이곳을 찾았던 일부 한국인들의 잘못된 행태에 대한 응보라는 심증을 관광객과의 접촉이 별로 없었던 한 촌락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연길에서 버스로 약1시간거리에 있는 조선족 마을을 우연히 지나가다 둘렀을 때의 일이다. 20여 채의 초가가 모여있는 한적한 촌락에서 우리가 만난 사람은 이곳 신광소학교 교장 김영철씨(54)였다.
골목길에서 서성거리고 있는 우리일행과 마주친 김 교장은 우리가 서울에서 봤다는 말을 듣더니 반색을 하며 자기 집으로 우리를 끌고 가는 것이었다. 우리일행이 쭈뼛거리며 자리에 채 앉기도 전에 부인과 딸이 토마토를 소쿠리째 내다가 접시에 썰어 담는다. 화채를 만든다 하며 부산하게 움직였다. 또 엿 한 동이를 내오더니 『반가운 손님에겐 엿을 먹여 보내는 것이 이곳의 풍속이라며 굳이 한 덩이씩을 먹게 했다. 김 교장은 깊이 넣어두었던 녹혈주 한 병을 내놓으며 손수 잔에 따라 권했다. 개 한 마리를 잡을 터이니 점심식사를 하고 가라고 까지 했다. 이를 간신히 뿌리치고 나서는 우리들 앞에 동네 할머니 한 분이 텃밭에서 따낸 토마토 한 자루를 안겨주며 가는 길에 나눠먹으라고 했다. 서울을 떠나면서 상상했던 동족상봉의 감격적인 교감을 이곳 외딴 농촌마을에서 비로소 체험할 수 있었던 것이다.
북경아시안게임을 전후해서 연길과 백두산을 찾아오는 한국인 수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백두산관광도 좋고 동포를 돕는 것도 좋으나 좀 낫게 산다고 해서 이들을 얕잡아 보고 거들먹거려 반감을 심화시키거나 푼돈을 헤프게 뿌림으로써 불로소득이나 퇴폐풍조를 이곳에 오염시켜서는 안되겠다. 허황한 장담이나 실천도 못할 약속 같은 것을 남발하는 것은 순박한 동족을 기만하는 죄악이다. 연변의 동족을 만났을 때 우리가 해야할 일은 그곳에서 흘린 피와 땀의 실체를 확인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 후손의 삶을 위무하고 공감하며 미래의 희망을 부추기는 일이어야 할 것이다. 그들의 삶이 고루 더욱 풍요롭도록 도울 수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음은 물론이다. 노계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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